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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선냄비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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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냄비를 보면서 

- 최요한 칼럼(남서울비전교회)


해마다 연말이 되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구세군 냄비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12월 1일, ‘시종식’이 있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76개 지역에 215개의 자선냄비가 설치되어 12월 24일까지 국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모으게 된다. 

1928년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자선냄비는 지난 80년간 국민들과 고락을 함께 해오면서,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모금된 돈을 통해서 수많은 불우이웃들이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어 자선냄비는 사랑의 창구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현재 자선냄비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119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한겨울 추위를 녹이는 사랑운동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자선냄비가 세계적인 사랑의 모금행사로 자리 잡게 된 데는 한 사람의 사랑의 실천이 결정적이었다. 1891년 성탄을 얼마 앞두고, 미국 샌프란시코 해안에서 한 척의 배가 난파를 당하여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경제 불황이어서 시에서는 도울만한 예산이 없었다. 그래서 난민들은 추위에 떨며 굶주린 채 지내야만 했다. 그 때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셉 맥피(Joseph Mcffe)였다. 

어떻게 하면 난민들을 도울 수 있을까 밤낮으로 궁리하던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영국 리버풀에 있을 때 보았던 자선을 위한 ‘심슨의 솥’이었다. 다음날 맥피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오클랜드 부둣가에다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솥을 걸어놓고 모금을 했다. 자기들도 살기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그래서 모금된 돈으로 1,000여명의 난민들과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 사랑이 실천으로 연결될 때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한다. 

자선냄비를 보면서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나 이웃돕기의 상징 정도로 자선냄비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선냄비 안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을 보면서 성탄의 의미를 돌아보는 데까지 우리의 생각이 넓어져야 한다. 지금은 자선냄비가 철제제품이지만 몇 년 전까지는 투박할 정도로 볼품이 없는 양철제품이었다. 

사실, 냄비라는 이미지는 화려함이나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다.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단어다. 비록 겉모습은 보잘 것 없고 초라해 보이지만 자선냄비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심어주었고, 미움과 다툼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었다.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 이스라엘의 조그마한 동네인 베들레헴에 강림하셨는데, 누우실 곳이 없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이사야서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사람들이 볼 때는 고운 모양도 없고 볼품도 없어 보였지만 사랑이 충만하신 예수님은 주의 사랑으로 온 세상을 덮으셨다. 

특히 가난과 질병과 장애로 고통 받는 버림받은 영혼들에게 찾아가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주의 사랑을 부어주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랑의 십자가를 알게 해 주셨다. 

우리는 자선냄비를 볼 때 먼저 낮은 자리에 임하신 사랑의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랑의 예수님이 내 마음을 주관하도록 내어드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작은 예수가 되어 가난하고 병든 영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전할 수가 있게 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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