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마중물과 같은 사람

첨부 1


마중물과 같은 사람 

- 김은호 목사 (오륜교회)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 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지하에 있는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했다.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에 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그 압력에 의해 지하에 있던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이때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부른다. 저 밑바닥 샘물을 마중 나가서 데려온다 하여 마중물이라 불렀다. 영어에서도 이 물은 'calling water' 즉 '물을 부르는 물'이라고 불린다. 마중물은 단지 한 바가지 정도의 적은 양의 물이지만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샘물을 불러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중물은 땅속 깊은 곳에 있은 우물을 끌어 올려놓고 자신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마중물은 버려지는 물이 아니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중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마름을 해결 받고, 생명을 유지하는지 모른다. 

바로 예수님이 마중물과 같은 삶을 사셨다. 예수님도 사망의 무저갱까지 내려가심으로써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은 영원한 생수를 마시게 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어 그를 믿는 모든 자들로 생수를 마시게 한 것이다. 

성경을 보면 마중물과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나바이다. 바나바는 선교의 주역이 자신에게서 바울에게로 옮겨졌을 때에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그림에서 바울의 등장을 기뻐하며 후원하였다. 

또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사울을 두려워하며 회심을 의심하고 있을 때 희생을 감수하며 사울을 제자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리고 고향에 묻혀 지내던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겼다. 이처럼 바나바는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길이 열릴 수만 있다면 언제나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또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서로 화해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싸움을 부추기고 이간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화해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희생과 수고가 뒤따르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손익 계산을 먼저 한다. 그래서 그것이 아무리 옳은 일일지라도 손해가 될 것 같으면 그냥 모르는 체하고 지나친다. 그래서 뺑소니 차량을 보고서도 뒷감당이 쉽지 않다며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를 따지기보다 그것이 얼마나 유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진정한 크리스천인가'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았느냐로 결정된다.

바나바는 집사도 아니었고 사도도 아니었다. 바나바는 평신도였다. 하지만 바나바는 마중물 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질수록 마중물 같은 사람이 그리워진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