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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비타민C 박사’, 이왕재 안수집사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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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역경의열매'에 연재로 실린 '비타민C 박사' 이왕재 안수집사의 간증을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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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체부검 순간 깨우친 생명의 섭리 

지난해 7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에 내 이름이 등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어 12월에도 세계 3대 인명센터 중 하나인 영국 국제인명센터(IBC)로부터 ‘2005년 올해의 의학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순간 이 모든 것이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닌,하나님의 은혜임을 가슴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부족한 이 영혼을 높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보너스임을 믿습니다. 제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옵소서.”

사람들은 나를 ‘비타민C 박사’로 부른다. 비타민C 의 유익성에 관해 강조하고 또 이를 신앙과 연결시켜 많은 간증집회 강사로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도 많은 교회와 단체,모임에서 강연이나 집회 인도 요청이 오지만 모두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내가 바쁜 시간을 쪼개고 쉬어야 하는 휴일에도 간증집회에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고귀한 생명과 놀라운 복음의 진리에 대해 모르는 성도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길 기도하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일찍이 하나님을 영접한 행복한 사람이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부모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내가 공부하도록 해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셨다. 또 하나님은 내가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 의대생들에게 인체의 구조에 대해 해부학을 가르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셨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 인간을 지으신 여러 모습과 학문적으로 너무나 귀하게 잘 맞는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의 생명에 대한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나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신앙 가운데서 생명에 대한 깨우침이 많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신앙생활을 40여년 동안 해오면서도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에 대한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교회학교 교사를 하면서 창세기를 무척 많이 읽었다. 그럼에도 창세기 말씀은 너무 재미없었고 통독하라고 하면 의무적으로 읽고 지나쳐버리는 말씀이었다.

1990년 2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발령 받기 전 미리 학교에 가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 교실에 근무하는 법의학 선생님과 함께 죽은 지 얼마 안된 여인을 부검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자리에서 묘하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흰 가운을 입고 부검대에 여인의 시신을 뉘여놓고 잘 드는 칼을 준비했는데 그날 따라 이상했다. 부검대 위의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살아 있는 나와 이 여인의 차이가 무엇일까?’라는 너무나 원초적인 질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질문이 더욱더 현실화된 것은 그 여인의 피부를 만지고 내 피부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이어 ‘내가 이 여인의 가슴을 절개해야 하는데 과연 이 여인이 가만히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나로 하여금 부검을 시작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 창세기 ‘생명의 신비’ 마침내 깨달아 

나는 부검대에 누워 있는 여인이 벌떡 일어설 것 같은 두려움을 애써 억제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여인의 가슴을 날카로운 칼로 절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시신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아주 망연하게 앞을 바라보았더니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이 마치 영화의 자막처럼 내 앞에 너무나 선명하게 나타났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나는 이 말씀을 수없이 읽었지만 은혜를 받지 못한 구절이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단순히 문자 그대로만을 믿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말씀이 진실일까?’라는 회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날 하나님이 교만한 나에게 찾아오셨던 것이다.

“이놈아,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느냐? 네가 서울대 교수라고? 그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하고 꾸짖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다시 자막처럼 보여주시는데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날 여인을 부검할 때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부검대 위에 누워 있던 여인이 칼로 가슴을 절개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생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기,생명의 근원이 되는 생기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잠자는 아담의 가슴에서 갈비뼈를 취하셔서 아름답게 지으신 뒤 아직 그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지 않은,창세기 1∼2장의 하와를 나는 그날 부검대에서 만났던 것이다.

바로 그 코에 아직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여인은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절개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여인은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놓은 하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그때 분명하게 이 말씀을 믿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학생들에게 생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명은 꼭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너희와 늘 함께 하는 그것이 곧 생명이다. 너희는 내 말을 알아듣는 그 힘,한 줄기 바람으로 한여름에도 느끼는 시원함,아플 때 아프다고 느낄 수 있는 그 힘이 바로 생명인 것이다.”

