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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울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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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의 의미       
 
- 조병호 한시미션 대표·목사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이 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애굽 총리 요셉이 방성대곡하며 운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애굽 바로 왕이 살고 있는 왕궁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자신이 지난 세월 겪은 많은 고통이 그 가족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 하에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 요셉이 울음으로 형제 갈등을 녹여냈던 것이다. 요셉의 울음은 지난날의 시간들이 하나님의 구체적 손길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흘리는 화해와 기쁨의 눈물이었다.

다윗 왕도 두 번 크게 울었다. 첫 번째는 사울 왕이 죽었을 때다. 사울이 죽자 많은 사람들은 다윗이 기뻐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은 후 유다 지파만의 왕이 된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哀歌)를 지어 유다 지파에게 가르쳤다. 또한 유다 지파로 하여금 북쪽 베냐민 지파에 대해 앙금을 갖지 않도록 함으로써 이후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다윗의 울음에는 자신이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임명권을 소중히 여겼다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결국 다윗의 진실을 이해한다.

두 번째 울음은 아브넬이 죽었을 때이다. 7년6개월간 북쪽 11지파의 실질적인 권력자였던 아브넬이 다윗을 찾아왔다. 동족 간에 무력 충돌 없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요압이 자신의 동생 아사헬의 죽음과 관련한 개인적 원한 및 2인자에서 3인자로 밀려날 것을 정치적으로 우려해 아브넬을 암살한다. 다윗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만큼의 위기였다. 왜냐하면 북쪽과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다윗이 아브넬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놓고 그를 죽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때 다윗이 애가를 지어 부르며 운다.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므로 결국 모든 백성들은 아브넬의 죽음과 다윗이 관련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울음의 진정성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다윗의 두 번의 울음은 자신에 대한 오해로 공동체가 분열되는 또 다른 위기에 대한 염려의 눈물이었다. 

또 한 사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울음이다. 그는 남유다를 70년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어 훈련시킨 후 다시 시작하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듣는다. 여호수아와 만나세대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직전까지 지내 온 세월 동안 지키지 않았던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날들을 계수하니 70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시드기야 왕과 유다 백성들은 듣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예레미야를 친바벨론주의자로 오해한다. 끝내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버티던 예루살렘이 점령됐다. 예레미야는 불타는 성전과 왕궁,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운다. 죽은 어머니의 피나는 젖을 빠는 아이의 울음은 예레미야의 눈이 눈물에 상하게 하고, 간이 땅에 쏟아지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울고 또 울던 예레미야는 결국 소망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으로 인해 진멸당하지 않고 남은 자들이 바로 소망이라는 것이었다. 예레미야의 울음은 현재의 아픔과 미래에 대한 소망의 눈물이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국민들은 많이 울었다.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울기도 했다. 이제 그 눈물이 화해와 이해, 그리고 소망으로 바뀌는 기적의 눈물이 되었으면 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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