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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성령 은혜 '섬김'으로 나눈 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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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은혜 '섬김'으로 나눈 35년

- 금호제일감리교회 장광영 목사 -


서울 성동구 금호동4가 96 금호제일교회 장광영 목사(64). 그는 유명한 부흥사이면서 학구파요 행정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목회에서 24시간은 짧다. 독서하고 기도하며 분주하게 심방을 다니고 부흥성회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든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아침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독서를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심방, 회의, 독서, 기도, 산책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지난 14일 오전 11시 금호제일교회. 장 목사는 감리교 서울연회 성동지방의 여선교회원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모임에서 21세기 여선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미국연합감리교회 동부지역교역자 및 평신도 집회를 인도하러 미국으로 가기 하루 전에 열린 강연회였다.

그는 한국교회 성장에는 청년을 키워내고 화평케 하는 여선교회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교회와 민족을 위해 더욱 기도하며 전진하는 여선교회가 되길 강조했다. 평소 청년과 얘기하길 좋아하고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는 성품이 그대로 목회현장에서 반영됐다.

장 목사는 강연이 끝난 뒤 개나리가 흠뻑 피어있는 교회 앞 언덕으로 산책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판잣집들이 빼곡이 들어찼던 곳이 지금은 공원으로 변했다. 금호동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그는 판자촌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35년을 회상했다.

“66년 금호제일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을 때 교인이 40명이었습니다. 모두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심방하며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눴습니다.”

장 목사와 강영안 사모는 하루 죽 한 그릇으로 끼니를 이을 정도였지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교회는 점차 사람들로 넘쳐나고 사랑과 꿈이 있는 교회로 성장해 갔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전도와 기도에 몰두한 장 목사는 후두암에 걸리고 뒷바라지하던 부인은 빈혈로 병을 얻었다.

“기도 가운데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나를 맡겼어요”

그는 69년 1월 1일부터 지금은 고인이 된 동두천제일교회 권중길 목사를 초청해 부흥성회를 열었고, 부흥회 이틀째인 그 해 1월 2일 후두암이 낫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다.

그 다음부터 그의 목회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영적 힘을 얻은 그의 말씀에는 힘이 있고 집회에는 성령의 뜨거움으로 환자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58년 군남교회 담임을 시작으로 출발한 그의 목회인생에 대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부흥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70, 8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집회를 풍미하는 유명한 부흥사가 됐다. 지금까지 1천 5백여회 부흥회를 인도했다. 미국성회만 1백회를 가졌다. 장 목사는 부흥사이면서도 물질에 깨끗하고 행정력이 뛰어나며 역사자료정리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목회자로 잘 알려져 있다. 정직한 성품에 한 번 결정한 일은 열정을 다해 추진하는 뜨거움이 있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목회자로 성공의 길에 들어서면서 그는 감신대를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생들을 모두 교회로 초청, 식사를 대접하고 성경을 선물로 줬다. 그들은 지금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목회자로 성장해 있다.

장 목사는 경기도 옹진군 자월면 자월리의 자그마한 섬에서 태어났다. 몇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섬. 그는 너무나 가난한 섬생활이 싫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섬을 탈출했다. 그리고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감신대에서 공부했다.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그는 물질에 초연하고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최선을 다하며 섬기는 목회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6.25때 군번 없이 켈로부대원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강직한 성격의 그는 섬기는 목회자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으나 성령의 은혜를 받은 뒤 섬기는 목자가 됐다. 이웃을 섬기고 교단의 원로목사를 섬기며한 번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는 변치 않고 섬기는 의리의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는 교인들에게는 ‘변화 있는 삶’을 가장 강조한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은 신앙과 생활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들이 사는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 목사는 지난 89년 한국에 처음 감리교신앙을 전파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올더스게잇 수양관에 60만 달러를 들여 아펜젤러 기념교회를 건립했다. 그리고 아펜젤러 기념장학재단을 설립, 한국인 학생들을 위해 매년 1만 달러의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그는 또 미국의 뜨레스디아스 운동을 5년간 연구 89년 한국에 처음 프로그램을 개설했으며 지금까지 6천 여명의 훈련생들을 배출했다.

장하구 김재준 최병헌 전덕기 이용도 목사를 존경하고 에밀부르너의 ‘정의와 사회질서’에서 목회정의를 세웠으며 워치만 리의 ‘영에 속한 사람’이란 책을 통해 목회자의 자세를 배웠다는 장 목사는 ‘성령의 은사와 변화 있는 삶’을 강조했다.

국민일보 4월 20일
이승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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