그날 이후 성경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창세기 1장부터 다시 새롭게 보자 예전에 그냥 읽을 때와는 다르게 구절마다 담긴 의미들이 가슴에 뜨겁게 와닿기 시작했다.

창세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하나님이 인간이 죄를 짓자 징계를 하셨으며 그 징계에도 생명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원리와 계획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창조역사로 빚어놓은 아담과 하와를 그렇게 허망하게 에덴동산에서 죽게 만드셨다면 하나님의 인간 창조 역사는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리신 징계는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다.

그 징계는 아담과 하와가 죽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하나의 틀이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죽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또 그 후손이 죽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생명이 이어지도록 하셨다. 그것은 곧 인간의 생명이 운행되는 원리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계획이 아닌가 여겨진다.


3. 신앙관점 바꿔준 ‘96년 겨울의 시련’ 

현재 지구상의 인구는 60억명쯤 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 가운데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고 쌍둥이들조차 서로 다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고 나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왔다가 갔을까 생각하면 100억명이 넘을 것이다.

하나 둘 셋 넷으로 시작하면 평생을 세어도 10억을 못 센다고 하니 100억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신 단지 23쌍의 유전자 2조(組)를 통해 이렇게 많은 생명을 각기 다르게 만들 수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녕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그 생명 하나하나가 귀중하도록 다르게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과연 그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부검을 앞둔 여인을 통해 생명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신앙이 한 단계 발전했다면 1996년 12월21일에 일어난 사건은 내 신앙의 관점을 새롭게 바꾸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날은 내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날이다.

이날 지방에서 친구들과 토요일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나밖에 없는 6세 딸아이 ‘하나’가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상경하여 딸이 입원한 건국대 부속병원인 민중병원에 도착했다. 상황을 알아보니 죽지 않았고 의식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내가 도착하였을 즈음 컴퓨터 단층촬영을 위해 카트에 실려 옮겨지고 있던 때인데 나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좀더 침착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카트를 따라가면서 딸아이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의료진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아이의 상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사고 경위는 딸이 주차된 차 앞에서 운동화를 고쳐 신으려고 허리를 굽힌 순간 우회전하던 차가 미처 딸아이를 보지 못하고 그냥 치어버린 것이었다.

아내는 차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서 딸아이를 꺼낸 뒤 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데려갔는데 아이가 의식이 있고 큰 외상이 보이지 않아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노라고 말했다.

임상의사는 아니지만 한때 임상을 하려고 인턴까지 마친 내 생각으로는 그런 상황이라면 우선 딸아이의 간이 무사할 리 만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폐와 심장까지도 큰 손상을 당했을 것으로 짐작됐다. 그런데 혈압만 약간 떨어져 있을 뿐 심각한 장애가 관찰되지 않아 매우 의아스러웠다.

첫날 딸아이를 민중병원 중환자실에 놔둔 채 집으로 돌아와 밤새워 눈물로 기도 드리며 가슴 아파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일까?

딸아이는 사실 결혼 후 9년 동안의 불임기간을 거쳐 어렵게 시험관 수정을 통해서 얻은 아이였다. 그 아이를 얻을 때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가 기도를 해주었던가? 그 아이를 얻은 것은 우리 가족은 물론 많은 분들의 기도의 결과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이 사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4. 중환자실 딸 위해 밤새워 기도 기도… 

딸을 중환자실에 놔두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나님 앞에 밤새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간절한 기도 가운데 주님은 우리 가족을 사랑하신다는 음성이 쟁쟁하게 마음속을 울렸다.

