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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런 고생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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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생쯤이야  

-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어떤 작가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실감나게 말한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아주 궁핍하던 때였다. 생존과 연결된 고통이었다. 3일 정도는 일상적으로 굶고, 라면 하나로 1주일 정도를 버텨내고, 감자튀김 20원어치를 사 먹고 다음날은 종일 굶고, 번데기 20원어치 사 먹고 다음날 또 굶었다. 이런 식으로 거의 1년 가까이 보낸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인간의 삶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질곡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 혹독한 가난을 견뎌낼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스스럼없이 "작가가 되겠다는 놈이 이런 고생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버텨냈다"고 답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그 정도의 결단과 각오가 없이 어찌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글은 유희가 아니다. 글 쓰는 작업은 생명을 깎고 다듬어 보석을 만드는 작업이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짧되 정곡을 파헤치고, 그의 한마디는 금언처럼 날카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찌 글 쓰는 작업만이겠는가. 무엇이든 그러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살아내는 삶이 어찌 가면무도회의 유희처럼 이루어질 수만 있겠는가. 깎이고 깎여, 다듬고 또 다듬어지지 않고는 결코 옥(玉)구슬이 되지 않는 것이 삶의 원리 아닌가?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단단히 마음먹은 구도자"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굶은 사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신앙의 걸음을 결코 방해받지 않고 묵묵히 걷는 구도자이다.

요즘 우리 교회는 특별 새벽 기도회의 은혜가 넘친다. 10일이 지나도록 새벽 4시쯤부터 교회는 분주해진다. 누가 말했나. '특새'라고 말이다. 그렇다. 수천 명의 성도는 '특새'를 통해 특별한 비상(飛上)을 꿈꾸는 특별한 새다. 이른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거룩한 성전의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되어 아름다운 영혼의 색깔로 성전을 그려간다. 지나간 밤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비상의 날갯짓을 하면서 성전 문을 두드린다. 지나간 밤 아픔의 상처를 채 싸매기도 전에 또 다시 나를 일으켜 하늘 길을 달려 그분께 온다.

왜 그런가? 우리 모든 성도는 '단단히 마음먹은 구도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생쯤이야"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새벽을 깨워 하나님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특별한 새이기 때문이다. 삶에 폭풍우가 몰아쳐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새들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온통 신음소리다.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어떤 특정의 사람들이라 말할 것도 없이 사회 전체가 겨우겨우 하루를 버티는 질곡의 시간들로 채우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그 질곡의 순간에도 "이런 고생쯤이야"라며 단단히 마음먹은 구도자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이런 하나님을 믿는 특별한 새들이기 때문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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