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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여…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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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힘을 주세요  

- 이철환 동화작가 


직장에서 쫓겨난 뒤, 정호씨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여러 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아파트 뒷산에도 올랐지만 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정호씨가 숨을 헐떡이며 산의 중간쯤 올랐을 때였다. 한 남자아이가 철조망 울타리에 바짝 다가앉아 굵은 나무막대를 지렛대로 삼아 철조망 아래쪽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지름길을 만들기 위해, 울타리를 망가뜨리는 아이를 정호씨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얘, 그런 짓 하지 마라! 많은 돈 들여 만들어놓은 걸 그렇게 망가뜨리면 되겠느냐!" 아이는 딴청을 부리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산 아래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양심 없이 사니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지." 정호씨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다음날도 정호씨는 산에 올랐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산에 오르는데, 전날 아이가 망가뜨린 철조망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구멍이 난 철조망 안에 밥이 담긴 커다란 그릇이 놓여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는 '집 없는 쌈지에게 먹을 걸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어미 개 한 마리와 어미를 쏙 빼닮은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경계의 눈빛으로 정호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어미 개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밥그릇 앞에 앉았다. 또랑또랑한 눈빛을 가진 새끼 강아지도 어미 곁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어미 개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정호씨는 그제서야 아이가 철조망 울타리에 구멍을 낸 이유를 알았다. 

발을 저는 어미 개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정호씨는 마음이 짠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호씨가 어둑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호씨 아내가 말했다. "요즘, 우리 교회에 새벽예배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시는 할아버지가 있거든요.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할아버지신데 오늘 새벽에는 교회 앞에서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걸으시는 모습이 너무 힘겨워 보여 도와드리려고 갔더니, 웃으며 사양하시더라고요. 할 수 없이 앞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어요. 

할아버지는 한 걸음을 뗄 떼마다 '주여, 힘을 주세요'라며 말씀하시고, 다시 한 걸음을 뗄 떼마다 '주여, 힘을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눈물을 글썽이는 아내 얼굴을 정호씨는 바라볼 수 없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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