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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난 자네 때문에 세 번 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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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네 때문에 세 번 울었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영웅이자 한국 육상계의 원로이었던 손기정(1912-2002) 옹이 지난 12월 15일 숙환으로 돌아갔습니다. 며칠 전에는 고인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베를린 올림픽에서 의식적으로 일장기를 가리는 모습의 사진이 뒤늦게야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36년 마의 2시간 30분벽을 깨뜨리면서 월계관을 쓴 손기정 옹은 1937년 당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교장이었던 인촌 김성수선생의 권유에 응해 상학과(경영학과 의 전신)에 입학했습니다.

재학 당시 그는 1937년 4월 27일 개최된 「정수역전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해서 우승했으며 이어서 열린 조선 학생육상대항경기대회에 출전해 보성전문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으나 한 학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일본에 의해 메이지 대학에 강제 입학당하면서 한국을 떠나야만 했고 일본은 그의 마라톤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는 엄청난 노력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우승 당시 몸집은 167cm 55kg의 가슴이 두텁고 날렵한 체형, 마라톤 하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체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에다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독립군들이 바지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면 다리 힘을 키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렇게 훈련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손 기정 옹은 마라토너이자 육상 지도자로써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내면에 숨겨진 민족애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에서도 그는 비극의 주인공으로만 부각될 뿐 정작 그의 소신은 그늘에 가려져 있습니다. 일본 마라톤 팀이 베를린 현지에 도착한 것은 대회가 열리기 두 달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기가 열리는 날까지 일장기가 달린 유니폼을 전혀 입지 않았습니다. 유니폼을 더럽히기 싫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실은 대표선수가 되기 전부터 일장기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리스트들이 서명하는 독일 국빈 방명록에도 “손기정 KOREA”라고 서명했습니다. 선수촌 안팎에서 외국 선수들이 출신국을 물어도 “KOREA에서 왔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해지는 베를린 올림픽의 뒷이야기보다도 우리에 깊은 여운을 주는 것은 194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0주년 행사에서 백범 김구선생이 손기정에게 전한 말입니다.

“난 자네 때문에 세 번 울었네. 첫째, 나라 없는 한국 청년이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나라 잃은 설움에 울었고, 둘째, 자네가 지원병으로 필리핀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전사했다는 선전을 중국에서 듣고 울었으며, 셋째는 독립이 안 되었으면 이 장한 기록이 묻혀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독립의 감격에서 울었다네.”

먼 옛날의 기록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불과 몇 달 전에 영원한 마라토너인 그는 인생이란 긴 마라톤을 다 달리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장한 달리기와 애국심이 그립습니다. 옛날 나라 없는 슬음은 그렇게 컸지만 나라를 되찾은 오늘날에는 나라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손기정 옹을 생각하면서 3번이나 울었다는 김구선생의 눈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은 고대 경영대학원의 경영신문에 실린 글을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경북대학교 경영학부  정충영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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