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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순전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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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9세기의 역사가인 라바누스 마우루스(Rabanus Maurus)는 복음서의 내용과 초대교회 전승들을 토대로 하여 막달라 마리아의 전기를 기록했다. 그는 이 책에서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던 막달라 마리아의 첫 증언 ‘내가 주를 보았다’는 말을 전도자의 핵심 메시지로 여겼다. 그리고 이 첫 소식을 전했던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들에게 보내진 사도’(Apostolos Apostolerum)가 되었다고 기록했다.

‘사도들에게 보내진 사도’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붙여진 최고의 칭호였고 그는 이 칭호에 어울리는 삶으로 초기 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사도들에게 보내진 사도’라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보내진 사도’들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속에서 사도직을 감당해야 하는 ‘파송된 실존’들이다. 이런 우리의 영적 직임은 무겁고 두려운 일들이다. 우리가 보냄받은 이 세상은 분쟁과 질병, 재난이 계속되는 현실을 인간의 본능인 이기심과 탐욕이 지배함으로 더욱 절망의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이런 세상속에 보내진 사도적 존재로서의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노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덕목과 능력을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찾을 수 있다.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이었다. 황금 같은 성장기를 귀신의 지배를 받으면서 흉측한 모습과 괴이한 몸짓으로 살아오는 동안 그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고, 인격과 교양을 가다듬는 일도 꿈꿀 수 없었다. 특별한 재능을 가꾸지도 못했고 자기 능력을 개발할 어떤 기회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마리아가 주님께 선택되고 사용된 것은 그녀의 마음깊이 자리 잡고 있던 예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 때문이였다. 자신에게 절대 은총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을 향한 그 사랑은 누구보다 진실했고 뜨거웠고 눈물겨웠다. 마리아는 이 사랑 한 가지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증거하고 사도들에게 보내진 사도의 삶을 살았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과거의 교회 지도자들에 비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교회는 사람들로 넘치고 재정 또한 그리 궁핍하지 않다. 그러나 예전처럼 교회가 향기롭지 않고 세간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순전성의 상실’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신앙도 순전해야 하고 교회와 민족을 향한 사람도 순전해야 한다. 모든 사역이 본래의 순전성을 상실하고 자기과시에 사로잡히거나 세속적 명예를 염두에 둔 것이 되면 맛 잃은 소금처럼 여겨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교회는 영광스럽고 명예로워야 하고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위엄있는 교회의 모습은 사랑의 순전성을 회복할 때에 가능해진다.

그래서 성 버나드(St Bernard)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전한 사랑’을 주문했다. 교회안에 모든 것이 갖추어 졌으나 영혼을 품고 아끼며 생명을 살리려 몸부림치는 거룩한 사랑의 실천이 미비하면 이 모든 것은 무력한 것이 되고 만다. 막달라 마리아가 오직 순전한 사랑으로 사도적 삶을 산 것을 보면서 이 부활의 계절에 삶의 자세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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