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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송의 개념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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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송의 개념 이해를 돕는다

- Sergei Lee(모스크바 선교사)


한국교회의 해외 파송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교단별로 단체별로 파송을 늘리고 있는데, 현재 추세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재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교회의 성장도 멈추어져 있는데, 파송이 계속되는 것은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파송을 바로 이해하고 행하면 더 성숙한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현장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현장 이해

사실 선교사의 역할은 어느 지역을 가든지 퍼주어야 하고, 건축 지원해 주어야 하고, 무조건 투자하여야 하는 것이다. 영적·물질적·시간과 정신적으로 다 퍼주어야 한다. 일꾼을 세워 교회를 개척하였을 경우, 그에게 또 투자하고 자립할 때까지 지원해야 한다. 이래저래 선교사의 사역은 평생 지원하고 세워주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겨우 외국에서 산다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실제적으로 현장 속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파송 선교사의 역할은, 한국 교회에서는 당회와 온 교인들이 기도하며 감당할 일을 선교사는 혼자서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실례를 들어보자. 교회사역을 할 경우, 임대부터 시작하여 사역자 후원과 성도들 예배 후에 간식 먹이는 일까지 모두 선교사의 지원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다른 것이지만 대부분의 현장은 이러한 상황이다. 자동차를 구입한다고 할 경우 한국교회에서는 기도하고 헌금을 하든지 교회에서 할부로 구입하게 된다. 선교지에서는 할부가 없어서 한 뭉치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여야 하는데, 후진국일수록 자동차 값은 더 비싸다. 혼자서 감당하여야 한다.

교회 건축을 한다고 할 경우 물론 파송 교회와 한국교회가 십시일반으로 감당하여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수리의 문제나 관리의 문제에 있어서 지출되는 재정은 선교사가 감당한다. 이런 것 까지 요청할 수는 없지만 상황이 그렇다. 목회자 세미나를 할 경우, 한국에서 초청강사가 오면 재정을 들고 와서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연중행사가 아닌, 현지에서 저들의 필요를 따라 후방의 지원 없이 일을 세미나를 진행하는 경우, 교회가 할 일을 현지에서는 혼자서 감당할 때가 많다.


파송의 의미

첫째, 파송한다는 것은 본 교회의 사역자를 현지로 보내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교회를 대신하여 보내는 전권 대사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대부분 파송한다고 할 때에 일반 후원교회보다 조금 더 많이 지원하여 주는 재정적인 것을 파송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 그래서 한 교회가 수십 가정씩 ‘파송’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매우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파송한다는 의미는 주님의 명령에 의하여 땅끝까지 사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교회라고 하면 한 개의 교회를 현지에 개척하는 것과 똑같고, 교육 사역을 한다면 본 교회의 사역을 현지에 하나 더 첨가한다는 의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투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 후원자들보다 생활비 좀 더 주면서 파송한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파송의 개념에 대하여 상당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장에서 바라본 입장이다. 협력교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속적이지 못하고 안정적이 못하며 큰 일을 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 파송은 교회의 비전이나 사역에 대한 방향이 분명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교회 개척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면 그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또한 선교사가 정확한 사역의 비전을 제시하면 파송 교회는 그것을 심사 숙고하여 의논하고 기도한 후에 함께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파송 교회의 임무이다. 파송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여기에서 알게 된다.

교회의 명분을 생각하면서 파송하면 안된다. 숫자놀음에 의하여 파송하여도 안된다. 파송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어떻게 2020년까지 기천명 파송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파송 숫자 늘리는 것이 한국교회의 성장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이다.

