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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르다와 마리아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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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와 마리아의 화해  
 
-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우리는 보통 가장 크게 인간을 나눌 때 '일 중심의 사람'(A-type)과 '관계 중심의 사람'(B-type)으로 나눈다. 성경의 마르다가 일 중심 사람의 전형이라면, 마리아는 관계 중심 사람의 전형이다. 성경의 마르다는 마리아가 자기 일을 돕지 않고 팔자 좋게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불평했다. 지금도 일 중심 혹은 과제 중심으로 일하는 이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목표를 이행하지 못하는 무절제를 비판하고, 관계 중심의 사람들은 일을 위해 인간을 저버리는 몰인정을 비판한다.

예수님이 마르다를 나무라실 때 그녀의 일에 대한 의욕을 비판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한편으로 부엌일에 마음을 두면서도, 또 한편으로 동생 마리아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쓰느라 그녀의 마음은 찢기어 있음을 보셨고, 결과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일을 즐기지 못함을 보셨다. 열 받고 화나 있는 그녀의 분심이 그녀의 순수한 섬김을 흠집 내고 있었던 것이다. 찢겨진 분주한 마음은 결국 그 어느 것도 의미있는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차라리 한 가지 일에 몰두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후에도 그녀의 기질적 경향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복음서에 나타난 그녀는 그 후에도 여전히 서서 일하는 모습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변한 것이 있다. 그녀는 더 이상 화내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자신의 한 가지 소명에 몰두할 뿐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 후에 다른 이의 일에 불필요한 개입이나 간섭을 통해 비난하고 정죄하기보다 일할 수 있는 기회와 건강을 기뻐하며 행복하게 일에 열중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마르다를 결코 비난해선 안 된다.

오히려 이런 마르다는 마리아 곁에 있어야 한다. 상상해 보라. 봉사하는 마르다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불 꺼진 부엌을 가진 가정이나 교회, 그리고 직장의 모습은 얼마나 썰렁할까. 만일 마르다가 마리아를 들먹일 필요없이 콧노래로 찬양을 하고 부엌일에 열중하면서 동생 마리아에게 네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자신에게도 그 행복한 말씀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더라면 주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늘 궁금하기만 하다. 마르다의 요청이 없어도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잠시 쉬고 마르다와 식사를 준비한 후 함께 말씀을 나누자고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한국 교회의 광야에서는 한국 교회의 마리아들이 예배에 열중하면서 봉사를 잊었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높다. 그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얼굴일수록 분노와 객기가 충만하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그런 마르다들에게 분심으로 섬기기보다 차라리 예배실에 들어가 있는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예배실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인 마리아들에게는 지금이 말씀의 능력을 간직하고 부엌으로 내려갈 시간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실까. 마르다와 마리아의 화해-그것만이 한국 교회의 내일의 새 얼굴이라고 믿는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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