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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절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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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모를 일이다  

- 리처드 마우(풀러신학교 총장)
 

필자가 태어난 것은 대공황도 이미 기억 속으로 사라졌을 때다. 하지만 우리 가정의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당시 그게 극도로 생생한 기억이었다. 경제 재난을 겪고 나자 그들은 말끝마다 불안감을 표출했다. 어떤 심각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어른들은 재정적인 문제를 언급하곤 했다. "하지만 절대 모를 일이야." 일상 대화에서 이 말이 거의 상투적으로 사용되었다. 

할머니는 이웃과 얘기할 때 할아버지가 일하시는 공장에서 그의 시급을 올려 줄 것 같다고 말한 다음 "하지만 그건 절대 모를 일이지"라고 덧붙이곤 하셨다. 두 삼촌의 자동차 수리 공장 일도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그건 절대 모를 일"이었다. 부모님도 아마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금년 여름에는 아디론 댁에서 한 주간 휴가를 보낼 만한 돈을 저축했지만 "그건 절대 모를 일이다." 

재정에 관한 나의 언어 속에는 이 말이 용케도 뿌리를 박지 못했다. 부모님 세대 이후 사람들로부터는 그 말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 혹은 그와 비슷한 말이 요사이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우리는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절대 모를 일'이라는 교훈을 극적으로 배우고 있다. 이 교훈적 경험은 심대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언젠가 난 글을 통해 '경건한 불가지론'(필자의 표현)을 부드럽게 비평한 적이 있다. 경건한 불가지론이란 인간 역사(歷史)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役事)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특히 정의와 평화에 관한 일에서 사태의 흐름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어떤 악한 반사회적 행위가 벌어지고 있을 경우 우리는 사태를 변화시키려 힘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님이 신비한 목적을 위해 모종의 선을 이루고자 그 악행을 이용하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절대 모를 일이야'라는 태도로 이를 관망할 수도 있다. 

그런 종류의 경건한 불가지론이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나의 소신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이 현재는 어느 정도 경건한 불가지론자가 되어 가고 있다.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째, 경제사(史)에 관한 한 내가 진보의 신화를 받아들이는 데 지금까지 지나치게 무비판적이었음을 인정한다. 이후에 경제 시장에 좀 더 좋은 날들이 도래한다면 '절대 모를 일'이라는 문구를 종종 상기할 것이다. 

하지만 둘째,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모종의 섭리적 선이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도 난 키워가고 싶다. 세계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지만 절대 모를 일이다. 아마 주님께서 이를 통해 보다 큰 선을 창출하실 것이다. 

어쩌면 물질적 번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를 보다 깊이 성찰해볼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보다 깊이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배우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절대 모를 일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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