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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탄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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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 포트는 중국을 방문, 모택동을 만났을 때 공산화된 중국이 왜 아직 지상낙원이 되지 않았느냐며 자신은 캄보디아(당시는 크메르)를 해방시켜 지상낙원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고 합니다.  그가 지상낙원으로 어떤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문명 자체를 파괴하려 했던 것으로 보아 문명을 사악시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1975년 4월17일 아침, 프놈펜 시민들은 “평화가 왔다!”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5년 동안의 내란  끝에 “론놀” 정부가 무너지고, 크메르 루즈군이 수도 프놈펜에 진격해 들어왔던 것입니다. 시민들은 꼭 크메르 루즈군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론놀 정권이 무너졌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내전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환호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환호는 순간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약탈과 함께 무자비한 살육이 크메르 루즈군 병사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론놀 정권을 전복시키고 들어선 폴 포트 정권은 비록 약탈을 금한다고 했지만 그들의 군대가 자행하는 약탈을 막으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학 교수는 물론 중고등학교 교사, 의사, 엔지니어 등 사회의 유지 발전에 꼭 필요한 지식인들을 모조리 처형시키려 했던 것은 문명 자체를 사악시했다는 걸 말해줍니다. 크메르 루즈군의 지도자 폴포트의 실제 이름은 “살로트 사르”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살로트 사르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美 정보기관들은 그에 관해 보고서를 쓸 때 이름을 알지 못해 “폴리티컬 퍼텐셜(political potential, 정치적 배후세력)”을 줄여 폴 포트(pol pot)라 썼는데, 그것이 그대로 그의 이름으로 굳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크메르 루즈 정권” 또는 “살로트 정권”이라 하지 않고 “폴 포트 정권”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Killing Field) 위령탑 안에는 당시 크메르루즈 군들의 잔학한 행동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위령탑 안에는 수천 개의 해골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지금은 범죄(학살)박물관(museum of crime)으로 또 다른 관광자원이 된 “트루슬랭 감옥”을 가보았습니다. 본래 이곳은 “행복의 나무”라는 뜻을 지닌 “쫄스베이프레이” 고등학교였는데, 프놈펜을 접수한 크메르루즈가 “반동분자”로 몰아세워 수감하여 고문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 감옥으로 개조했던 것입니다. 널빤지나, 철 침대에 철골로 한 사람씩 손발과 목에 족쇄를 채워서 살아 있는 그대로 손톱과 발톱을 뽑아 죽이던 그 현장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단체로 10명씩, 15명씩 족쇄를 채워 잠을 재우던 철골들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거짓자백을 하면 자백했다고 죽이고, 자백을 하지 않으면 지독하다고 굶겨 죽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상 낙원을 이루리라고 장담했던 “폴포트 정권”이 캄보디아에서 200만 명 이상의 인민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폴포트 정권은 킴보디아를 과거의 족쇄에 붙들어 매놓고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워서 과거에 얽매이게 합니다. 꼼짝 달싹 못하게 합니다. 지상 낙원을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 거짓말 이었습니다.


- 신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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