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폭력 남편을 변화시킨 하나님

첨부 1


폭력 남편을 변화시킨 하나님
   
- 김순임 집사 (35세,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

  우리 집안은 대대로 유교적인 전통과 무속신앙을 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지병을 신앙으로 고침받으신 후에 예수를 영접하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했던 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적에 신앙을 심어주실 수 있었던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증조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셨고, 따라서 집안의 전통을 귀히 여기는 그 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은 상당히 부유해서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섯 명의 일꾼을 부리고 있었다. 예전 말로 하자면 아마 머슴이라고 불러도 좋을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긴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많던 전답을 다 팔게 되고 집마저 옮기게 되면서 집안은 급속도로 망해갔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아버지는 살아오시면서 안 믿어본 종교가 없을 정도로 여러 종교를 찾아다니며 방황하셨던 분이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로부터 남랑호랑계나 불교 등에 관해 들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던 분이 돌아가시기 오 년 전에야 예수를 믿기 시작해서 돌아가실 때에는 하나님 품 안에서 운명하셨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4남매는 일찍이 믿음 생활을 해 오던 외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닐 수 있었다.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열심을 내어 다녔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장해가면서 집안이 어려워지고, 꾸준한 신앙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어린양을 안고 계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질병을 고침받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서울에서 소규모 옷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던 작은 아버지댁에 올라와 공장일을 거들었다. 얼마 안되는 기간이었지만 공장에서의 생활은 내게 너무나 힘들었다. 옷에 넣는 솜뭉치 옮기는 일을 자주 했는데 솜을 만지던 손으로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만지거나 하면 온통 부스럼이 일어났고 그것은 온 몸으로 퍼져 한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다. 지금도 얼굴에 기미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때 얻은 피부병의 흔적이다.

  얼마 안 가, 작은 아버지의 만류도 있고 건강도 좋지 않아 그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처음하는 객지생활 탓이었는지 작은댁의 따뜻한 보살핌에도 어렸을 때부터 안 좋던 심장이 더욱 나빠지고 빈혈기도 심해졌고, 그러던 어느 날에는 결국 길거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일을 그만둔 나는 작은 아버지가 다니시는 교회에서 봉사하며 교회 일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날도 변함없이 예배가 끝난 예배당에 홀로 남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도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린양을 안고 서 계신 예수님이 보이고 그 분으로부터 밝은 빛줄기가 내게로 쏟아졌다. 지금도 나는 그것이 내가 실제로 본 것인지, 환상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그 사건이 있은 후 내 몸의 모든 질병이 고침받았다는 사실이다. 조금 빨리 걸어도 헉헉대야 했던 내 약한 심장과 앉았다 일어서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심했던 빈혈, 그리고 변비까지 단번에 깨끗이 나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나를 만나주셔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해주셨지만 나의 약함과 어리석음은 그것을 붙잡고 살지 못하게 하였다.

술집생활과 힘든 결혼생활

  새로운 직장을 따라 작은댁을 나온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술집을 다니게 되었다. 그 때부터는 집안과도 연락을 단절하였고 교회도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생활이 3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이랄 것도 없이 시작된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잊고 지냈거나 그도 아니면 애써 외면하려던 하나님께, 술집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맞게 되는 극한 상황이면 나는 화상실에서조차 '하나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하며 기도 드렸던 것이다.

  인간의 약함으로 그 분의 품을 떠났지만 어렸을 적부터 나와 함께 계셨고 나를 만나주셨던 그분이 내 마음 한자리에 머물러 계셨던 것이다.
  나와의 연락이 갑자기 끊기자 집에서는 틀림없이 내게 사고가 있었으리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 때는 한창 인신매매로 사회가 술렁일때라 나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사고로 죽었으리라고 여긴 것이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한동안 자리보전을 하셨어야만 했다고 한다.

  나는 3년 만에 내 안에 계셨던 그분의 힘을 빌어 그 동안의 술집생활을 정리하고 집에 연락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웃 분의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선을 본지 29일 만의 결혼이었다. 지난 모든 삶을 정리하고 안정된 가정을 이루려는 생각과 집안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혼 석 달만에 나는 남편의 폭력을 맛보아야 했다. 나 스스로 '냉장고 사건' 이라고 명명한 그 사건의 발단은 실로 어처구니 없을 만큼 사소한 것이었다.
  우리는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혼수품을 들여 놓게 되었는데 그 날은 냉장고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나는 미처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지 못하고 집을 비우게 되었는데 혼자 있다가 냉장고를 받게 된 남편은 냉장고 놓을 자리를 바쁘게 정리하면서 어지간히 짜증이 났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 엄청난 욕설과 함께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 후 그러한 폭력은 심지어는 임신중일 때에도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서 아이를 게 되었고, 그것으로 힘든 결혼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는 신장에 장애가 있어 곧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만신이었던 아이의 큰 고모는 자신이 모시는 귀신이 알려주더라며 아이의 몸에 칼을 대면 아이가 죽을 것이니 절대로 수술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간 교회에 다니는 나에 대하여 시댁 식구들의 핍박이 심했었는데 아이가 그 지경이고 보니 핍박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나는 시댁 식구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수술 바로 전까지 아이를 들쳐 없고 새벽예배를 다녔다. 그리고 큰 고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수술시켰고 아이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만신인 고모의 예언이 빗나가자 시댁에서도 어느 정도 내 신앙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남편의 폭력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수술 후에도 병치레가 잦아 적지 않은 돈을 들이게 되었는데 막일을 하는 남편으로서는 그것이 큰 부담이었기 때문인지 두 서너 살 때부터 아이를 때렸다.

  결국 아이는 행동과잉장애를 일으켰는데 담당의는 그 주요한 원인이 가정환경에 있다고 했다. 매일 싸움하는 부모와 난무하는 폭력이 아이의 정서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둘째 아이 또한 보통 아이들보다 지능이 낮게 태어났다. 폭력적인 남편과 장애가 있는 두 아이는 나에게 버거운 짐이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도 했지만 때때로 방황을 하기도 했다.

변화되어 가는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행복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중에 목사님의 권유로 작년 5월 이곳 강남금식기도원에 오게 되었다. 3일 금식기도 기간 내내 나는 오로지 나의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지난 잘못들과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 내가 좀더 사랑하지 못한 것까지 끝없이 허물어지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죄가 아이들에게 이어지지 않기를 간구하였다. 그렇게 눈물로 회개하는 내게 하나님은 예배 시간마다 말씀으로 응답하시고, 기도 중에 위로를 주셨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나는 가족에 대한 벅찬 사랑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은 정작 집에 돌아간 이후부터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의 폭력이 뜸해지기 시작하고, 예배시간에 갑자기 악을 쓰기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는 등 산만하기 그지없었던 아이들이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먼저 내가 회개하고 변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올해에는 한 번도 남편이 내게 폭력을 휘두른 일이 없다. 그리고 특수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창조성을 나타내고, 인지능력이 좋아지고 있다. 지금 나에게 있어 변화되어 가는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셨고, 내가 그렇게 했을 때 참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셨다.
  나는 이번에 다시 이 성산에 올라 5일 금식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감사드리고 아이들이 일반학교에 진학하기를 간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아이들을 위해 가장 좋은 길을 준비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일꾼으로 쓰실 준비를 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 본 간증문은 강남기도원에서 발췌한 것 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