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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거스틴의 회심과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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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회심과 한국교회

‘파렴치범’이라도 복음이 들어가면 변화할 수 있다 [2009-03-11 05:44]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주후 354년 북아프리카의 조그마한 촌락 타가스테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모친 모니카와 이교도이자 로마의 하급 관리였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 사이에서 출생했다.

아들이 다른 아이들 보다 매우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니카와 파트리키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최상의 교육을 받게 했다. 부모 덕분에 아우구스티누스는 17세가 되던 해 어린 나이에 카르타고로 유학을 떠나 수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했으며, 거기서 키케로와 같은 라틴어 학자와 만나 큰 영향을 받는다. 

하나님이 주신 현명한 머리로 학문을 하던 중 진리를 얻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최고 목적이라는 사실을 확신케 된 그는 어머니가 전해준 기독교를 과감히 버린다. 기독교는 학문적으로 깊이가 없고 무식한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 시끄럽게 지껄이는 수준낮은 사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전해준 기독교를 팽개쳐버리고 타락한 그는 십대의 어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의 흑인 노예를 첩으로 취해 불우한 아들을 낳기도 했다.

회심 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에서의 이 때의 삶을 일생을 두고 부끄럽고 혐오스럽게 여겼다. 그는 자신의 고백록에서 ‘카르타고에 들어서자 불결한 정욕의 가마솥이 내 주위에서 부글부글 끓어대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당대의 지식인답지 않게 병적인 성욕에 불타서 심각한 타락의 길을 걷게 된 이후에도 그는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했다. 불안에 휩싸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세상은 빛과 어둠, 육체와 영이 싸우는 전쟁터라고 가르친 마니교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마니교의 가르침에도 영적인 불만족에 시달리던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밀라노로 돌아다니며 자신이 그동안 배운 수사학을 많은 사람들에게 미친듯이 가르쳤다. 그러던 중 밀라노에서 탁월한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지적으로 깊이 교제하고, 유능한 교회의 주교 때문에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무식쟁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의 눈에 비친 암브로시우스는 기독교이면서도 매우 지적이고 탁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주후 387년 어느 날 아우구스티누스가 밀라노의 어떤 정원에 앉아서 묵상하고 있을 때, 그의 귀에 ‘취하여 읽으라, 취하여 읽으라’는 어린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놓여있는 책을 취해 읽었다. 바울이 쓴 로마서였다. 

그는 로마서 13:13-14절의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주 예수로 옷 입으라’는 바울 사도의 말을 읽는 중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고 과거에 있었던 부끄러운 삶이 기억나 눈물로 회개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의 복음송을 통해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를 전격적으로 회심시킨 것이다.

이후 참 기독교인이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를 회개하며 조용한 곳에서 수도자의 삶을 살기 원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적으로 매우 탁월한 학자라는 소문이 교회에 널리 퍼지자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교회의 주교가 될 것을 종용했다. 그는 극성스런 사람들의 요구에 못 이겨 주후 391년에 정식 성직자로 서품을 받고, 395년에는 히포라 불리는 북아프리카 도시의 주교가 되었다.

히포의 주교가 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지력으로 당시 잘못된 이단들과의 신학적 논쟁에 거의 관계했다. 특히 브리튼 출신의 설교자였던 펠라기우스는 당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선택하는 데 인간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이단설을 퍼뜨렸다. 하나님의 은총이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지론이었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죄가 아담으로부터 유전된다는 사실은 정면으로 부인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에 대항해 하나님이 선을 선택하도록 인도하시지 않으면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논박했다. 하나님은 택한 자를 미리 예정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며, 인간이 행하는 그 어떤 행동도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위와 같은 가르침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로 지금까지 교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의 신학사상은 가톨릭 신학자와 개신교 신학자들의 사상 속에 깊이 스며들었으며,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경우 설교하고 책을 쓸 때마다 그의 사상을 번번히 인용했다. 구원 문제에 있어 인간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했던 것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이다. 이 저작은 로마가 서고트족에게 함락된 사건을 계기로 쓰여지게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가 함락된 이유가 로마의 토착신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기독교인들을 비난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과 사역을 옹호하고 설명함으로써 그러한 비난에 맞섰다. 그는 가인과 아벨 이후부터 세상에는 두 도시, 곧 하나님의 도성(신자들)과 인간의 도성(이교도 사회)이 존재해 왔으며, 비록 세상에서는 그 두 도시가 서로 얽혀 있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도성인 교회를 영원히 세운다고 말했다.

참된 복음을 아무리 외쳐도 강퍅한 세상이 그것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다고 한국교회 성도들은 자주 넋두리한다. 지난 세기 동안 맛보았던 한국교회의 기적적인 성장이 이제 멈춘 것은 아닌가 하는 절망감마저 교회 공동체 속에 공유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세상적으로 타락한 어거스틴을 회심시킨 무명의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하게 희망을 가지고 인내로 복음을 전하다 보면 교회사를 다시 쓸 수 있는 21세기형 어거스틴을 우리가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전적으로 타락한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꾸준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 보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새로운 지도자를 우리가 만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살인이나 강간에 인생을 바친 파렴치범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은 그들 중에 어거스틴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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