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미용실을 운영하며 전도에 쉼없는 삶

첨부 1


[역경의열매] “교회 나가면 커트 공짜” 전도 

- 간증 : 김복희 집사(대전가양제일교회, '헤어미가엘' 미용실운영, 전국교회 전도 간증 집회 강사로 사역 중)


1. “교회 나가면 커트 공짜” 전도

나는 대전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처음 국민일보에서 ‘역경의 열매’ 취재 요청을 받았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런 지면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마도 기자는 내가 미용실에서 “교회에 나가면 커트는 공짜”라며 열심히 전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를 선택한 것 같다. “저 미용실에 가면 예수 교육 받는다”는 소문도 한몫 했을지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내 신앙 체험과 간증을 통해 독자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나는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시련이었고 고통이었다. 당장 끼닛거리조차 없었다. 고구마 한두 개로 배고픔을 달래면서,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과 나는 들에 나가 나물을 뜯고,산에 올라 땔감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학교를 계속 다닌다는 건 불가능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어머니는 교회일에는 열심이셨다. 평생 교회 청소와 종 치는 일에 헌신하셨다. 젊은 남자라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교회를 몇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셔야 했다. 험한 산길을 돌고 돌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힘겹게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종 치는 일은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다.

교회 옆에 사시던 조 집사님이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당신이 종을 칠 테니 고생하지 말라고 어머니를 만류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종 치는 일은 내 생명줄”이라며 결코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다고 하니 매우 신앙이 깊으셨던 것 같다.

자식들이 어디가 아프면 약국도 병원도 없던 산골이라 어머니가 손을 얹고 기도해주셨다. 그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상태가 좋아지곤 했다.

어머니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시면서 성경을 읽으시고 친척과 이웃 주민에게 쉬지 않고 전도하셨다. 현재 내 고향에서는 90%가 예수를 믿는다. 아름다운 내 고향과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하다. 가난한 산골 농가에서 아버지의 몫까지 감당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하던 어머니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힘들던 시기에 이웃집 권사님이 내게 전도를 하였다. 한군데도 의지할 곳이 없던 내게 찾아온 축복이었다. 곧바로 온 식구가 예수를 믿게 됐다. 이를 계기로 나와 어머니는 절망 속에서 축복된 인생으로 바뀌었다. 우리 네 자매 중 권사가 3명이 나왔고 나는 집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너무 슬픈 일이었지만 고난 뒤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듯 우리 가정에도 고난을 통해 온 식구가 구원을 받는 기적이 일어나서 지금은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복된 삶을 누리고 있다.

어릴 때 교회학교 함갑주 선생님(명지고 교장 퇴임)과 함송자 선생님(목사 사모님)이 성경 속 요셉이야기로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시고 용감한 다윗 왕 이야기로 강인함을 길러주셨다. 네 자매 중 초등학교는 나만 졸업했을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나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악착같이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내게는 요셉과 같은 꿈이 있었고 승부욕도 강했다. 초교를 졸업하자 동생과 서울로 올라와 돈을 벌었다. 번 돈의 일부는 집에 보내고 일부는 학비로 모았다. 그때 내 소원은 오로지 어머니를 호강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소원하던 것보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바로 천사도 흠모하는 전도자가 되길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사는 문제 정도만 해결해 주시려던 게 아니라 천사가 부러워하는 하늘나라의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셨다.


2. 40대들어 남편 질병·사고 잇따라 

25세부터 시작된 결혼생활은 대체로 행복했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들어서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몰려왔다. 건강하던 남편이 질병에 걸리고 교통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나는 성경의 이사야에 나오는 히스기야처럼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이제 더 이상 제 힘으로는 시련들을 감당할 수 없어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남편이 병든 것은 내가 아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남편은 위가 헐어 4년간 병원신세를 지면서 결국에는 직장까지 못 다닐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에서 요양해야만 했다.

“여보,아파서 내가 직장생활을 못하니 너무나 미안하오.” “아니에요,괜찮아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봐요.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겠죠. 제가 직장을 알아보든지 할게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는 한 살 된 첫딸 혜미를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결혼 후 처음으로 직장에 나가게 됐다. 하지만 직장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쉬운 곳이 아니었다.

