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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치유하는 리더십’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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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리더십’을 기다린다

-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우리는 모두 영국의 시인 존 돈(John Donne)이 오래전에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전체의 한 부분이다”(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각각의 따로 떨어진 고독한 섬처럼 오늘의 실존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가장 절실한 필요는 이런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 놓기’라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팝 아티스트가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벽을 쌓기에 분주할 뿐 다리를 놓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민족과 민족, 계층과 계층,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종교와 종교 사이에 높아지고 있는 이런 벽들은 우리의 실존을 암울하고 고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런 벽 쌓기는 힘을 기반으로 한 사냥꾼의 후예들인 남성 리더십에 의해 만들어져 온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제 이런 전통적 리더십이 만들어 온 벽들을 헐어내고 파편처럼 흩어진 대륙의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 놓기의 희망은 여성 리더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보여 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조건의 여성 리더십이 아닌 치유하는 여성 리더십인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이런 오늘의 역사가 기다리는 큰 그림의 ‘치유 리더십’을 만드는 조각들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1. 평화 지향적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한국전이 한창일 때 이 전쟁을 취재하던 한 기자가 참호속에 들어가 있던 겁먹은 흑인 병사에게 이 순간 당신이 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병사의 대답은 세 마디 단어로 된 짤막한 문장이었습니다. “저에게 내일을 주십시오.”(Give me tomorrow!) 인류의 미래는 전쟁을 예방하는 평화의 리더십이 없이는 어떤 희망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의 리더십은 또 한번 이 땅의 지도자들에게 ‘솔페리노의 회상’같은 앙리 뒤낭(Henry Dunant)의 회심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업가의 야망을 가지고 솔페리노 전선으로 나폴레온 3세를 만나러 갔던 뒤낭은 이미 전쟁이 끝난 전장에 펼쳐진 참혹한 현장에서 부상병들을 돕다가 자신이 한번도 꿈꾸어 보지 못한 평화의 비전을 잉태하였고 바로 그곳이 바로 적십자 운동의 요람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뒤낭이 목격한 솔페리노 전선과 비할 수 없는 훨씬 더 치열한 전장이 바로 인간 실존의 내면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내면을 주목하지 않은 어떤 평화의 시도도 결국은 피상성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서에는 “너희 싸움이 어디서 나느냐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서4:1)고 말합니다. 이런 욕망에서 자유한 평화야말로 치유의 리더십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치유의 효율성은 우리 모두가 전쟁 리더십이 불태우던 정복의 욕구를 내려놓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자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고---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해됨이 없는”(이사야11:6,8) 평화로운 세상의 비전을 회복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국주의적 선교(Imperialistic mission)의 반성도 이런 평화로 가는 의미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2. 과정 지향적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인간이 왜 이런 욕망에서 자유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공을 과정보다도 목적에서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목표 지향적인 오늘의 경쟁 사회의 리더십은 우리 스스로 설정한 목표 외에는 삶의 모든 의미를 박탈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베스트 셀러 작가인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이 그의 저서 ‘선물’(Present)에서 현대인에게 주고 싶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은 다름 아닌 ‘현재’(Present)였다는 것은 매우 시시적인 깨우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노인이 한 소년에게 주고 싶었던 행복의 비밀로서의 선물은 다름 아닌 ‘여기(here)와 지금(now)’이라는 현존(present)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속의 소년이 이 사실을 성숙한 중년이 되기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인류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조금 더의 성숙을 필요로 할지 모릅니다. 