다음날인 주일 오후에 딸을 서울대병원 소아 중환자실로 옮겼다. 당시 나는 출석하는 교회를 옮기는 문제로 다소 신앙에 회의를 가지고 방황하던 때였다. 사실 10년 가까이 출석하던 교회를 옮기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우선 그날 기도 가운데 기쁨으로 교회를 옮기는 일을 확정할 수 있었다. 사람 위주의 신앙이 하나님 위주의 참신앙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돌아보건대 많은 분이 아직도 목사님이나 가까운 교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교회를 옮기지 못하고 힘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와 함께 옮기려고 마음 먹은 교회에 출석했다. 아침에 미리 준비한 감사헌금을 드리고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어젯밤 기도에서 확인하였듯 분명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마음에 가득 차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딸은 서울대병원에서 선·후배 동료교수들의 보살핌과 치료를 받았다. 또 서울의대 기독동문들의 방문과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 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다시 촬영한 컴퓨터 단층촬영을 판독한 방사선과 친구 교수는 “간장의 형체가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있음에도 큰 출혈이 없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며 나를 위로했다. 생각해보니 얼마전에 내가 바로 간의 발생 과정에 대해 1학년 학생들에게 강의하지 않았던가?

질긴 혈관망 사이로 내배엽기원의 간세포들이 끼여들어가는 것이 간의 발생 과정임을 생각해볼 때 결국 혈관망 주위의 간세포들은 망가졌지만 질긴 혈관들은 크게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울혈성 출혈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 담관이 파열되어 담즙이 혈액으로 흘러 들어갔을 텐데 이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딸아이의 몸에는 A라인 B라인 등 손발에는 빠짐없이 혈관주사가 꽂혔고 목정맥에까지 주사선이 연결됐으며 오른쪽 겨드랑이 근처 가슴에는 혈흉 치료를 위해 가슴관까지 꽂혀 있어서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겁이 유난히 많아서 주사 한 번 맞는데도 난리를 치는 딸아이의 온몸에 주사를 꽂아 놓았으니 난리를 칠 법한데 너무나 잘 참고 견디어내는 것을 볼 때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가슴이 아팠다. 생각해보니 40여년을 살면서 그때만큼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었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의 욥을 떠올렸다.

욥이 당한 고통은 사실 내가 당한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남의 고통이라는 간접 경험과 자신의 고통이라는 직접 경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기회였다.


5. ‘간 재생’ 놀라운 기적… 2주만에 딸 퇴원 

딸이 사고를 당한지 10여일 후 1996년이 끝나고 새해가 밝았다. 대학 신년하례회가 1월2일 교수회의실에서 열렸다.

순서대로 서서 뒤에 오는 사람과 신년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방식의 하례식이었다. 그날 100명이 넘는 선배,동료,후배 교수들에게 내가 받은 덕담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이 선생,열심히 기독학생들을 지도하며 기도하더니 하나님이 당신 딸을 살려주신 모양이야!”

사실 나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전도를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럴 만한 지혜도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어리석음을 하나님은 아시고 이런 방식으로라도 간접적인 전도를 하게 하시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교수들조차도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내게 덕담을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1월4일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지 꼭 2주일이 되는 날 주치의인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님이 “이 선생,오늘 퇴원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해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이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경에 있었던 것이 며칠 전인데 벌써 퇴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박 교수님은 이미 심장 간장 폐 등의 상태 등을 모두 점검했는데 큰 문제가 없으니 퇴원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병실을 떠나셨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간장의 발생을 강의하는 해부학 교수다. 2주전에 자동차 앞바퀴에 짓이겨진 간장이 2주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되는 모습을 내게 생생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생명창조의 과정을 어리석은 자에게 재연해주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길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4년6개월 된 어린 아이의 몸 한가운데로 중형 승용차가 지나갔는데도 살아있다는 것을 그 누가 쉽게 믿으려 하겠는가?

