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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일일생(一日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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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일생(一日一生)     
 
- 김석년 목사(서초성결교회)
 

로뎀나무를 통해 삶을 묵상하는 동안 삶보다는 죽음을 더 많이 묵상하지 않았나 싶을 만큼 다양한 죽음의 소식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연기가 인생이고 인생이 연기였던 명배우의 죽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철학적 유언을 남기고 서거한 전직 대통령, 죽음의 무기로 세상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실험, 여백을 두고 씻어 내리기에도 가슴 먹먹한 사건들이 한 주간 동안 연속적으로 발생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교시절, 당시로서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던 척추 수술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극적인 순간이 있었다. 생명의 한계선에서 체득한 지식은 '인간은 죽음을 당면하는 순간 삶에 대한 가장 큰 애착을 느낀다'는 점이다. 죽음에 직면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살고 싶고, 살아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죽고 싶다는 고백의 이면에는 더욱 잘 살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의 종말을 인식하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삶의 문제로 귀결된다. 곧 죽음과 삶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실존 인물인 모리슈워츠의 삶을 그린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보면 이런 대화가 있다. "우리 모두 찾는 게 그거잖아. 죽어간다는 생각과 화해하는 것.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 있겠지." "그게 뭔데요?" "살아가는 것과 화해하는 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 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람이 거기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인생의 종말을 의식하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듯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종말신앙이다. 일일일생(一日一生),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인생 전체의 축소판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롭게 탄생하듯 사랑하는 이들을 대면하는 기쁨,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또한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땀 흘리며 수고하는 보람된 오후, 사랑하는 이들과 둘러앉은 저녁 식탁,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를 읊조리며 조용히 눈감는 하루의 종말. 일일일생을 마감하며 편한 마음으로 '다 이루었다'를 고백할 수 있다면 비록 내일 아침 천국에서 눈을 뜬다 할지라도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가는 이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더 많이 사랑하며 잘 살라는 당부가 아니겠는가. 죽음에 당면한 예수의 마지막 유언도 그랬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네 어머니라." 하늘을 향하여 죄를 초월한 사랑을, 인생을 향하여 관계를 초월한 사랑을 호소한 것이다. 일일일생, 오늘 하루를 마감하기 전 이렇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용서했는가, 사랑했는가?"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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