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18년째 낮은 곳으로 임한 ‘장애인의 아버지’

첨부 1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는 다솔선교회(복지원) 대표 류인남(55) 목사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그는 18년째 장애인의 손발로 세상의 온갖 편견과 싸우면서 스스로 장애인이 되기 위해 기도했지만 여전히 사회의 벽은 높기만 하기 때문이다. 1987년 10월 지체장애인 선교와 자활 자립교육을 위해 신앙공동체 다솔선교회를 창립한 이래 그는 외부 지원보다는 자비량으로 공동체를 이끌어오면서 수천번 가슴을 치며 울어야 했다.

“장애인이 한데 모여 있으면 땅값이 떨어진다,집값이 떨어진다는 매몰찬 얘기는 기본이었어요. 장애인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기독인이라면 장애인을 위한 사랑행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인간이라 솔직히 힘이 드네요.”

이리저리 쫓겨다니면서도 류 목사는 장애인들에게 자활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전자제품 조립과 납품에 나섰다. 이익금은 어김없이 장애인들의 통장에 입금시켜 주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마음의 골이 깊어서 류 목사의 본심을 오해한 적도 있었다. “당신은 정상인,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며 제게 대들 때도 있었어요. 사회의 냉대도 참기 힘든데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았죠. 오죽했으면 장애인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겠어요.”

그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1986년을 떠올리곤 했다. 당시 구로동에 있던 E복지원 원목으로 부임한 그는 한 형제의 간청 때문에 장애인의 대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휠체어를 타고 있던 당시 27세의 박기순이라는 형제가 제 손을 꼭 붙잡고 놔주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400만 장애인의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400만 장애인의 아버지. 실로 엄청난 얘기였기에 그는 처음엔 거절했다. 가진 것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인간적인 계산이 앞섰기 때문이다.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잡아가던 중 마음속에 ‘예수사랑 실천’ ‘전인구원’이라는 말씀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에 그는 장애인을 돌보는데 그치지 않고 복음으로 완전 구원에 이르도록 돕겠다고 결심했다.

거부할 수 없는 손에 이끌리자 류 목사는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을 빼내 대림동에 장애인을 위한 숙소를 구하고 남은 돈으로 가족을 위한 방을 경기도 금곡에 구했다. 또 피아노학원을 개원,이영란(50) 사모와 번갈아가며 레슨을 하면서 선교회를 꾸려갔다. 레슨비 대부분은 공동체 운영을 위해 썼기 때문에 자녀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작곡가인 류 목사는 교회음악 관련 세미나 및 미국 일본 등 순회집회 등을 인도하면서 받은 강사비를 모두 선교회 운영비에 충당했다. 현재 피아노학원까지 처분하고 이 사모는 출장레슨,류 목사는 틈틈이 강의를 나간다.

그는 요즘 1계좌 10만원 돕기라는 ‘1004(천사)운동’을 펼치며 또 다른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탄리에 있는 선교회는 10인 이상 조건부 신고시설로 등록된 터라 오는 7월31일 이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 목사는 두려움보다 희망이 앞선다고 한다. “그동안 자폐아와 뇌성마비 환우들이 고침을 받는 등 수없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또 다른 기적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거울에 비춰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류 목사. 그의 너털웃음에서 하나님의 사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031-948-8291).


[국민일보] 함태경기자 [email protected]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