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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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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일전에 있었던 우리 교회 한 장로님 따님의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매우 중요한 하객 중 한 사람으로 그 결혼식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결혼식과 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상하지요. 왜 이런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지. 그런데, 제 얘기를 잘 들어 보십시오. 일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일이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봅니다.

아주 중요한 직업상의 행사가 있었지만 저는 혼주와의 친밀한 관계로 이 결혼식에 참석하도록 강요(?)를 받았습니다. 축하금을 받는 접수부의 자리, 그것도 두 사람 중 연장자로 임명받았으니 거절할 수 없는 강요였지요. 그런데 이것은 얼마나 즐거운 강요입니까. 가까운 집안 친지들이 맡는 이 자리를 제가 맡았으니까요. 의기가 양양해진 저는 아내와 함께 하객1호차의 맨 앞자리에 앉아 너스레를 떨면서 경기도까지 다녀왔습니다. 혼주께서 얼마나 저를 신뢰하는가를 생각하니 10시간의 버스여행도, 봉투 홍수의 접수 중에 때운 벼락점심도 모두 즐거움이었지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후 8시가 넘어 귀가하여 샤워를 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디에 갔다 왔지?”, “결혼식?”, “누구의 결혼식?”.....“그런데, 과연 결혼식에는 간 거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이런 결론에 자연스레 도달되었습니다. ‘나는 결혼식에 갔다 온 것이 아니라, <결혼식장>에 갔다 왔다.’ 조금 의아스러우시겠지만 하루의 일정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 말이 사실이란 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저는 아침 출발 시에 잠간 혼주를 만나 일과를 의논하고 약간의 운영금을 받았습니다. 도중 하객들을 관리하는 임무까지 덤으로 받은 셈입니다. 결혼식장에 도착, 하객들이 잠시 쉬는 틈에 저는 바로 탁자를 정리하고 축의금 접수를 시작하였습니다. 30여분이 지나 신부가 면사포를 쓰고 지나가는 것을 잠간 보았지만 이내 테이블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부조금 봉투를 정리하고 챙기는 일이 바빴기 때문이었습니다. 

번호를 매기고, 접수대장으로 이것을 옮겨 쓰고... 간간이 혼주가 옆으로 와서 뭐라고 말했으나 들리지도 않았고 그럴 틈도 없었습니다. 이 집안의 첫 결혼인데다가 능력 있는 젊은이들의 혼인이고 또 혼주의 신인도가 높아, 생면부지의 타지 결혼식이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많은 봉투 홍수는 저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결혼식 말미에 허기만 면한 저는 귀향버스에서 호출이 올 때까지 접수업무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결혼식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식 내용을 전혀 모릅니다. 신부와 신랑이 멋있었는지, 혼주들의 인사말이 길었는지, 주례설교가 은혜로웠는지, 대표기도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신랑신부를 진정으로 축복하고, 마음에 담긴 축하인사를 혼주에게 건네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하루였습니다. 

결혼을 빛내는 주례설교의 메시지를 음미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귀가하는 버스에서 제가 들은 것은, ‘주례설교와 대표기도가 너무 깔끔하고 좋았다.’ ‘신랑측 혼주의 인사가 너무 길었다.’ 등의 몇 가지 <소문>뿐이었습니다. 

반면, 제가 하루 종일 한 것은 접수책상을 지키고 부지런히 축의금을 받은 일 뿐이었습니다. 혼주는 수고했노라고 사의를 표했지만 실제로는 그 결혼식과는 무관하게 그저 결혼식장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였을 뿐입니다. 물론 축의금 접수가 쓸모없는 일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결혼식에 따른 부차적인 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아예 접수부가 없는 결혼식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저는 허전하다 못해 허무해졌습니다.
  
어디 허무한 일이 저의 이 사건 뿐이겠습니까. 목적의식을 상실한 행사참석 전부가 이와 같지 않을까요? 교실에는 들어오지만 수업은 듣지 않는 학생, 교회출석은 하나 예배시간에 딴전 피는 신자, 봉사는 하지만 사랑은 싣지 않는 사회활동가, 책은 들지만 내용은 따라가지 않는 독서인... 등, 또 손은 내밀지만 마음을 주지 않는 악수, 예수님의 보혈이 빠진 설교, 쇼핑을 위한 관광, 형식적인 교제, 위선적인 교훈... 등에서 보이는 행동. 이 모든 것은 결국 허무함을 빚어내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겉모양을 좀 줄이더라도 본질적인 목적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행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래서 얼굴도 마주치지 못했던 신랑신부에게 미안한 맘으로 한 마디 합니다.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멋진 가정 꾸미세요. 그래고 뜨겁게, 뜨겁게... 뜨겁게 서로 사랑하세요!"  

아, 초록으로 무성했던 그늘을 뽐내던 여름은행나무보다도 찬바람에 노랑 잎마저 벗어던진 저 가을 은행나무가 더 친근해 보이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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