그 사실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한데 짓이겨진 간장을 2주만에 다시 만드신 것은 학문을 업으로 하는 필자에게 생생한 깨달음을 줘 자칫 기적이 주는 비논리성 혹은 비합리성의 시비를 일거에 제거하도록 하신 것이 아닐까? 더구나 교만하기 쉬운 지식집단인 서울대 의대 교수들에게까지 하나님 살아계심을 증거한 사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사고를 통해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필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우리의 삶을 지키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편)


6. 나눔의 삶 다짐…기초의학자로 변신 

딸의 교통사고를 통해 얻은 귀한 체험들은 나로 하여금 삶에 대해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했다. 또 지난날들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나 하나만 신앙적으로 바르게 살면 되지 주제넘게 다른 사람에게까지 내가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소극적인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딸의 고통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확실히 체험했고 나는 더 이상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며 나만을 위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끝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그 생각은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임상의사가 아닌 기초의학 전공 의학자가 되게 하신 이유로까지 순식간에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돌이켜보건대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에게 남보다 무언가를 잘 깨우치게 해주셨음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하셨다.

그랬다. 그렇게 잘난 것도 없는 내가 인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궁금한 현상들에 대해,딱히 책에서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현상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곤 했다. 그런데 전문가로서 그 해답을 일상의 삶속에서 순간순간 얻었던 기억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하나님이 주신 깨우침의 달란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잘 가르칠 수 있는 달란트를 내게 주셨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 생각은 그 달란트를 통해서 많은 분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단체로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내게 허락하셨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성경속의 기록을 통해 생명현상에 대해 분명한 깨우침을 받았고 그 생명현상에 지난 10년 이상 공부해온 비타민 C와의 신앙적 연관성까지 분명히 깨우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신실한 신앙의 선배요 고등학교와 의과대학 선배인 서울대 안과의 이진학 교수가 전혀 뜻하지 않은 전화 한 통을 주셨다. 날을 하루 잡아서 자기 교회에서 무슨 이야기라도 1시간 정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온 것이다. 이 교수는 정확히 고등학교와 대학교 10년 선배로 필자가 평소 매우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선배가 신앙간증이든 특강이든 1시간만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해오자 나는 매우 기뻤다. 하늘 같은 선배가 나름대로 부족한 후배를 귀하게 생각하고 계셨다는 증거가 아닌가?

나는 당시 성경의 생명현상 이야기와 비타민 C를 통한 건강 이야기 등 1시간이 아니라 2시간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때맞춰 정확하게 그런 전화가 온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97년 2월 이 교수가 출석하는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한 강의가 오늘날까지 수백 교회로 이어지고 있으니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어떻게 더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강의 이후 안디옥 교회 임병조 장로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장로님의 절친한 친구이신 고려은단 사장이신 조창현 장로님을 만나 강의 내용을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임 장로께서 출판비용을 쾌척함으로써 내 전공인 비타민 C의 경험적 학문적 신앙적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된 것이다.


7.  ‘비타민C 박사’ 이왕재 안수집사 

나는 1980년대 중반부터 비타민 C를 복용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비타민 C에 관한 한 나름대로 한 학문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간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00년말 내가 KBS 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자 전국에 비타민 C 사재기 열풍이 불어닥쳤다. 내가 출연해서 말한 것이 비타민 C 복용으로 현대의학도 손을 든 동맥경화성 질환을 앓고 계시던 양가 부모님들을 살린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제한된 세 분(친부와 장인 장모)에 경험적 사실이었지만 내게는 학문적으로 거의 확신에 가까운 현상이었기에 많은 분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일이었지만 반향이 너무 컸다.

오래도록 당뇨를 앓아 수개월밖에 살기 어렵다는 부친이 비타민 C를 복용하고 10년여를 더 사셨으니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장인과 장모도 같은 경우였다. 장인의 경우 심한 동맥경화로 한쪽 눈에 부분적 시력상실이 왔다. 비타민 C를 열심히 복용해 70∼80% 정도 잃었던 시력이 거의 완벽하게 회복됐다. 당뇨를 오래 앓으셨던 아버지나 장인 모두 동맥경화성 질환을 앓으신 것이 공통점이고 모두 열심히 비타민 C를 복용하셨다는 사실이 내게 비타민 C가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고 심지어는 부분적인 치료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장모님도 중풍으로 쓰러져 거의 왼쪽을 쓰시지 못했는데 완벽하게 회복이 되셨다. 그러한 모든 기록이 지금도 서울대 병원에 잘 보존되어 있다.

