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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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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이루는 사람들

-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올림픽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연일 선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한 여름의 무더위를 넉넉히 이기게 한다. 승리의 소식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고, 비록 패배했지만 세계의 젊은이들과 당당히 겨루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런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이 심판들의 편파판정이다.

심판의 편파적 처신은 경기의 공정성을 해치고 결과에 대한 승복을 어렵게 한다. 그리고 세계의 젊은이들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결과 지상주의의 망령을 심을 우려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특정국가가 심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의 결과라면 이것은 인류사회에 대한 모독이며 범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올림픽의 편파판정이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그동안 세계 스포츠계에서 우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지는 않았는지 자성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지나친 이기심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인들을 친구로 삼고 지구 운명공동체라는 인식하에 공동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독선적 국가이기주의를 일삼으면 세계는 그들을 외면하게 된다. 이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가끔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앞에 서 있는 신랑 신부의 예복을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신랑은 검은색 계통의 예복을 입고 신부는 순백의 예복을 입는다. 흑과 백은 완전한 반대의 색이지만 두 사람은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다. 반대편에 있다하여 모두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편 사람을 내 삶의 필요한 동반자로 만드는 것이 조화의 능력이다. 혹시 우리가 이 조화의 능력을 가볍게 여기고 작은 성취에 스스로 도취하여 지나친 독단과 아집을 일삼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조화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집단들이 상호조화를 이루어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촉매가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내 잔을 비우려는 마음이다. 그 절정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만난다. 십자가의 주님에게는 자기성취를 위해 상대를 짓누르고 힘으로 이웃을 억압하는 강력함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온 인류의 필요를 위해 당신의 물과 피를 흘리시는 자기 비움의 모습뿐이다. 그러기에 이 십자가 사랑 안에서 동서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한 몸을 이루고 형제자매의 거룩한 가족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법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화의 현장에서 '비호감 한국인'의 이미지를 벗고 '신선하고 함께하고 싶은 한국인'의 이미지로 변화하려면 세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먼저 나타나야 한다. 이 일에 앞서야 할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세계적인 빈곤의 현장과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파괴의 자리에 한국교회의 이름이 등장해야 하고 세계인들이 염려하는 문제가 있는 곳에 우리의 역할이 기여되어야 한다. 이런 자기비움과 희생을 동반한 사랑이 나타날 때 이웃들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가능하게 된다. 이를 위한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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