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변방의 성자들

첨부 1


변방의 성자들  

- 김석년 목사 (서초성결교회)
 

독일 키리히하임(Kirchheim)에서 열리는 유럽 코스타에 참석 중이다. 고단한 유학생활로 영적으로 갈급한 학생들이 장거리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어려운 경제 형편에 주머니를 털면서까지 말씀의 자리로 속속 모여들었다. 1000여명의 한인 청년들이 낯선 땅에서 함께 부르짖고 찬양하는 모습 자체가 감동이요, 도전이다. 

젊은 시절 10여년을 독일에서 유학 및 목회생활을 했기에 남다른 감회와 더불어 묻어둔 추억들이 하나 둘씩 스친다. 가난한 유학생들의 이삿짐을 함께 나르며 나누던 형제애, 모국에서 건너온 라면 한 봉지에 감격하던 소박한 마음, 환우의 아픔에 간절했던 눈물의 기도 등. 이민의 삶은 나의 성품과 인격, 신앙과 신학의 모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인가 함박눈이 소복이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과 커피 향에 심취해 있을 때 뜻밖의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교회 성도 한 분이 눈을 흠뻑 맞은 채 봉지 하나를 쑥 내미는 것이 아닌가. "펑펑 눈이 내리는 것을 보니 목사님의 해진 구두가 생각나서요. 혹여 눈길에 발 젖으실까 싶어 새 구두 사왔어요." 기껏 눈 내리는 풍경을 즐기는 철없는 목회자를 위해 눈길을 헤치고 온 성도의 마음에 한없이 부끄러워 눈물짓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가난한 고국을 떠나 일자리를 구해 이민 왔던 광부와 간호사들, 미군과 결혼한 여인들, 유학 온 고학생 등이 대다수였던 교우들은 실력도 능력도 없이 개척한 나를 믿고 지지해준 신앙의 동지일 뿐만 아니라 친구요, 가족이요, 스승이었다. 비록 백인 사회 속에서 유색인종의 소수 이민자로 살아가는 변방의 인생이었지만 나는 그들을 변방의 성자들로 기억한다. 가난과 설움, 외로움과 아픔을 알기에 보듬어주고 감싸주고 나눠주고 섬겨주던 마음이 곧 그리스도를 닮은 영성, 영적 성품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변방의 한 작은 마을, 어떻게 그런 곳에서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무시 받던 나사렛 출신인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싶다. 그뿐인가? 예수께서 열 두 제자들을 택하시고 부르실 때도 변방에 살던 갈릴리 사람들을, 그들 중에서도 가난하고 무식했던 사람들을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해도 유럽 한인 신앙공동체의 분위기 속에는 변방의 영성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한 성도라도 더 은혜의 말씀을 먹이기 위해 십 수 시간을 운전하여 달려 온 목회자들, 아낌없이 헌신하는 현지교회 성도들, 유학생활을 체험했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한국 미국 등 각지에서 온 자비량 강사들, 게다가 명망 높은 주 강사 목사님은 본인의 강의뿐만 아니라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며 참여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부디 바라기는 이곳에서 거듭난 유학생들이 엘리트 지식인의 명찰을 붙이고 주류사회의 치열한 경쟁자가 되기보다는 세계 곳곳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변방의 성자들이 되기를 꿈꿔 본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8∼29)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