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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너의 행사를 다 여호와께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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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행사를 다 여호와께 맡겨라
   
- 윤준자 전도사 (여, 55세, 원주제일장로교회, 원주시 명륜2동) -


속상해서 나갔던 교회

  나의 남편은 군인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2년쯤 지나자 처음과는 달리 서서히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매일 곤죽이 되다시피 술을 마시고 들어왔고 말없이 집에 안 들어오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월급을 타도 집에 가져오는 일이 없었다. 그런 남편 때문에 내 속은 썩을 대로 썩었고 하루 하루가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죽고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한 번은 이사를 하려고 퇴계원 근처로 방을 구하러 다녔는데, 집주인이 자신은 교회의 권사인데 만약 교회를 다니면 방을 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방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방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때라 나는 집주인에게 지금은 교회를 안 다니지만 방을 주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2년쯤 뒤에 다시 원주로 이사를 갔고 완전히 정착하여 살면서 삼십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겼다. 처음부터 무슨 믿음이 있어서 교회를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속상한 내 마음을 하소연하고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자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교회에 가서 하소연하듯 기도하기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쉬지 않았다.

기도의 힘 

  그렇게 다니다보니 어느 때부터인지 조금씩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서부터는 열심히 봉사를 했다. 남편이 돈을 가져다주지 않아서 물질을 드릴 수는 없었지만 그럴수록 몸으로 더욱 열심히 봉사하였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를 했더니 하나님은 그 생활을 통해 내 믿음을 자라게 만들어 주셨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남편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집에 올 때는 어김없이 술에 취해 들어왔고 구토를 하여 온 방안을 더럽히기 일쑤였다. 남편이 들어오는 날은 방이고 이불이고 모두 엉망이 되는 날이었다. 하루는 술 취해 들어온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해서 방이고 아이들이고 다 내버려두고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내 형편을 하소연하며 부르짖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보니 웬일인지 남편이 일찍 일어나 방을 깨끗이 치워놓고 있었다.

  남편을 두고 백이면 백 사람 모두가 ‘죽을 때까지 고생할테니 살지 말라'고 했지만 삼남매를 두고 어찌 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그래도 나이가 들면 괜찮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참았다. 그러다 너무 힘이 들때면 삼남매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두고 나 혼자 죽나,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험한 세월 속에서, 정녕 나는 기도가 아니었으면 살지 못했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밤낮 성전에 기대어 눈물로 기도하고 한탄하는 것이 나의 생활이요, 나의 삶이었다. 오죽하면 권사님들이 ‘기도도 좋지만 젊은 여자가 가정을 돌봐야지 이렇게 매일 밤마다 나오면 못쓴다'라고 하실 정도였다. 남편이 군인인 탓도 있었지만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았던 것도 원인이기는 했다.

  남편 때문에 눈물로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게 몇 가지 은사를 주셨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까지 보이는 투시의 은사를 주셨고,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그 자리에서 병이 나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해주셨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는 은사를 행하는 것을 반대하여 교회를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제가 주님의 은사를 사용하면 하나님의 영광만 가리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면 그때 은사를 다시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였다.

  그 즈음에 깊은 기도를 하시던 분들이 내게 신학을 공부하라고 거듭 권해오셨다. 그렇지만 ‘나 같은게 무슨 신학을 해'라는 생각으로 결심을 미루다가 결국 5년 전에 신학공부를 시작하였다.
  신학공부를 시작하기 전, 먼저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보기 위해서 열흘동안 금식을 했었는데 기도 중에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응답을 주셨다. 내 손에 횃불을 들려 주셔서 내가 그 횃불을 들고 달려나가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의 횃불을 들고 나가라는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행히 아이들은 착하게 잘 자라주었고 공부도 잘해서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나도 나름대로 파출부, 농사일 등을 다니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지 않게 키우려고 많은 신경을 썼다. 그것은 행여라도 아이들이 가정환경을 비관하여 삐뚤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그런 한편 나 스스로 아이들 앞에 먼저 신앙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내가 먹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도우려고 애썼고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면 함께 기도하고 아파했다.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대학 등록금으로 사용하려고 저축해 두었던 것을 시골 개척교회에 장학금으로 도왔다. 평소  우리 집의 재정상태에서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주님께 더 매달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내 기도와 정성을 보시고 둘째가 대학에 합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교회에서 함께 시험을 본 아이들 중 둘째만이 합격을 한 것이다. 합격 통지를 받고 ‘모두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면서 좋아하는 아이에게 ‘대학에 합격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니 네 평생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40일을 금식하며 

  몇년 전에 마음에 40일 금식기도를 하라는 감동이 왔지만 40일을 어떻게 하나 싶어 열흘만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재촉하셨고 나는 또 안하고 넘어갔다가 결국 작정을 하고 금식에 들어갔다.
  주께서 내게 40일 금식의 기회를 주심은 우리 가정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귀한 섭리가 있으심을 믿는다. 이번 금식을 통해 몇 년 전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중국과 러시아 선교의 사명을 놓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물으려고 한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의 장래를 놓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목회자로 불러 주셨음을 믿지만 이번 금식을 통해 확실한 응답을 받으려고 한다.

  내가 아들의 진로를 놓고 하나님께 깊이 물어보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네가 목회자가 되거든 이름만 있는 목회자가 아니라 참된 종이 되어야 한다. 시골에 가서 목회를 하더라도 단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진정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다.

  며칠 전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너의 행사를 다 여호와께 맡겨라 내가 너의 함께 함이니라'라는 글귀를 보여주셨는데, 인쇄로 박듯 분명히 보여주신 그 말씀을 받고 나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얻었다. 내가 맡기기만 하면 선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믿고 감사하며 그 이름을 찬양한다. 


- 출처 : 강남금식기도원 (http://www.kangnamp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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