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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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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 김석년 목사(서초성결교회)
 

역사와 인생에는 주기가 있다. 밤과 낮, 불황과 호황,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종말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행복론'을 저술한 데일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절망의 빛이 가득한 풍경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썰물이 빠져나간 황량한 바닷가에 낡은 배 한 척이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고, 그 아래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오늘의 현실은 썰물이다. 모든 것이 빠져나가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밀물 때를 대비해서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썰물 때에 배를 손질하고 그물을 수선하는 자만이 밀물 때에 풍요를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새해의 타종이 들려올 때 연말을 장식했던 성탄의 분위기는 막판 세일의 꼬리표를 붙인 채 과거의 시간으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성탄 없이 진정한 새해, 새날이 가능한 것일까? 예수의 입장에서 볼 때 성탄의 사건은 분명 썰물의 시간이다. 하늘의 영광스런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 밥통에서 시작해야 하는 가난하고 척박한 인생, 어디 그뿐이랴. 스스로 몸을 가눌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용변을 가릴 수도 없는 연약한 존재로 태어나 죄인 된 인간의 손에 철저히 자신을 맡겨야 하는 비참하고 한심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쓸려나간 황량한 썰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치며 예수를 평안과 부요와 행복의 구주로 찬양하는 것인가? 

어찌 보면 예수의 썰물 인생은 십자가에 죽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의 썰물이 진행될수록 하나님의 은혜, 구원, 영광의 밀물이 스며들게 된다. 예수의 자기의지, 자기능력이 철저히 부인되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권능이 밀물처럼 인류를 덮은 것이다. 이 썰물과 밀물이 교차되는 시점이 바로 진정한 '새날'이요 '새해'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성탄과 새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희망의 새해는 성탄에서 시작된다. 희망은 구유 안에 있는 것이다. 인류구원의 거대한 밀물이 감춰진 말구유, 구유의 아기 예수를 보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치는 자라면 "기쁘다 구유의 삶을 살겠네"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2). 

밀물이 다가오는 표적은 주가나 금리, 경제 부양책에 있지 않다. 표적은 바로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이다. 그렇기에 밀물의 때를 준비하는 지혜는 구유의 삶, 곧 스스로를 비우는 가난한 삶을 자처하는 것이다. 

더 이상 빠져나갈 것조차 없이 바닥을 친 썰물의 삶인가?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옴을 믿고 '마음의 가난함'을 자처하자. "은혜로 살고 있다, 생명 있음에 감사하다." 아직 조금이라도 가진 것이 있는가? 근검과 절약을 실천하며 '생활의 가난함'을 자처하자. "과분하게 살고 있다. 필요가 채워짐에 감사하다." 남보다 더 가진 것이 있는가? 소유보다는 존재의 행복을 추구하며 '의식의 가난함'을 자처하자. "미안하게 살고 있다. 나눔의 사명 주시니 감사하다." 

구유의 탄생이 없었다면 구원의 새날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은혜와 축복의 밀물은 가난한 심령에 부어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3∼4)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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