이 방송 때문에 전국 약국마다 비타민 C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정확한 내용을 듣지 않고 결과만 들은 고혈압 당뇨환자들이 병원에 가서 전문의사에게 다른 소리 말고 비타민 C나 내놓으라고 했으니 동료 의사들이 나에 대한 불만이 오죽하였을까 쉽게 상상이 됐다.

독자들은 이제 왜 내가 비타민 C에 그토록 오랜 기간 집착해 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을 것으로 믿는다. 분명 비타민 C는 동맥경화를 예방하거나 심지어 치료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동맥경화의 학문적 이야기까지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분명하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것은 고혈압 때문이든 당뇨 때문이든 동맥경화가 왔다면 우선 고혈압과 당뇨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를 확실히 한 뒤 비타민 C를 복용하면 두 질환의 부작용인 동맥경화가 완벽하게 차단된다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부친인 이용찬 장로는 1999년 4월19일 만 81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선친께서는 일찍이 하나님을 영접하심으로서 우리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모태신앙으로 유아 때부터 기독교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일찍이 하나님을 영접한 관계로 생각이 항상 앞서 나가셨다. 고생이 되더라도 내가 서울로 유학하기를 바라셨고 늘 기도로 후원하셨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제단을 지켜오신 아버지가 병실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을 잠결에 목격하고 목이 메었던 기억이 새롭다.

평생을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 사셨고 신앙의 유산을 가장 큰 유산으로 남기신 아버지의 시신은 평소의 유지에 따라 서울의대 해부학교실에 기증되었다. 의과대학 교수 부친의 시신이 기증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8. 질병 만났을때 기도가 삶의 중심돼야 

나는 크리스천이자 서울의대 교수로 늘 환자를 가까이 하다보니 죄와 질병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느날 한 분이 내게 질문했다. “우리가 질병을 얻었을 때 기도로 이겨내야 하나요,아니면 병원으로 가야 합니까?”

인간이라면 반드시 질병으로 고생을 하게 되는데 그 대응방법이 천태만상이다. 즉시 병원으로 가서 의사와 상의하는 사람도 있고 가까운 약국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민간요법에도 의존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의료인이자 기독교인으로 신앙적 질병관에 매우 관심이 많다. 문제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질병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는 기독교인에게 오는 질병의 의미는 비기독교인들에게 오는 질병의 의미와는 여러 모로 다르다.

비기독교인에게 질병은 단지 고통이요,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라면 기독교인에게는 투병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투병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기도 하고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함으로써 더욱 뜨거운 신앙 세계를 체험하기도 한다.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보여주셨던 신유 은사들을 보면 적지 않은 경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노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우리 마음속에 진정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그로 인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 병을 치유 받은 여인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신유 은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며 또한 그분께서는 그것을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 결코 질병을 해결하는 예수님의 능력과 치료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즉 기도하기만 하면 모든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뜻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질병을 위해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그러한 고통이 우리에게 있을 때 즉 우리가 약할 때만이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도할 수 있으니 우리의 약함이 곧 강함이라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질병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그러하듯 고통일 수밖에 없지만 신앙적으로는 이 질병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 야고보 사도는 분명히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 혼자 고민하지 말고 신앙 선배들에게 기도를 의뢰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 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의 병을 위해서 기도를 의뢰할 수 있는 신앙의 선배가 있음은 진정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장로들은 그 환자에게 주의 이름으로 기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2000년전 사회에서 환자에게 기름 바른다는 사실은 인간의 손을 통한 치료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볼 때 발달된 의술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이야기다.

