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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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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국해연 (광주순복음교회 11교구)

할렐루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 지금까지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고, 지치고 힘들 때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결혼 전 열심히 주를 섬기는 친정 언니를 따라 출근부에 도장 찍듯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열심은 아니였지만 주를 의지하는 마음은 함께 했습니다. 서울 근교를 떠나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더구나 전라도 광주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풍요롭고, 친구 많고, 놀기 좋은 서울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이곳 광주에서 신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낯설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정말 싫었지만 착하고 자상한 남편 때문에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광주순복음교회를 섬기는 형님 내외가 이제 막 남편을 전도하여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나름대로 순종하며 감사와 십일조 생활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첫 아이를 임신하여 점점 배가 부르던 중 겨울을 맞이하였는데 아가씨 때 수술까지 했던 비염이 재발하여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 찾아 왔습니다. 임심만 아니라면 병원 약 한 번 만 먹으면 편해 질텐데 뱃속의 아이 때문에 독한 약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의 나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 숨을 쉴 수 없기에 입으로 숨을 쉬는 일이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밤이면 입속의 침이 말라 자다가 몇 번씩 깨어나 있어야 했습니다.

한 번은 친정에 가서 낮잠을 자다가 고통스러워 눈을 떴는데 친정 언니가 옆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잠자는 모습이 너무 불쌍하다며..... 그러나 나보다도 뱃속의 아이가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본 교회에 조용기 목사님께서 1일 부흥성회에 오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능력의 목사님이 오신다는 이야기에 ‘그래 나도 한 번 이 번 기회에 간절히 기도 한 번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예배시간 1시간 전에 자리를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고통은 두 번째요 뱃속의 아이가 너무나 걱정이 되어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예배는 끝이 났습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남은 기억은 창자가 끊어 질듯한 간절한 기도를 처음으로 드렸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몇 일이 지났는데 나도 모르게 코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며 일시적이겠지 곧 환절기가 시작되는데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짜가 지나고 환절기가 지나도록 아무 이상없이 건강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나를 치료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2년 후 둘째 아이를 갖게 되어 또 다시 염려를 했지만 우리 주님이 치료하셨기에 재발하지 않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아이가 태어난지 한 달이 지나고부터 수시로 감기에 걸렸습니다. 감기가 심하여 한달에 주일을 빼고 25일은 병원에 다녔지만 입원은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한 두 시간씩 기다렸다 진료를 받고 집에 오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3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시간과 물질과 육신의 피곤함을 세상에 다 바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주월동 새 성전으로 입당을 하고, 저희는 지금의 하남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교회와의 거리는 너무 멀어졌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세상에 받쳤던 시간과 물질과 육신을 이제는 모든 예배와 감사 예물로 하나님께 드리겠사오니 더 이상 힘든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하나는 손에 잡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발길이 뚝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의지할 바 없는 이곳 광주로 보내셔서 주만 바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인도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남편과 저는 남편의 사업장에 어려움이 닥치게 될 때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그렇게 몇 년 동안 힘들었지만 감사함으로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년말 년초에 시작되는 다니엘기도성회가 있었지만 꼭 한 두 번씩은 빠지게 되었는데 2004년도 다니엘 성회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첫날 당회장 정원희 목사님께서 이 번 성회는 강사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만 바라보라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아 새벽기도까지 겸하여 다니엘 기도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남편이 기존에 하던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하게 되어 당회장 정원희 목사님을 모시고 4월 29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6월 달에 당회장 정원희 목사님께서 총회장님이 되시고 첫 조장으로 임명을 받게 되어 더욱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다니엘 기도 때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깨달았습니다. 버림받아 마땅한 이 죄인을 이렇게 항상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올 해도 다니엘기도를 마치고, 제2의 도약의 해로 소망의 말씀을 주셔서 바라보고 믿으며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한 번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출처 : 광주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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