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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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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려면  

-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
 

인생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기엔 너무 버겁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그러기에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을 갖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 그런데 행복을 위해서 맺어진 관계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얼마나 상처받고 절망하는지 모른다. 대개의 경우 낯선 사람보다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속에서 더 큰 상처를 받고 고통한다는 사실은 관계의 아이러니이다. 

부모와 자식, 부부가 함께하는 가정의 관계는 모든 관계의 기본이자 행복의 열쇠이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모든 부와 권세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라도 가정적으로 불행한 사람을 두고 그 일생을 행복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도 가정적으로 화목하다면 우리는 서슴지 않고 그런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대문호 괴테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나서 "임금이든 농부이든 자기 가정에서 기쁨을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의 행복이 가족이라는 관계에 크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한번 무너진 가정, 찢겨진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죄성을 가진 고집스러운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성경의 대표적인 역기능 가정인 야곱의 집이 그랬다. 어느 집보다도 거짓과 술수와 속임수가 난무했던 집이었다. 요셉을 편애했던 야곱은 다른 모든 자식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고 형제들은 애걸하는 동생을 노예로 팔았던, 소위 파멸의 종착점으로 달려가는 가정이었다. 현실적으로 이처럼 망가지고 깨어진 가정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런데 회복 불가능해 보이던 이 가정이 변했다. 예전에 요셉의 채색옷을 찢어서 그의 죽음을 위장했던 형제들은 막내 베냐민을 위해서 자신의 옷을 찢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아버지를 속이는 데 앞장섰던 유다는 베냐민을 위한 애끓는 탄원에서 14번이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만큼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바꿔놓았을까? "성경에서 한 인간의 진실한 뉘우침과 회개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탕자의 비유를 제외하고는 여기밖에 없다"고 말한 성경학자 고든 웬함의 말에서 요셉의 형제들이 바뀐 이유가 진정한 회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깨어진 관계를 진정으로 회복하는 길은 세상의 온갖 심리학적인 처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엑스레이처럼 비춰지는 자신의 몰골을 직시하고 회개하는 데 있다. 회개가 중요한 것은 자신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의 고통의 짐까지 대신 짊어질 수 있는 회복으로 가는 엄청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깨어진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 남 탓할 것 없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서는 회개와 희생만이 해답이다. 세상적인 방법을 찾는 한 그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인생의 기쁨의 통을 키우고, 건강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회개를 통해서 변화된 유다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심령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낳았고, 행동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를 낳았으며, 관계의 변화는 역사를 변화시켰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렸을 때, 베냐민 지파만이 끝까지 유다 지파와 함께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래 전 동생 베냐민을 위해서 눈물의 탄원을 하였던 형 유다의 희생과 사랑 속에서 이미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야곱의 가정처럼 깨어진 가정일지라도 진정한 회개와 희생을 통해서 유다처럼 형제의 고통을 짊어지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면, 일평생 회복의 은총을 누리며 미래의 역사까지도 변화시키는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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