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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두려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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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두려워합니까 

- 김은호 목사 (오륜교회)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에게도 두려움이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청결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가졌던 디모데에게도 두려움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기록된 단어는 ‘사랑하라’ ‘겸손하라’가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이다.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366회나 기록되어 있다. 어떤 분은 1년이 365일인데 366회 기록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윤달을 계산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매일의 삶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첫째,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딤후 1:7).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두려움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이 두려움은 언제 어떻게 시작 되었는가? 두려움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발생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후, 두려워하여 숨었다(창 3:10). 이것을 보면 두려움은 죄의 열매이며 죄의 결과이다. 죄란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인데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면 두려워하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도 하나님과 떨어지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둘째, 두려움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욥 3:25).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할 만큼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고 모든 자식이 다 죽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몸은 병들었고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며 죽으라’며 자신을 저주하였다. 

왜 욥에게 이런 고난이 다가왔는가? 그 이유는 욥이 두려움의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욥은 자신에게 고난이 임하였을 때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이것을 보면 욥은 평탄한 순간에도 두려움의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두려움의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두려움은 언제나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 

셋째, 두려움은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믿음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잃게 만든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은 영적전쟁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디안의 군대와 싸울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를 선발할 때 ‘두려워 떠는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두려움은 우울증을 비롯해 많은 질병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흔들의자와도 같다. 흔들의자에 앉아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여전히 의자는 제자리에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는 우리의 인생을 흔들어 놓기만 할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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