이때 믿음이 좋은 남편은 내가 고생하는 것을 보다 못해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원에 가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금식기도를 한 지 10일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4년이나 된 병을 완전히 치료받게 된 것이다. 나는 눈물로 “하나님,너무나 감사해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라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런 치유의 기적이 있은 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편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일까.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전도 사역에 동역자로 세워주시기 위함이었다.

“아,당신의 놀라운 뜻이 숨겨져 있었나이다.” 치료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간증이 되고 전도에도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전도하면 남편은 초신자가 교회에 정착할 때까지 계속 승용차로 초신자들을 편안하게 모시고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전도도 남편과 같이 하니 더욱 효율적이었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더 큰 감사는 자녀들까지 전도에 협력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나도 16년 전에 큰 사고를 겪었으나 모두 하나님께서 돌보셔서 무사했다. 대형 교통사고를 세 차례나 당했던 것이다. 결혼해서 1년 만에 친정에 가다가 직행버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피투성이 속에서도 전혀 다친 곳이 없었다.

그리고 8년 전 우리 과실로 중앙선을 침범해 양쪽 차를 모두 폐차시킬 정도로 큰 사고를 냈는데도 무사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복음 전도를 위해 쓰시려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지금까지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은 모두 하나님 은혜이기 때문에 남은 인생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 구원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것이다. 사람이란 단순해서 건강하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또 배우자와 자녀,이웃 등 너무나 감사할 조건과 환경이 수없이 많은데도 전혀 감사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소중한 것들이 다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해본다면 지금 건강할 때,그리고 모든 것이 주어져 있을 때 매일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찬양해야 한다. “주님,사랑해요. 주님을 찬양합니다.”


3. 미용실 운영에 빠져 주님 배반 

1990년,나는 대전 목동의 을지병원 인근에 조그마한 미용실을 열었다. 미용실을 잘 운영하면서 부유한 삶을 꿈꿔가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일 병원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집사님이 자기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 치유 받는다고 귀띔해주는 것이었다.

나 역시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금요 철야예배를 드리기 위해 스스럼없이 그 집사님을 따라갔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난 크게 놀랐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모든 교인이 손을 높이 들고 방언을 하며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안수기도를 통해 병 고침뿐 아니라 방언 은사까지 받았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것이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열심히 전도에 매달렸다. 열심히 전도를 하면서 나는 하나님께 미용실 이름을 ‘복음 미용실’로 바꿔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한 지 며칠이 지났을 때 먼 친척 한 분이 찾아오셨다.

“내가 뭘 도와줄까? 이상하게 내가 자넬 돕고 싶네.”

평소 자주 왕래하지 않던 분이 갑자기 찾아와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나는 ‘하나님이 보내셨구나’라고 생각하고 “미용실을 크게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내가 필요한 만큼 돈을 꺼내놓으셨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게 분명했다. 그때 도와주신 분이 한귀임 집사님이시다. 천사 같던 한 집사님은 날 도와주신 지 몇 개월 후에 숙환으로 천국으로 먼저 가셨다.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것처럼 애통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변한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았다. 미용실 운영이 비교적 잘돼 가자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었다.

20년 동안 일곱 차례나 가게를 옮겼다. 하나님께서 내 인내를 시험하려고 하셨는지 옮길 때마다 항상 미용실 옆에는 다른 미용실이 먼저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옆집에 손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래서 주일에도 일찍 교회에 다녀와 미용실 문을 열곤 했다. 저녁예배도 참석하지 않고 인근에 미용실을 하나 더 열고 거기에 온 정열을 쏟았다.

나는 어느 새 하나님보다 돈 버는 일에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옆집에 손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게 하나님은 마침내 사랑의 매를 드셨다. 일곱 차례나 나와 가족이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도록 연단을 주신 것이다. 합의금으로 모든 재산을 처분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복음 사역을 사명으로 주시고 물질 후원자까지 보내주셨는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밑바닥까지 끌어내리신 것이 분명했다. 통곡했다. 회개의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재산은 없어졌지만 목숨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세상 사람들과 그렇게 아등바등하면서 살아왔는지 후회스럽다. 사실 지금도 내 가게 양쪽에 다른 미용실이 있고 근처에는 일류 미용실이 수십 개나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내 가게가 있는 지역의 미용실은 대부분 주일에 영업을 한다. 그러나 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주일에는 꼭 미용실 문을 닫는다. 옛날에는 내가 손님을 따라다녔는데 지금은 손님들이 스스로 찾아온다. 이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산다. 그리고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일이 삶의 목표가 됐다.


