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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육신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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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신비  
 
-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기독교는 신비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신비를 모두 제거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삼위일체를 어떻게 인간의 이성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과연 이성적인 논리로 다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시간과 공간 안에 가시적인 몸으로 다시 오리라고 약속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과연 이해 가능한 인간의 이성으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계시를 떠나 신비적 경험만을 추구하는 신비주의가 우리가 지향할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면, 신비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경이 보여주는 신비조차 외면하는 이성주의도 우리가 추구할 신앙의 모습은 아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는 무분별한 신비주의의 피해가 넘쳐나지만 신비주의를 경계하기 위한 근본주의적인 닫힌 이성으로 기독교 신앙의 부요를 스스로 저버린 피해도 동시에 넘쳐난다. 

기독교 신앙에서 신비 중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 혹은 성육신의 사건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속에 들어오신 것이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성탄절, 크리스마스다. 어떻게 전능하신 절대자가 연약한 아기의 몸으로 역사 속에 오실 수 있단 말인가? 전능자가 못할 일이 있겠는가는 믿음만으로 이 사건의 모든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사건을 이해하려는 교리적 접근은 다양하게 시도되어 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오셔야 했고, 무엇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기 위해 그렇게 오신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는 또한 거룩한 삶의 모범이 되시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구약의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오신 것이라고 가르침을 받아 왔다. 이 모든 설명은 성경적인 것들이고 우리 신앙 고백의 중요한 근거들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이성적인 이해만으로 크리스마스의 사건이 오늘의 우리에게 삶의 환희가 되기 위해 충분한 것일까?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2000년 전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환희가 우리의 삶에서 아직도 재현 가능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성경은 보혜사 성령님의 오심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여전히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약속한다. 진리의 영인 그분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시며 그렇게 우리를 만나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요 14:16∼17). 그런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참으로 만나는 성탄이 되시기를 빌어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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