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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랑은 상식을 초월한다. (욥기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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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식을 초월한다.
 
오늘의 말씀: 욥기 10장

욥은 하나님 앞에 고통들을 쏟아 놓고자 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10:1)
신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온전에 이르기까지
통과해야할 훈련의 과정 가운데는 이처럼 많은 고통들이 있다.

이런 고통 중에 가장 고통스런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행하시는 일들이
그의 속성과 성품에 불일치 하는 듯 보일 때이다.
욥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고통이란 바로 이런 고통이다.
욥이 말하고 있는 이런 고통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욥이 가진 첫 번째 의문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의로우신데
"어째서 의로운 자가 고통을 당하고 불의한자가 형통할 수
있는가?" 였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주께서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고
선히 여기시나이까?" (10:3) 라고 묻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을 생각할 때
보편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의로운 자는 복을
불의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행하시는 것을 보면
이와 반대적으로 행하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고자하는 자가 오히려
고통을 받고 불의한 자들이 형통함을 누린다.

하나님은 스스로 의로우심을 버리시고 원칙 없이 행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이런 문제를 이해
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모든 시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들이었다.

욥이 가진 두 번째 의문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신데
"어째서 만드신 것을 스스로 멸하시나이까?" 라는 물음이었다.
욥은 이런 의문에 대하여 하나님께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욥이 가진 세 번째 의문은 하나님은 자신을 세상에
존재케 하셨는데 "어째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해 주심으로
무의미한 삶을 살게 하시느냐?" 였다 (10:18)

이처럼 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물음을 점점 자신의 삶으로 접근시키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이 보편적인 문제들이 개인의 삶 가운데
얼마나 고통스런 문제가 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항상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크고 작은 대부분의 일들은
이런 문제로부터 오는 것들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의 속성과 성품에 일치하지 않으시는
행동을 하실 때 우리가 그 이유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이 문제로부터 오는 고통으로부터 결코 자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은 그의 성품에 불일치하는 행동을 하실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하여 우리가 말할 수 잇는 한가지 분명한 대답은
우리의 눈에 하나님의 행하심이 그의 성품과 불일치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의 속성과 성품에 불일치 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살고자
하는 자들이 어째서 고통을 받으며 사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욥기가 주는 유일한 대답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에게 허용된 고통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인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하면
아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상식 수준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특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아버지의 사랑이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랑은 아들에 대하여 언제나 친절한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특별하다면 그 사랑은 때로는 친절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책망이나 징계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특별한 사랑일수록 상식의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특별한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는데
만일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께서 참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징계하실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묻는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성과 성품에 불일치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그의 백성들에게 행하실 때
그것은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일수록
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상식을 훨씬 초월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그를 더욱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대하여 더욱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은
언제나 상식을 초월하여 특별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안다면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을 알게 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생애 동안
특별한 사랑은 언제나 상식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심으로 때때로 주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고난으로 나타날때에도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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