4. “영원구원, 대충 할수는 없죠” 

전도는 시작했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몇가지 전도 원칙을 세웠다. 첫째,새벽예배 나가서 기도로 무장하기. 둘째,미용 서비스로 전도하기. 셋째,머리 스프레이 등 선물을 준비해 증정하며 전도하기 등이었다.

이 계획을 세우기 전까지는 전도의 열매가 드물었다. 전도의 능력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서 한 사람 두 사람씩 전도의 열매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도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전도 열정 없이는 전도가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주님께 또 다시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저는 그저 그렇게 미지근한 마음으로 전도하기는 싫습니다. 제가 성경의 바울처럼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전도하다가 미쳤다고 소리도 듣게 하시고 그 소리를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그동안의 전도 활동은 사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그런 전도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개하며 다시 열정을 쏟기로 결신했다.

“하나님. 제게 전도의 불을 붙여 주소서. 이 상태로는 안됩니다. 전도의 사자가 되게 하소서. 사자처럼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제 가슴에 전도의 불을 지필 수 있도록 뜨거운 전도자를 만나게 하소서.”

하나님은 정말 기도의 응답으로 좋은 전도자들을 많이 만나게 해 주셨다. ‘전도왕’ 박희영 전도사님의 간증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고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전도 방법으로 ‘진돗개 전도왕’이란 별명을 가진 박병선 집사님의 간증을 접하게 됐다.

특히 나는 박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내 삶이 온통 전도의 불길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박 집사님 덕에 여러 도시의 집회에도 함께 초대받아 가게 됐고 하나님은 날 그렇게 전도 훈련을 시키셨다.

나는 전도에 용감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수에 미쳤다고 비웃고 “대충 믿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신 있게 선포할 수 있었다.

“누구나 갈망하는 국가 대표 선수로 선발되는 일은 대충해서는 뽑힐 수 없고,공부도 대충하면 대학을 갈 수 없듯이 목표가 있는 사람은 ‘대충’이란 말이 없어요.”

미용실에서 복음을 전할 때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대충 믿지.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극성이야”라고 말할 때,나는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이렇게 응답한다.

“손님, 머리도 대충 해드릴까요”하면 손님은 이내 정색을 하곤 한다. “그러니 예수 믿는 것을 대충 믿으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세상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고,중요한 일이 있다. 내게 일 급하고 제일 중요한 일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 구원이다.

20일 작정 새벽기도를 드리며 전도 목표를 세웠다. 하나님께 복음 전파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남편과 나는 아침부터 밤늦도록 노방 전도를 했고 아침에는 학생전도,낮에는 주부들과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미용 커트로 봉사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때 내가 뜨겁게 체험한 것은 세상적으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때 전도서에 있는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1∼2).


5. 무작정 길거리 전도서 많은 열매 

미용실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우리 부부는 길거리 전도를 열정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우리 부부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새벽 예배를 마친 뒤 중·고등학교 등하교 시간에 전도지를 들고 하루에 200명 이상의 학생에게 복음을 전했다. 성령에 붙들리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오후에는 경로당이나 주부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미용 봉사를 겸해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당시 나는 구체적인 전도 방법은 몰랐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오직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전도의 열매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제 내 생애의 목표는 오직 전도가 됐다. 생활이 온통 전도이다보니 하루종일 같이 일하는 딸 혜미가 엄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았다. 혜미가 친구들에게 전화로,이메일로 전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시 자녀들은 부모를 닮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혜미는 친구 설희,기병,영백 등을 하나님 앞으로 전도했다. 혜미는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엄마랑 나를 보면 교회에 너무 빠져있는 것 같대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내가 전도를 열심히 해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안가지. 내가 뻔히 그 사실을 아는데 어떻게 전도를 미룰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혜미의 이런 말에 나는 속으로 ‘내가 전도하는 그대로 하고 있구나. 그래. 그게 바로 내가 물려줄 신앙의 유산이다’라고 생각했다.

