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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회색지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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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지대는 없다 

-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


“그리스도인에게 회색지대는 없다.” 대학생 시절에 귀가 아프도록 듣고 나누었던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편에 서든지, 세상 편에 있든지 둘 중 하나뿐이며, 하나님과 세상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그런 지대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진리이다. 

그러나 요즘 교회나 신앙인에게는 회색지대가 넘쳐나고 있다. 신자들이 교회 밖에서 모일 때에 그 단면을 잘라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의 모임인지, 세상 사람의 모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적지 않다. 사용하는 용어나 내용은 물론이요, 분위기나 장소 등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이처럼 믿는 자들을 회색지대로 몰아넣고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에 취함’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들이 교회나 신자들의 삶을 서서히 침몰시키고 있다. 

취한 자의 특징은 방향 감각의 상실이다. 앞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내딛지만 실상은 옆으로 가거나 뒤로 물러설 뿐이다. 이것이 세상의 쾌락에 취하고, 첨단 과학의 발전에 취하고, 세상의 감언이설에 취한 채 세속주의의 물결 속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는 말은 알코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취한 자에 대한 세상의 태도는 경멸이다. 최근에 모 방송국에서 추리소설에나 등장할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를 왜곡하고 적대시하는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 이것은 반기독교적인 거센 흐름의 작은 돌출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모든 반기독교적인 행태의 밑바닥에는 세상에 취한 기독교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조소가 있다. 이미 성경은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였다. 

세상에 취함이 세상의 경멸을 불러온다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신앙의 위축을 가져온다. 오늘날 교회는 골리앗의 블레셋 군대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군대처럼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심도 잊어버릴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토저 목사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상 앞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교회가 세상적인 가치관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례로 강단에서 점차 혼전 순결이나 동성애자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약자를 돕고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교회의 마땅한 몫인 것만큼이나 반성경적인 모든 굽은 것들을 엄히 경계하고 바르게 펴는 것 역시 교회의 당연한 몫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회색지대는 없다. 신앙인의 삶은 투쟁이요, 갈등이며 생사를 건 전쟁과 같다. 영적 전장에서는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가 있을 뿐이다. 전투는 용기와 인내와 힘 없이는 이길 수 없다. CS 루이스의 말처럼 썩은 계란으로는 아무리 요리를 하여도 훌륭한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 회색지대에서 서성거리는 신앙은 세상의 경멸과 조소를 불러올 뿐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합시다!” 그럴 때 세상에 취함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세상을 제압하는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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