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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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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를 아는 것은 그의 가장 뛰어남에서 중세의 정신을 아는 것이다” 라고 현대의 한 평론가가 말했다.

뚱뚱하고 느린 소년으로 나중엔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리운 토마스는 5살 때 역사적인 몬테카지노 대수도원으로 보내졌고 14세엔 나폴리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토마스는 어느 강사의 영향을 받아 도미니크 수도회에 가입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아퀴노 근처에 살았던 그의 가족들은 그를 그곳에서 강제로 끌어내었다.

그리고 그의 형들은 창녀로 그를 꾀었고 (이때 토마스는 그들을 향해 불붙은 통나무를 집어 던졌다) 또, 나폴리의 대주교 자리를 사줄 것을 제안했으나 토마스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다시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 쾰른에서 위대한 알버트의 문하생으로 수학했으며 그의 재능은 곧 눈에 띄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평균 연령보다 네 살이나 어린 31세 때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파리와 이태리에서 강연하였다. 그의 작품은 모두 18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그가 기독교 교리의 완벽하고 조직적인 철학적 분석을 위해 시도했던「신학대전」과 「반(反) 이교도(Contra Gentiles)대전」이다.

그러나 1272년 12월 찬양 미사 중 그에게 찾아온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체험으로 그는 더 이상 쓰기를 포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적었던 모든 것들이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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