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새 수레의 멍에를 멘 두 암소처럼

첨부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짐승 중에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로 예물을 드리도록 말씀하셨다(레1:2-14). 우리는 양에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사53:7), 비둘기에게서는 하늘로부터 임한 성령님을(마3:16), 그리고 오늘 본문 벧세메스로 가는 소에게서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충성스런 성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이었다. 사실 새끼를 갓 낳은 어미 소와 새끼 송아지를 따로 떼어 둘 경우 본성적 본능으로는 어미 소가 송아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데도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운반하는 어미 소로 하여금 곧 바로 벧세메스로 향해 올라가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비천한 짐승도 자신의 진정한 주인인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연적 본능도 거스르고 복종했다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암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싣고 가는 새 수레의 멍에를 메는 소였다. 소가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간 것은 소로서는 최상의 축복의 멍에인 것처럼 이 세상에 많은 멍에가 있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위한 성도의 멍에는 참으로 보람된 최상의 축복이다.

이 두 암소는 금방 낳은 새끼를 떼고 울며 가야 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섬기기 위하여서는 가정도, 직장도, 사업도 뒤로 두어야 할 때가 없지 않다. 예수님은 “무릇 내게 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녀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고 말씀하셨다.

이 두 암소는 서로 보조를 맞추어 갔다. 성도는 위로는 주님의 뜻에 맞추고 아래로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으로 뜻을 합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된다(빌2:3). 그리고 이 두 암소는 밀을 거두는 추수기에 밀밭을 지나면서도 먹을 것에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만 갔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땅의 것, 세속적인 것에 치우치지 말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암소는 최종 목적지 벧세메스로 끝까지 그 길을 갔다. 이 두 암소가 끝까지 충성하여 벧세메스로 간 것처럼 성도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서 천성에 이르러야 한다(딤후4:7). 멍에를 메고 간 그 두 암소는 마지막에 번제물이 되어 불살라진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요12:24) 자신을 하나님의 제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도의 봉사가 될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