나는 질문한 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바른 신앙인이라면 질병을 만났을 때 기도가 삶의 중심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발달된 현대 의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9. 폐간위기 건강잡지 살려 전도열매 

1989년,내 인생에서 문서선교를 위한 매우 중요한 만남이 이뤄졌다. 그것은 아끼는 후배 차한(현 가천의대 길병원 소아과 과장) 박사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고교 1년 후배지만 의과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급생이었다.

나는 차 박사로부터 뜻밖에 ‘건강과 생명’이라는 선교잡지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차 박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차 박사는 신앙의 깊이나 신실함에 있어 내 선배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비타민 C에 관한 글을 몇 개월에 걸쳐 연재하면서 이 잡지의 편집위원이 되었다. 자연히 차 박사와는 인간적 신앙적으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잡지는 내가 미국 시카고에서 2년 동안 연수하고 돌아온 1996년 재정난으로 폐간키로 결정됐다. 당시 잡지 제작을 위해 재정 후원을 도맡다시피 하셨던 예장통합 여전도회 황화자(소천) 총무께서 폐간 결정 이야기를 들으시고 펄펄 뛰시던 기억이 새롭다. 건강을 매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는,매우 중요한 문서선교 매체를 그렇게 쉽사리 폐간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셨다.

나와 차 박사는 황화자 총무를 찾아뵙고 잡지의 앞날을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어떻게든 다시 살려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1996년초 ‘건강과 생명’은 발행인은 나,편집인은 차 박사 체제로 재출범했다. 우리는 호기롭게 다시 시작을 선언하였지만 재정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당장 변제를 요구하는 채무자로부터 심한 협박(?)을 당해야 했다. 3000여만원을 빌려준 채권자를 간신히 설득해 2년 동안 분할 상환하기로 하고 차 박사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잡지를 발행해나갔다.

그런 과정에 정말 많은 분이 도와주셨다. 어떤 때는 당장 500만원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잘 알지만 평소 필자에게 전화 한통도 하시지 않던 한 장로님이 500백만원을 헌금으로 보내주셨다. 돌이켜보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걱정만 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1996년 이후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재정문제 때문에 겪은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재정문제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지만 놀랍게도 직원들의 봉급을 체불한 적은 없다. 어렵다던 외환위기 때도 우리 잡지는 질적?양적 성장을 했으니 이 잡지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은 병에 걸리면 심적으로도 나약해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나약해진 물고기를 낚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스스로 그물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바 있으셔서 서울대병원 안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그 병원 한쪽에 문서선교 잡지인 ‘건강과 생명’이 제작되는 장소를 허락하시어 병든 자를 낚는 귀한 일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잡지는 원고료가 없다. 필자가 모두 신앙이 돈독한 기독인들이기 때문에 헌신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잡지를 직접 제작하는 직원들이다. 참으로 신실하고 아름다운 형제자매들이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에서 기도하며 잡지 제작을 통해 하나님께 헌신해왔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10. “에이즈·사스는 인류에 대한 경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늘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딸의 교통사고를 통해 부족한 내 신앙을 새롭게 일깨워주셨고 이어 비타민 C 효과를 중심으로 국내외 간증 및 건강집회를 인도하도록 만드셨다. 또 여기에 선교잡지 ‘건강과 생명’ 발행인으로 문서선교에 참여하도록 하셨으니 이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 계속 쓰임 받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고 있다.

신앙인이자 의학자로서 요즘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엄청난 질병이 신앙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1970년대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의 자유주의가 극에 달했고 마약과 문란한 성생활 등으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가 발생했다. 이 병원체는 RNA 바이러스다. 참고로 바이러스는 세균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다른 존재로 스스로는 결코 살 수 없고 숙주의 세포에 들어가 세포핵의 유전물질을 이용해야만 증식이 가능하다. 치료가 힘든 것은 너무 쉽게 변종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질환에 대한 근본적 치료책이 제시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극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인간의 타락과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일차적인 경고로 나는 생각한다.

