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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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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 그레이스 리 -


매년 다가오는 어머니날.
사십 육 년을 어머니 곁에 있으며 한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한 어머니..
“어머니! ” 아직도 늦지 않았다면 어머니께 저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평생을 무남독녀 저만을 바라보고 사신 나의 어머니. 비록 하나밖에 없어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워주셨건만 한번도 그 귀하신 사랑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벌써 저는 중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마치 유리 상자 안에 인형을 넣어 두듯, 만지면 깨어질까,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저를 키우셨지요.
전쟁 뒤의 어려운 삶 속에서 귀하게 얻은 외동딸이라고 누구에게 부럽지 않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어머니는 매일 저를 데리고 학교를 오셨고 맨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뜨개질을 하시며 공부가 끝나기를 기다리셨다가 저를 데리고 집으로 오셨죠. 제가 일 학년을 마치고 개근상을 받을 때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 개근상장은 어머니가 받으셔야겠다고.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받은 모든 상들은 바로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으로 맺어진 열매입니다.

옛말에 자식을 낳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는데 그 말은 아마 저를 두고 만든 말 같습니다.
외아들에게 시집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죄로 일찍이 혼자되어 저를 키우시면서 홀로 사신 어머니의 인생이 얼마나 외롭고 아픈 것인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첫 딸아이를 낳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아이를 바라보며 그 때도 내 아이만 예쁘고 귀하게만 생각되었지 어머니께서 저를 그토록 정성스럽게 키우셨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둘째로 아들을 낳았을 때엔 평생에 아들을 못 낳으신 한이 있어 딸이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믿기조차 않으셨지요. 덕분에 어린 아들을 벗겨 사진을 찍어 보내드린 것이 생각납니다. 그 뒤 이민 생활이 어려워 육개월 된 아들을 어머니께 보내어 어머니는 그 아들을 키우시느라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마르셨었죠.

지금도 그 때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 앞에 불효를 너무도 많이 했습니다.
이제 그 아이들이 자라 사춘기를 맞아 제게 말대답을 하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 그 모습 속에서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 생활 속에서 아이들과 문화와 말이 안 통할 때마다 그 아이들의 얼굴 속에서 지난 날 어머니께 대했던 제 얼굴이 들어 있음을 봅니다. “엄마가 뭘 알아” 이 잘못을 어떻게 빌어야 할까요?

어머니, 저는 참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늘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항상 제 생각만을 하며 제가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하였던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단 속에 여러 시련을 겪으며 저는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홀로 사시는 어머니께서 남몰래 우실 때 저는 왜 우시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왜 우느냐고 마음속으로 짜증을 내었지요.
그 당시 어머니의 섭섭해하시던 모습을 이제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아오며 제 자신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 속에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 갑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12월의 마지막 주일, 자동차가 구르며 생긴 교통사고로 39세의 젊은 생애를 마친 남편의 죽음 앞에 몇날 며칠을 통곡하는 딸을 바라보며 제 방문 앞에서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홀로 흘리셨을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혼자 살아오신 외로운 인생이셨기에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 더 아프셨겠지요. 혼자 살아가기에 너무나 벅차고, 어린 자식들로 두 어깨가 무거웁기만 할 때 저는 어느새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늘 몸이 약해 어머니의 염려를 끼치면서도 저는 제가 아픈 것만을 호소했습니다.
남몰래 애타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저는 몰랐습니다. 늘 머리맡을 떠나지 않으시고 염려하시던 어머니..
그러나 아들이 뇌수술을 받게 되어 열 시간 이상을 수술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며 그제야 저는 늘 저를 염려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춘기가 되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아이를 문밖에 나와 기다리며 언제나 문밖에 나와 제가 오기를 기다리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며 어머니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은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고 있는 딸아이가 전화를 해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면 저는 김치를 아끼지 아니하고 온갖 솜씨를 내어 찌개를 만들고 그 아이가 오기를 기다리지요.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이리 저리 미루며 안 오는 딸아이..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갈 때 마음이 아프지요.
이제 여든을 바라보시는 나이에도 혼자 있는 딸이 애처로워 김치를 담그어 주시고, 음식을 대신 만들어 주시며 전화를 하시지만 저 역시도 바쁘다고 제때 가지 못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고 섭섭하셨어요?
이 글을 쓰는 제 눈에서는 한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한번도 따스하게 해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어찌 팔십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의 그 눈물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지금도 홀로 흘리시는 그 눈물을 제가 만분지 일이나 알 수 있을까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 눈물도 이제는 이전에 흘리시던 눈물과 다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예수 믿지 않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고 이제 권사님이 되어 교회를 섬기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비록 이 세상가운데는 불행하셨던 어머니의 일생이었지만 하나님은 어머니를 사랑하시지요. 일찍이 의사조차도 포기했던 어머니의 갑상선 암. 이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몹시도 절망하였는데 그때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눈물이 암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예수를 닮지 못해 안타까워 우신다고 하셨지요.
그런 어머니의 깊은 신앙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암이 사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우리 가정에 주셨습니다.
어머니,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시죠?
갑상선 암의 진행상태를 보러 갔을 때 미국 의사는 놀랍게도 암의 흔적이 조금도 없다고 하던 그날을.
몇 차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결국 어머니께 암이 없어졌노라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와 저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 기적과 놀라움..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말로는 표현될 수 없어 그저 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죽음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시던 그 깊으신 신앙을 존경합니다.
언제나 노인 아파트로 오는 교회차를 기다리시기 위해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문밖을 서성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어머니 부디 제 옆에 오래, 오래 계세요.
한 평생 딸 하나만 바라고 살아오신 어머니,
이제는 그 딸을 위해 두 손과 무릎을 모아 기도하시는 어머니.
뒤늦게 철이 들어가며 어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크신 사랑..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와 같이 훌륭한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어머니처럼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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