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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학, 성경에 길을 묻다] ‘에티오티아 가정’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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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성경에 길을 묻다] ‘에티오티아 가정’의 교훈 
 
- 권명중 교수(연세대 경제학)


1985년 100만명의 아사자를 낸 에티오피아의 대기근 때 영국 BBC의 보도 내용이다. 기근으로 이미 두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얼마 안 남은 구호식량으로 남은 아이들을 끝까지 살리려고 영양실조가 가장 심한 아이와 조금 사정이 나은 아이 사이에 식량 배분을 다르게 하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빵 한 조각을 두고 어머니와 아이가 모두 굶주려 있으면서도 서로 빵을 차지하려는 적대관계나 힘센 어머니가 빵을 차지해서 먹어버리는 '이기심'이 없다.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의 조직에서는, 왜 에티오피아 '가정'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업주인과 고용인은 상반된 이해관계로 인해 대립이 일상화되어 있고 이런 대립은 올해 노동절에도 집회와 시위로 그대로 표출되었다. 왜 기존의 경제학은 이처럼 고질적이면서도 중대한 문제에 속수무책이고, 벙어리가 됐을까. 

주류 경제학에서 기업주인은 정해진 임금을 주고 고용인에게 최대한 많은 일을 시켜야 최대한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해야 사회에 환원될 것이 많아 고용인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기업주인이 고용인에게 최대한 많은 일을 시켜 얻은 이익이 사실은 고용인의 피와 땀으로 얻어진 것이므로 투쟁을 통해 그것을 빼앗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경제학의 대표적 이론들은 이와 같이 고용인과 고용주 중에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이어서 본질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영국의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약 150년 전 고용주와 고용인의 대립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랑의 경제학'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기계와 같이 증기 또는 자력을 동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동력으로 일하므로 강한 압력이나 많은 보수로 최대한의 일을 하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으로부터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게 하는 방법은 영혼을 감동시키는 수밖에 없고, 이것은 '자기희생'과 '사랑'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조직이 최대한의 능력과 이익을 성취하려면 위의 이야기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과 똑같은 애정을 고용인에게도 베풀어야 한다. 

존 러스킨의 이러한 사상은 성경에 있는 '포도원 품꾼들 이야기'(마 20:1∼14), 즉 포도원에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 처음에 온 사람과 똑 같은 품삯을 주는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 이 비유는 기존 경제학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의 경제학으로만 이해가 될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주들이 그 구성원들로부터 조폭 두목이 그의 똘마니로부터 받는 충성만큼의 헌신도 받고 있지 못하다면 그 자신의 존재 의의와 사랑의 깊이를 생각해볼 일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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