2003년 2월을 전후해 중국에서 새로운 바이러스 질환이 출현했다. 원인을 알 수 없다하여 한때 ‘괴질’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사스로 확정되었다. 공식 보고에 따르면 사스는 2003년 2월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8000여명이 감염돼 600여명이 사망했다. 홍콩의 경우 치사율이 15%에 육박했던 것으로 전해져 엄청난 치명적 질환임을 알 수 있다.

에이즈는 문란한 성관계를 통해서 발병하고 치사률(약 60 %)도 매우 높지만 감염력은 떨어진다. 사스는 치사율은 다소 낮지만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발병할 수 있어 그 잠재적 공포성은 에이즈와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나다.

나는 이 질병들이 생명을 무엇보다 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라고 여긴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고유영역인 생명복제,유전자 조작까지 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 모든 사람이 걱정하고 경계하는 인간생명의 복제가 현실화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보통 두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하나님이 금하신 금단의 마지막 열매인 생명나무 열매를 인간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가졌던 의문 중의 하나가 신앙생활을 하면 믿지 않는 다른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또 많은 분도 내게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내 생각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이다. 잘못 들으면 하나님을 믿으면 그 대가로 건강하게 살게 해주신다는 다소 기복적인 신앙관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오히려 그런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 원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해줄 수 있다.


11. 믿음은 건강지키는 ‘특효약’ 

왜 기독교 신앙인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느냐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믿음이란 종교적 신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신념이 하나님을 향한 신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적 믿음을 신앙이라고 한다. 종교적이 아니더라도 믿음 혹은 신뢰감은 사람에게 평안함을 준다.

어린아이들이 한창 재미있게 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며 엄마나 아빠를 찾다가 없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을 지켜줄 신뢰의 대상이 보이지 않자 평안함을 잃게 된 때문이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을 때 그 평안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의학적으로 사람이 불안할 때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면 마음의 평안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체계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소위 뼈와 함께 붙어 있는 근육에 의한 운동체계가 그 하나이고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불수의적 운동체계가 다른 하나이다.

불안과 관련하여 작동되는 자율신경계는 에너지를 방출하려는 운동을 추진하는 교감신경계와 에너지를 보존하려는 부교감신경계로 나눌 수 있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교감신경계의 자극에 의해 심장이 저절로 빨라지고 혈압도 상승한다. 또 입속의 침이 마르고 손과 발에서는 진땀이 나게 된다. 소화기의 운동성을 떨어뜨려 밥맛이 없고 소화도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가 서로 적절히 조화되도록 정교한 장치를 우리 몸속에 장착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스트레스와 불안이 계속되면서 우리를 교감신경의 지배 아래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확고하다면 우리는 교감신경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부교감신경계와 교감신경계가 적절히 조화된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장)는 성경 말씀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 몸은 최상의 조건 속에 놓여 건강한 삶을 분명하게 체험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신실한 믿음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복 외에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건강의 복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운동의 중요성을 어디서나 강조한다. 운동하며 흘리는 땀의 상쾌함은 경험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한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나는 이 운동의 원리를 신앙에도 적용하고 싶다. 우리 몸에 축척된 잉여 에너지를 운동으로 배출할 때 상쾌함을 느끼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내 신앙,내 가족,내 행복만을 위한 기도와 헌신을 넘어 이웃과 사회,복음 전파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을 때 느끼는 감격과 은혜,기쁨이 더 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 간증과 건강이야기가 연재되면서 많은 분이 격려의 전화를 주셨다. 또 건강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달란트를 통한 전도와 선교 사역에 더 힘쓸 것을 다짐했다. 제 홈페이지(http://vitamin-c.co.kr)를 방문하면 건강과 비타민 C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하며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길 기원한다.


정리=김무정 기자 [email protected]

◇필자 약력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대한의사협회지 편집위원 △월간 ‘건강과 생명’ 발행인 △온누리교회 안수집사 △저서 ‘비타민C 박사의 생명이야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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