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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늘 찬양하는 어부가 되기까지 ... - 복음성가 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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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찬양하는 어부가 되기까지 ...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채, 동요를 연상시키듯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지요. 늘 바다만 보고 자랐기에 낭만을 좋아하고 누구보다도 명랑하고 건강하게 성장했지요. 늘 노래를 좋아하고 유행가 신곡이 나오기만 하면 따라 부르던 어린시절.....

이후 내가 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는 22살때 허리 디스크로 인하여 5년간의 고생 끝에 두손들고 주님 앞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세상을 좋아하고 내 주먹만 믿고 건강하게 살던 나에게 허리디스크로 병원에서 검사 하던중 합병증이 겹쳐 목, 허리, 다리 모두를 못쓰는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6개월간은 스치로폴 침대에 딱딱한 합판을 깔고 들어 누워만 있었지요. 세상의 의학과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육신의 증세는 호전되질 않았고 5년간의 긴 시간속에 마음까지 병들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한 여자 집사님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교'자만 나와도 혈기를 내고, TV프로그램에 교회관련 소식이 나오기만 하면 밥맛 없다고 핍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더 내가 주님 앞에 나올 줄이야....

교회에 나오면서 부터 새벽기도 등 각종 예배를 빠지지 않고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오산리 최자실 금식 기도원에 가서 10일씩 금식기도도 해 보았지요. 그러나 그때 바로 치료가 되진 않았어요. 주님께서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것이죠.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나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아픔 몸이지만 그때 부터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찬양선교단에서 봉사하게 되었지요. 또한 어머님이 그때부터 같이 기도해 주셨어요. 지금은 안 계시고 권사님으로 일하시다 5년전 천국에 가셨지요.

40년간 미신을 섬기고 내가 병석에 있는 동안 5번씩이나 굿을 할 정도로 대단히 우상을 숭배한 분이셨지요. 참으로 당대에 믿다 보니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이 있었어요. 그렇게 2년간 어머님과 같이 기도하고 믿음의 훈련중에 어느날 나는 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되었어요. 찬양가운데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지요. 그 눈물은 다름이 아닌 내가 질병을 통하여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영원히 죽었던 내가 구원받은 사실을 마
음으로 깊이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그후로 나는 늘 감사가 넘쳤고 그 감사속에 질병에서 깨끗이 치료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 하나님이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집안에 복음이 싹트게 되었지요. 지금은 6남매 형제가 다 믿게 되었고 사촌 식구들까지도 복음을 받아들여 추석과 설 명절때면 40여명씩 모여 예배드리는 가문으로 변화시켜 주셨어요. 물론 제가 예배를 인도하지요. 영적인 장자권을 주셨어요. 시간이 갈수록 주님께서는 많은 일을 맡겨주시고 수원순복음교회에서 맡은 선교단 사역과 남선교회 봉사로, 또 성전건축에 동참하게 하시더니, 마침내 음반출판과 동시에 찬양사역자로 쓰임받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셨어요. 현재 오산리 전속복음가수, 한국찬양사역연구회 부회장으로 찬양집회강사로 전국을 다니면서 찬양할 수있도록 세워주셨어요. 또한 영혼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아내 손미향 집사와 함께 전도에 동참
하는 귀한 일들을 주셨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자녀들까지 찬양의 나팔을 불며 전도하는 가정이 되었지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이처럼 사용하여 주심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둘째 아들 강회를 찬양가운데 살리신 하나님

둘째 아들 출산시 산모의 전체태반이라는 위험한 상태에서 8개월 만에 아이가 출산되었지요. 수원에서 안양, 시흥 모든 병원에서 입원을 받아주지 않아 서울 대방역 성애병원에 마지막 각서를 쓰고 겨우 입원을 했지요.10시간의 하열 끝에 산모는 백지장처럼 창백한 모습으로 수혈을 받고 아이는 잉큐베이터에서 2달동안 있게 되었지요. 문제는 아이의 머리에 물이 차면서 머리가 커지는 뇌수종이라는 병이 문제가 되었어요. 그 잉큐베이터에 있는 아이를 1차, 2차 수술을 시도해 물을 빼내어 보았지만 계속 물이 차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지요. 소아과 의사는 저를 불러서 2번이나 아이의 생명을 포기하라고 권면했지만 저는 끝까지 최선만 다해 달라는 말과 함께 기도하면서 찬양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교회에 처음으로 창단되는 찬양선교단 발표회를 앞두고 제가 리더를 맡았기 때문에 2달동안 연습과 함께 새벽 2시까지 단원들과 찬양하며 기도하며 준비하는 시점에서 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낮에 업무를 마치고 오후 4시에 아이가 있는 서울 병원에 가서 아이를 면회를 하고 저녁 8시부터 연습을 하면서 찬양을 드렸어요. 참으로 감사한 것은 아이는 잉큐베이터에서 여러대의 주사바늘과 고통가운데 있지만 저는 기도하면서 찬양을 드림으로 마음에 평안과 치료의 확신을 받았지요. 아이는 3차 수술을 하게 되었지요.

머리에 인공자동조절기를 넣어 호수를 연결하고 뱃속소화기관 배설로 연결해 머리에 차는 물을 빼내어 주는 중요한 수술이었지요. 수술이 잘 마처지고 우리부부는 열심히 찬양하면서 창단 발표를 은혜 가운데 잘 마치게 되었지요.

교회 성도들이 모두 감동을 받았고 병원의 의사도 믿음이 심어지게 되었어요. 그후 6년후에 아이가 성장한 후 마지막 호수를 빼내는 4차 수술을 성공하고 지금은 누구보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학생이 되었지요.

또 초등학교 때 강회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요. 의사, 간호사 모두들 깜짝 놀라 기뻐하는 모습속에 하나님을 담대히 증거할수 있었어요. 그 환경 속에서도 찬양하게 하셨고, 그 찬양 가운데 치료하신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다시한번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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