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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절절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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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은 사랑의 표현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다섯 가지의 형태로 사랑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도식화하고 싶어한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 조금은 다른, 사랑의 경험체계를 인식하게 해 주고, 관계를 아름답게 맺어가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 관계는 누구나 갖고 있는 '사랑의 탱크(Love tank)'가 어느 정도 채워져 있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말'을 최고의 사랑으로 인식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담긴 '선물'을 받으면서, 또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애정 어린 '신체의 접촉'으로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깨닫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함께 보내주는 시간'이었다. 상대방과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함께 쇼핑을 가는 시간 등으로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함께하는 시간'을 저자는 'Quality of Time'이라고 말했다. '질적 시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다. 어떻게 보내느냐는 것이다. 무작정 함께하면서 보내는 시간의 총량이 사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짧아도 그 순간 상대방에게 몰입하고 있다면 사랑의 감정은 서로에게 깊은 강처럼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얼마나 절실하게 상대방을 만나고 있느냐는 것이다. 얼마나 절절하게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우리의 신앙도 그런 것은 아닌가. 오랜 세월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향한 절절함이 희미해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목마른 사슴의 절절함이 희석되고 감동과 감격이 시들어 가면서 신앙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면서 오늘도 성전을 향해 나의 몸뚱이가 아닌 영혼이 그 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처음의 그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첫 사랑의 간절함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내 영혼의 절실함이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앤서니 드 멜로는 '깨어나십시오'라는 책에서 정확하게 우리 영혼의 과녁을 맞추고 있다. "당신은 진정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안도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한다. 그래서 "여러분 대부분은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이 살아지도록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건 삶이 아닙니다. 사느냐 죽느냐가 전혀 문제되지 않기까지는 전혀 사는 게 아닙니다." 

'진정성'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니다. '진정'이란 낱말을 삶에서 회복시켜 보라.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 그분의 인도하심에 내 삶을 전적으로 맡겨 보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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