영성 작가인 켄 가이어(Ken Gier)가 그의 저서 ‘묵상하는 삶’(Intimate moments with the Saviour)에서 들려준 ‘양파파는 노인’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결과와 목적에 중독된 현대의 리더들을 깨우는 아침 이슬같은 은총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멕시코 시티의 시장 그늘진 한 구석에 포타라모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 노인이 양파 스무줄을 앞에 걸어놓고 팔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온 관광객 한 사람이 다가와 묻습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입니까?” “10센트입니다” “두 줄에는 얼마입니까?” “20센트입니다” “세줄에는요?” “30센트입니다.” 그러자 미국인이 말했다고 합니다. “별로 깍아 주시는 것이 없으시네요. 스무 줄을 다 사면 얼마입니까?” 그러자 인디언 노인은 “전부 다라고요. 그렇게는 할수 없습니다.” “아니, 양파 팔러 나오신 것 아니신가요. 왜 다 못파신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미소를 지으며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물론 나는 여기 양파를 팔러 나왔습니다만 양파만 팔러 나온 것은 아닙니다. 난 또한 인생을 살고자 이 곳에 옵니다. 난 시장을 사랑하고요. 여기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요. 이 시장에 쏟아지는 햇빛을 사랑하고 또한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한답니다. 이 시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사랑하고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당신에게 이 양파를 다 팔아버리면 난 인생을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저는 이 노인이 붙들고 살던 삶의 비전이야 말로 이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서 회복되어야 할 과정 지향의 리더십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3. 섬김을 목적으로 한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리더십의 목표(goal)로 겨냥해오던 목적(purpose)을 포기해야만 할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목적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의 섬김을 목적 이상의 소중한 가치로 여길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최근 경영학계를 중심으로 떠오른 ‘서번트 리더십’은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Greenleaf)가 헬만 헤세(Hermann Hesse)의 ‘동방 순례’(Journey to the East)이야기의 감동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레오(Leo)는 순례자들의 허드레 일을 돕고 식사 준비를 하고 때로는 밤에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무엇을 도울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때부터 순례자들 사이에는 다툼이 많아지고 순례자들은 순례의 의욕을 상실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순례자들은 레오가 그들의 진정한 리더였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헬만 헷세나 그린리프가 섬김의 리더십을 말하기 전 2000여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섬김의 리더십의 비밀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태20:26-27) 우리의 시대는 이런 섬김의 리더십의 역설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리더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리더십만이 권위와 지배의 리더십으로 상처받은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기다려주는 긍휼의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섬김의 수행에 무엇보다 동반되어야 할 것은 ‘기다림의 덕’입니다. 그렇지 않고 섬김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이웃들을 윽박지르기 시작하면 섬김을 명분으로 우리는 섬김의 과정에서도 심지어 이웃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의도하지 않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성작가요 사제인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이 말한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그것이 바로 기다려 주는 ‘긍휼의 리더십’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사제 헨리 나우웬이 들려준 ‘바보들의 마을에 들어선 수박 사냥꾼’의 이야기로 긍휼의 리더십의 설명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한 여행자가 길을 가다가 바보들의 마을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 마을의 사람들은 마을 한 복판에 있는 밀밭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밀밭에 괴물이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행자가 보니 그 괴물의 정체는 수박이었습니다. 그는 괴물을 처치하겠다고 선언하고 수박을 줄기채 짤라 조각을 낸 후 한 조각을 먹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우리도 저렇게 난도질을 할 것이다”고 소리치며 건초 갈퀴를 들고 달려들어 그 여행자를 마을에서 쫓아내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그 마을에 또 한 여행자가 도착했는데 그는 전 사람과 달리 마을 사람들이 괴물을 인해 놀라면 같이 놀라고 도망치면 같이 도망치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르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수박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고 수박을 재배하는 마을이 되도록 도왔습니다. 나우웬은 이런 사람들을 ‘긍휼의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우리 시대가 기다리는 리더십이 바로 이런 긍휼의 리더십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교회를 방문했다가 청년들의 짧은 스킷 드라마를 인상적으로 감상한 일이 있습니다. 드라마의 제목은 건축(construction)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어떤 미지의 섬에 조난당한 배로부터 한 무리의 청년들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청년들은 이 건축 자재를 가지고 무엇을 건축할 것인가를 토의하게 됩니다. 한 청년은 당연히 숙소를 짓자고 주장합니다. 한 청년은 배에서 나온 물건을 둘 창고를 먼저 짓자고 주장합니다. 

그때 갑자기 한 청년이 이 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섬이 보인다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사람이 이 곳으로 헤엄쳐 오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갑자기 장내는 긴장되기 시작하고 그 청년은 이 자재로 우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벽을 쌓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단의 청년들이 경계를 서게 됩니다. 벽을 쌓는 건축이 얼마 진행되지 않았을때 한 사람이 저쪽 섬에서 도착하자 그들은 이 청년을 체포하고 묻습니다. “너는 누구인데 무엇하러 이 섬에 오는가?”고. 그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나는 이 섬과 저 섬을 함께 소유한 주인의 아들인데 우리 아버지는 이 섬과 저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을 자재를 이곳에 쌓아두었는데 당신들은 다리가 아닌 벽을 쌓고 계시군요.” 누군가가 소리칩니다. “저 놈이 수상하다”고. “맞다. 죽여라 죽이자” 무대는 아수라장이 되고 천둥 뇌성이 울리고 불이 꺼집니다. 

잠시 후 무대에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거기에는 그 섬의 주인의 아들이라고 주장 한 젊은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고 이런 멘트가 무대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리를 놓고자 했는데 당신들은 벽을 쌓았습니다.” 성경은 그분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가 바로 인류의 화평, 인류의 치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의 리더십이 목마르게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성서는 오늘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숨막히는 벽들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 천년전 그 벽들은 해체되었고 그 대신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졌습니다고 말해야 한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치유가 약속되었다고 증거합니다. 그것은 이런 치유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미 평화의 아들이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째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도다”(이사야53:5)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치유 리더십의 희망입니다. 

(전국 여교수 연합회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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