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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티테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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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초대교회의 문서들을 살펴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름 앞에 '티테디오스'(Titedios)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즉, 바울도 그냥 바울이 아니라 티테디오스 바울로, 요한도 요한이라고만 부르지 않고 티테디오스 요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티테디오스란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인들이 자기의 이름 앞에 티테디오스라고 붙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이방 세계에 증거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근심에서 해방된 자들이라는 것을 세상 가운데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반응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가령 재수하는 사람과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일반적으로 재수하는 사람은 슬퍼하고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은 기뻐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비록 재수를 하게 되더라도 그 속에 기쁨이 있어서 예수 믿는 것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가난할지라도 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감사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소록도에 가보면 손가락 없는 나환자가 감격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감격을 가지고 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런 성도의 모습을 볼 때 믿지 않는 사람이 묻습니다.
"도대체 너에게 그런 기쁨과 감격을 갖게 해주는 비결이 무엇이냐?"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이것을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기 이름 앞에 디테디오스라는 별칭을 붙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심령 가운데 믿음의 자리와 근심의 자리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이 100퍼센트라고 할 때, 믿음이 100퍼센트 꽉 차 있으면 근심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면 나머지 50퍼센트는 근심이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만을 추구할 뿐 만 아니라 또한 근심을 쫓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 심령이 믿음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김정호 목사 (번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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