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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거스틴의 참회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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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참회의 눈물


어거스틴(354∼430)은 참으로 풍부한 정서를 소유한 인물이었음을 그의 ‘참회록’을 통해 알 수 있다.특히 그의 참회 장면은 풍부한 감성을 소유한 눈물의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게 한다.북부 아프리카의 작은 항구도시 히포의 감독으로 76년의 일생을 살았던 어거스틴은 30세에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339∼397)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까지 방황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17∼19세에 카르타고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쾌락과 정욕의 노예가 됐고,급기야는 잘못된 진리 추구에 사로잡혀 혼합종교인 마니교에 빠져들어 20대의 청춘을 보내게 된다.이러한 그의 모습은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는 다른 엉뚱한 결과였다.성직자가 된 그는 훗날 당시의 모습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가 내게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걸음은 세상으로 빨랐고,나의 영혼이 공허하면 할수록 세상은 내게 가까워졌습니다”(3권)라고 술회했다.

그러던 그가 30세가 됐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그 전환은 암부로시우스를 만나 이뤄지는데,어거스틴은 이러한 순간에 먼저 어머니의 눈물을 잊지 않는다.특히 우리는 그 명언,“자,이제는 떠나시오.하나님이 당신을 복주시기를!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3권)를 듣게 되는데,이는 얼마나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준다.그 결과 어머니의 눈물은 어거스틴 본인의 눈물로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자신을 탕자로 비유하면서 쏟아지는 참회의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거스틴의 모습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탕자를 눈물로 기다리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8권)

이러한 눈물은 32세 때 그 강도가 더해가는데,“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내 인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 앞에 드러났고,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나는 홀로 조용히 통곡하고 싶었습니다.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화과나무 아래 엎드렸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베드로전서 2:5)가 됐습니다”(8권)

이렇게 해서 어거스틴은 33세 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16세의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부활절 아침 밀라노에서 암부로시우스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이날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아침이었다.

“이때 아들도 우리와 함께 밀라노로 와서 우리 죄를 완전히 씻어내고 새로운 은혜를 받는 세례를 받았습니다.과거의 내 죄를 생각하고 당신이 세우신 교회의 찬양을 들을 때 내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거룩한 음성이 고요히 내게 들리고 당신의 진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내 영혼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당신을 향한 경건한 감정은 이내 흐르는 눈물이 되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꼈습니다”(9권)

총명했던 아들 아데오다투스는 아쉽게도 얼마 후 어거스틴의 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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