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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교회 봉사는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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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김병화 집사(순복음교회 양천대교구)

신유 기도로 허리통증 치료받아
교회봉사후 인생이 180도 변해

나는 하나님을 만난후 인생이 완전히 바뀐 행운의 사나이다. 나의 이야기가 자랑이 아니라 간증이 되기를 기도한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나는 등에 7개의 점이 있어 칠성님의 자식이라고 불리웠다. 우리집은 철저한 불교집안이었다.

철도고등학교를 다니던 형이 실습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일이 생겼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형은 그날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에 앓게 됐다. 장남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자 어머니는 절에서 볼공을 드리며 형이 고침 받기를 빌었다. 집안은 갈수록 기울어 졌다.

어머니가 열심히 불공을 드리는데도 형이 나아지지 않자 하루는 그 절에 있던 비구니가 더 큰 신을 섬기는게 좋겠다고 했다. 비구니는 교회에 가면 병을 고쳐 준다고하니 교회를 섬겨보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절에서 내려와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신을 배신했다며 어머니를 핍박했다. 충북 옥천 우리동네에서 유일한 대학생이던 나는 지게로 잡부일을 하면서 틈틈히 돈을 벌었다. 어머니가 다닌 교회 십자가탑을 세우는 데도 가서 일해 돈을 벌었다.

군대를 제대한 나는 환경이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 차비만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도착하자마자 태권도 사범을 했다. 그리고 꿈을 위해 낮에는 막노동, 밤에는 연기학원을 다녔다. 영상학원도 졸업해 사이판에 가서 영상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자 갑자기 인생에 회의가 밀려왔다. 나를 바라보니 영락없는 실패자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자살 충동도 생겼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불면증으로 시달렸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는 집에 오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잠을 주무시는 것이었다. 잠못자는 아들 앞에서 주무시는 어머니가 너무 섭섭해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며 어머니를 깨웠다. 어머니는 “이놈아 기도해”하시며 다시 주무셨다. 나는 ‘그래 기도라도 해보자’고 결심했다. 방법은 몰랐지만 “잠을 재워주신다면 교회라는데를 나가보겠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나도 모르게 자고 일어난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왓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나갔다. 하지만 창피해서 이것저것 따져보고 새벽예배를 다니기 시작했다. 왜냐면 새벽예배는 설교도 짧고 불도 어두워서 사람을 알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정도라면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일을 제외한 모든날에 새벽예배를 드렸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술에 취하나 약속은 지켜야 겠다는 생각에 새벽제단을 쌓았다.

그쯤에 나는 아는분의 소개로 믿음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결혼 후에도 나는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했다. 남들보다 힘이 좋아 하루 걸리는 일을 대여섯시간만에 해치우니 오라는 곳도 많았다. 열심히 일했다. 하루는 자고 일어나려는데 허리통증과 함께 일어설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허리쪽 신경이 하나가 끊어지고 척추가 내려앉았다고 했다.

병원과 한의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한 한의원에서는 허리에 큰 불을 올려놓고 뜸을 떴다.뜸 뜰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무지막지한 뜸때문에 허리에 큰 흉터가 생겼는데 모양이 기이하게도 십자가 모양이다. 칠성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각인된 것 같았다. 계속되는 통증으로 우리 부부는 병 잘고친다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왔다. 신유시간에 조용기 목사님은 아픈곳에 손을 얹으라고 하셨다. 나는 허리에 손을 갖다댔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나의 몸전체를 누군가 인절미처럼 주문다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할렐루야!

병고침을 받은 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했다.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누군가가 무기를 들고 설교하시는 조용기 목사님에게 달려가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무일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너는 주의 제단과 종을 지켜라’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다. 아내애개 얘기를 하니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남선교회에 등록해 7년째 보호실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는 나의 생활을 180도로 변화시켰다.

건설현장 잡부가 아닌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물질의 축복도 넘치게 허락하셨다. 남선교회 보호실 봉사외에도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회원으로 또 구역장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주의 종 모세를 보필한 여호수아의 믿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이전에는 수 많은 교회 건설 현장에서 잡부일을 했지만  지금은 주님의 주시는 축복으로 교회 건축 헌금을 드려 더 많은 교회를 세우고 싶다. 지금은 캄보디아에 한 교회 건축을 돕고 있지만, 앞으로는 많은 교회를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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