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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네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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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라!!

- 김미정 집사(36세. 경기도 안산시. 안산동산교회) -


처음으로 기도를 하다

  어린시절 친구를 따라 주일학교를 다니던 무렵 우리 아버지는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셨던지 "보따리 싸서 나갈래? 교회 갈래?"하며 겁을 주시곤 했다. 그 후 중학 시절에,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간 것을 가지고 아버지가 몽둥이까지 들고 나와서 야단하시는 바람에 너무나 겁이 난 나는 그때 완전히 교회에 발을 끊고 말았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당시만해도 신혼생활이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교회를 빠지곤 하였다. 그러는사이에 두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 둘이 얼마나 병치레가 잦은 지 한 달에 20일 이상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한 번은 돌쯤된 큰 아이가 설사병이 들어서 스무 날이 넘도록 온 동네 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고 나중에는 시꺼먼 똥까지 누는데, 겁이 덜컥난 나는 '이러다가 이 아이를 죽이겠다' 싶어서 서울역 뒤에 있는 소화병원에 입원을 시켜놓고서 그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작은 아이는 약해서 병치레가 더 심했고, 두 아이가 한달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입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하나님께로 한 발자국씩 더 가까이 나아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광명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다니던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성령의 부르심을 받고 전도를 시작하다

  남편과 함께 우리교회에서 실시하는 제자사역훈련을 받으면서 나는 비로소 말씀에 눈을 떴고 마음이 감동되어 스물 아홉에 집사 직분을 받아 순장(구역장)과 교사로서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그러다가 4년 전에 전도대 헌신예배를 드리는 중 성령의 부르심을 받고 전도생활을 시작하였다. 물론 전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많이 울었다. 처음 전도할 때는 한 주택 지역을 혼자 맡아서 한 달 동안 가가호호 방문하는 식이었는데, 그런데 남의 집 대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는 순간마다 그 집에서 누군가 뛰쳐나와서 소리를 지를까봐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는 것이었다. 실지로 욕과 삿대질을 하면서 당신같은 사람 때문에 사네, 못사네 하는 수모도 많이 당하였다. 처음에는 속이 상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버린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안떨어지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어렵게 전도훈련을 받은 지 벌써 4년이 가까웠다. 금요일과 주일날만 빼고는 매일 아침 전도를 나갔는데 그렇게 전도를 한 지 일년쯤 지났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왜 전도를 해야하는 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때는 누가 아무리 삿대질을 하고 미친사람 취급을 하고 고난을 겪어도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이라면, 그런 은혜를 나같은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었다.

  안산은 아파트단지이다. 전도를 나가면 한 사람도 문을 열어줄 것 같지 않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판단으로는 하루종일 한 사람도 못 만날 것 같지만 전도현장에는 늘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영혼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서 건드려주기만 해도 열매를 딸 수 있는 영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한 기쁨과 감사에 몸을 떨곤 했었다. 그래도 한때는 이런식의 전도는 노력에 비해서 열매가 너무 적다는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몇 명을 전도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추우나 더우나 남의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그 모습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을 때 더 이상 나는 전도에 대한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금식기도로 위장병과 자궁염증 등을 치료받다

  위장이 나빠진 것은 10여 년 전 부터이다. 그때 우리는 상당한 부채를 끌어안고 집을 사게 되었는데 그 부채로 인해 너무 무리하게 신경을 썼던 탓인지 위장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에서는 신경성위염이라 했고, 그 후 위궤양으로 악화되어 체중이 42kg가 될 정도로 몸이 말라갔다. 그동안 중간 중간에 병원을 다니며 계속 약을 먹으면서도 전도는 계속 다녔다.

  그리고 지난 일년 동안은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기도를 계속 하였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귀한 은사를 주셨는데, 그 중에서 중보기도의 은사는 전도활동을 하는데 꼭 필요한 은사로, 기도를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중보기도 대상자의 영적인 상태를 알려 주셨다. 그 이후부터는 기도에 한 번 매달리기 시작하면 잠도 잊고 끼니도 거르면서 무리를 했더니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이다.

  특히 두 달전부터 더 심해졌다. 그전에는 위장이 안좋으면 죽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곤 했는데 이때는 죽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물도 안받는 것이다. 죽이라도 조금 먹으려면 약을 먹어야만 넘어갔다. 그때 나는 웬지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려는 것같은 마음이 들었고, 처음으로 죽음이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하던 지난 해에 하나님께서 "네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라"는 분명한 응답을 주셨기 때문에 "주님, 이제 주님을 좀 더 사랑하면서 살고싶고, 금 그 사랑을 알아가고 배워가고 있는 중인데 그러면 제게 사랑할 기회를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서 계속 병원을 다녔으나 근원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다. 참으로 답답했다. 의사도 이상하다고 하면서 그 정도 치료를 받았으면 분명히 나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순간 나는 확실히 깨달아지는게 있었다. '아, 내 병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쳐주셔야 하는 거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고쳐주셔야 산다'는 믿음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열흘금식하라는 소원을 주셨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붙드심으로 강남금식기도원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10일 금식은 정녕 고통의 연속이었다. 금식에 들어가는 첫날, 시커먼 쑥색 오물을 엄청나게 토해내었고 밤에는 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나서 처음 금식 5일 동안은 온몸의 뼈마디 뼈마디가 다 무너져내리는 것같이 쑤시고 아파왔고 특히 4일째부터는 몸에서 열과 한기가 드는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이 쑤시고 에리는 통증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고통중에서도 죽을 각오로 예배를 드렸다. 그랬더니 5일째 되는 날부터 열이 내려가면서 뼈마디가 쑤시고 에리는 것도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6일째 되는 날부터 위장이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8일째 되는 날, 너무 아파서 '오 주여! 하나님, 제게 10일 금식 소원을 주셔서 순종했는데 왜 이렇게 통증이 안가시나요?'하고 호소하였다. 그리고나서 오전 예배에 들어갔는데 예배중에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온몸에 진동이 오면서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10일 아침에는 거짓말같이 위장의 통증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체질적으로 자궁이 약해서 오랫동안 고생을 해왔다. 조금만 오래 서있거나 피곤하면 자궁에 염증이 나타나서 거의 한달에 한두 번은 자궁염증약을 먹어야 했다. 자궁염증이 나타나면 아랫배가 뻐근해오면서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고 맑은 냉이 많이 흘러나온다. 오죽하면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의사에게 자궁을 들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상담을 했겠는가.

  그런데 금식 3일째 되는 날부터 자궁에서 시커먼 피가 흘러 나오더니 11일까지 계속되다가 12일째 되는 날은 아주 깨끗해졌다.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10일을 하라고 소원을 주셨지만 다시 3일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3일을 더 연장한 금식일 동안에 하나님께서 더욱 영적인 깨달음을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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