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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상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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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공경  

- 리처드 마우 (풀러신학교 총장)
 

아시아의 경우 가족 중에서 맨 먼저 예수님을 믿은 젊은이들에게는 조상공경이 중요한 신학적 문제로 대두된다. 그들 중 다수가 개인적으로 이 문제와 씨름한다.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있었던 어느 토론에서 이 문제가 대두됐다. 통역을 했던 재능 많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최근 세례를 받았노라고 고백했다. 그녀의 아버지 편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집안의 기독교 신앙은 6대에 걸쳐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계는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는 결혼과 함께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어머니 집안은 모두 불교 신자였다. 그런데 최근 이 젊은 여성의 이종사촌 소년이 세례를 받게 되고 이것은 가족 간에 위기를 야기했다.

문제는 집안 제사가 있을 때 그 소년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가족이 묘지에 모이면 소년은 외아들이었으므로 당연히 제사 의식에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했다. 소년이 어머니에게 기독교 세례를 받겠다고 알렸을 때 어머니가 공황에 휩싸인 것은 당연했다. 

소년은 담임목사를 찾아 조언을 얻었다. 조상공경과 조상숭배 의식의 차이를 명확히 안다면 제사 때 장남의 역할을 계속하는 건 괜찮다는 게 그 목사의 조언이었다. 사실 그것은 사도 베드로의 조언과도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뭇 사람을 공경해야’(헬라어, 티마오) 하되 ‘두려워해야’(헬, 포베오) 할 분은 하나님 뿐이다(벧전 2:17).

하지만 많은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보다 큰 문제가 있다. 중국의 어느 신학교에서 강의를 마쳤을 때 한 여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전 집안에서 가장 먼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앞서 간 조상이 지옥에 있다고 가르치잖아요. 이런 신앙을 받아들인 게 마치 조상들을 배신한 것 같아 괴롭습니다.”

난 먼저 쉬운 답을 주었다. 복음의 선포를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구원 문제는 비밀이다. 우린 하나님께서 조상 모두를 지옥에 보내셨다고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돌보심에 맡길 뿐이다.

한 가지 얘기를 더 했다. 중풍병자를 침상에 매달아 예수님께 치료받게 했던 사건을 생각해 보라. 군중이 가득 차 있어 들어갈 수 없자 지붕을 뚫고 병자를 침상 채 달아 내렸다. 주님은 “저희 믿음을 보고 이르셨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 5:20). 

풀러신학교의 전 총장이자 나의 멘토인 데이비드 앨런 허버드가 언젠가 이 본문으로 설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감동시킨 것이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신앙이었음을 강조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셨다. 이것은 심오한 비밀이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에 따라 행동할 수는 있다. 때로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대신해 우리 편에서 믿음을 발휘한다면 주께서 우리 믿음을 존중해 그런 사람들에게 용서를 베푸실 것이라고 희망해 볼 수도 있다.

허버드와 나의 이런 생각은 도를 지나친 것인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 자비의 광대무변함을 말할 때는 지나쳐도 좋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조상 공경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복음의 대의가 빛나기를 기도한다면 그에 관한 신학적 문제로 진지하게 씨름하는 것이 그런 문화 속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우리의 의무라는 거다.

(번역 김춘섭 예수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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