너도나도 파송을 하고 나서 10년도 채 지나기 전에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선교사가 입국하여 교회 방문할까 귀찮아 하고, 그나마 열린 교회는 매주일 연달아 선교사들이 방문하고 헌금을 요구하니, 사실 한국교회가 말하지 않는 가운데 선교사 방문에 겁을 내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교사로부터 전화 오면 당황을 하게 되고, “또 나오셨습니까? 자주 나오시네요…” 심지어 파송 교회에서도 교회 방문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하니, 서로가 매우 큰 부담을 갖게 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수천만리 떨어진 곳에 교회가 개척되어 부흥한다고 하여도 한국교회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담당자 몇 명, 관심 있는 자 몇 명만 기도할 뿐이지 않는가? 모두가 합심하여 예배시간에 기도한다고 하여도 사실 이국만리의 현장이 전혀 와닿지도 않는다. 복음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한정 투자만 하여야 하는 파송, 한국교회의 부흥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래서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셋째, 파송 교회는 선교사의 후생과 자녀교육을 생각하여야 한다. 다행스럽게 본국에 거주할 집이라도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본국에 오면 거할 곳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선교사가 은퇴를 위하여 준비하여야 하는데, 대책은 없고 한국교회는 생각을 안 한다.

자녀들의 교육에 대하여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가? 필자는 시골 현지 학교에 보내니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할 경우엔 학비 조달로 인하여 문제가 달라진다. 파송 교회에서 대학교육을 책임지는 훌륭한 교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정해진 후원비로 어떻게 대학 교육을 시키겠는가?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것도 역시 파송 교회의 책임이다. 파송한다는 것은 심각한 책임을 동반한 것이다.


파송 선교사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섬김과 헌신

첫째, 파송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사역의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교사는 독립군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잘하면 충성된 일꾼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 게으름에 빠지면 백수(잡다한 일로 바쁜 경우도 해당)가 될 확률이 더 많다. 간섭하는 이가 없는 현장에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시간과 재정과 열정을 다하여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명감에 의무와 책임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국을 방문하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새벽부터 시작하여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다. 큰 교회일수록 일은 더 많고 눈코 뜰새 없는 것을 본다. 여기에 비하면 선교사들의 사역은 어떤 면에서 매우 자유스럽지 않는가? 그래서 더욱 더 책임이 무거운 것이다. 일을 찾으면 끝이 없지 않는가? 사역관리와 시간관리, 재정관리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말로는 거창한데,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면…….

요즘 사역자들을 보면, 헌신과 섬김보다는 일반적인 의무감 뿐인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외국으로 파송받은 해외 기업 근무자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합당한 대접을 받고 누리며 살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실제적인 조건이 안 맞아, 나가려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둘째, 보고의 의무이다. 매월 간단한 기도제목이라도 보내야 한다. 이것은 보고의 개념보다는 관심이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바쁜 한국생활에 정신이 없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보고하고 간단한 소식 몇 자라도 나눈다면 훨씬 유익할 것이다. 필자는 공식적인 메일보다는 비공식적인 간략한 소식과 안부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SMS를 통하여 지인들에게 혹은 선후배들에게 80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보낼 내용이 없다고 한다. 보고서 작성하다가 시간 다 보낸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그것을 조금만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남음이 있다. 사역이 매월 개발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내용이 있겠는가? 거짓보고서를 작성하란 말인가 하면서, 나는 보고를 안 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은 개인의 결정이지만,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보고를 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사역과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재정관리가 분명하고 철저하여야 한다.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아주 위험할 수 있다. 파송 교회의 안정되고 넉넉한 후원에 하는 일 없이 적당하게 살면서, 자녀 교육이나 시키고, 잘 먹이고, 한국에서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수가 있다. 청지기 의식은 이해하고, 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한 깊은 훈련과 경제개념에 대한 이해가 파송 전에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정문제로 인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사역의 점검이다. 1년 동안 행해왔던 사역에 대한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사역의 점검이 필요하다. 한인 사역자들의 가장 약점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도 한국에서 가장 큰 단체의 파송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20여년이 되도록 한 번도 사역감사를 받은 일이 없다. 기타 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선교사역에 대한 역사인식의 결여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감성과 은혜로 하기 때문에 사역을 이론화 시키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부분에 쌍방간에 책임을 감당하고, 신뢰가 이루어질 때에 파송 사역이 효과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파송의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숫자만 늘인다고 대수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망대를 지으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계획이 합리적이지 못한 열정만 가지고 나가는 것도 이기적인 것이다. 신앙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한국선교가 될 것이다.

바른 선교를 추구하며…….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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