전도해야 한다는 엄마 말에 순종하는 딸을 보면서 훗날 그 딸의 길도 축복하실 것을 생각하니 은근히 기대가 된다. 딸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실 것을 믿는다.

미용실 인근에 중국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장진석 청년의 영혼을 놓고 기도하며 전도의 기회를 찾고 있었다. 1년간 복음을 전했지만 그 청년은 시간도 없고 또 중국집 주인의 눈치를 보느라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곤 했다.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내 믿음과 전도 생활,그리고 그로 인한 축복 등을 말해주며 교회에 나갈 것을 권했다.

그리고 언젠간 총각도 사장이 될 꿈을 가지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이 청년은 일하던 중국집을 전격 인수하고 정말로 사장이 됐다.

나는 ‘지금이 때다’고 생각하고 강력하게 교회에 나갈 것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예. 이제 원장님 말씀대로 교회 한 번 나가볼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 청년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시간만 나면 카운터에서 성경 읽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저 청년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저렇게 성경 말씀을 읽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전도한 학생들 중에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이준민 학생이다. 참 순수하고 귀여운 고등학생이다. 이 학생에게 머리 커트를 하고 내가 나온 신문과 책자 스크랩한 걸 보여주며 복음을 전했더니 이 학생은 “어? 이 사람이 아줌마예요? 와∼진짜예요? 교회 나가면 커트 공짜예요?” “그럼∼,아줌마가 전도해서 교회 나가면 평생 커트 공짜지.” “한 번만 나가도 평생 공짜예요?” “그건 아니고. 주일마다 교회 나가면 평생 공짜야. 학생도 같이 교회 나가자. 예수님 믿고 축복받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천국도 가야지.” “네. 그럼 이번 주에 교회 꼭 나갈게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처럼 기쁘고 행복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전도한 사람이 수백명에 달한다.


6. 하늘나라 갈때까지 전도 쉼없다 

딸 혜미와 나는 찬양하기를 무척 좋아한다. 전문 찬양사역자는 아니지만 미용실에서 매일 찬양하며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전국을 돌며 간증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축복해주셨다.

이런저런 집회에 다니다 보니 어떤 때는 개인용 마이크가 필요했다. 혜미와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작정기도를 시작했다.

나는 혜미에게 절실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응답을 받아본 사람만이 그 기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이크를 놓고 3일간 아침 금식을 했다.

“주님,마이크 후원자를 보내주세요.”

어느 날 찬양을 몇 곡 부르고 있는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 우리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시는 분이었다.

“집사님,찬양하러 다니실 때 마이크 필요하시죠? 가장 좋은 무선 마이크를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 사역에 귀하게 쓰십시오.”

“할렐루야!” 귀한 마이크를 선물 받은 우리는 더욱 열정적으로 전국을 돌며 찬양 사역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녀에게 ‘진돗개 전도왕’ 박병선 집사님을 통해 전국을 다니면서 간증과 특송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전도 집회나 부흥회에서 우리를 부르면 만사를 제치고 어디든 달려간다.

사실 미용실 문을 닫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벅찬 일이었다. 미용실 문을 3∼4일 열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미용실이 잘못되지는 않을까’하는 인간적인 마음에 갈등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아브라함을 생각하게 하셨다. 100세에 낳은 아들도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의 순종을 떠올리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 모녀의 전도와 찬양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도전 받는다면 진정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미용실은 언제나 예수님의 향기로 넘쳐흐른다. 미용실 문을 들어서면 전도집회 전단과 성지순례 사진 등이 가득하다. 또 언제든 찬양할 수 있는 마이크와 키보드가 준비돼 있다.

또 한쪽 벽에는 올해의 전도 목표와 전도 대상자 명단이 적혀 있는 종이가 빼곡히 붙어있다. 손님들은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기독교방송을 시청한다. 우리 미용실 손님은 누구나 ‘예수 믿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동네에는 “저 미용실에 가면 예수 교육 받는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싫어하는 손님도 물론 없진 않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제가 돈을 벌려고 미용실을 한다면 얼마나 비참해요. 생명을 구하는 일,예수님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답니다”고 고백한다.

수천 명에게 복음을 전하자 하나님께서는 미용실 운영을 책임지셨다. 인근에 미용실이 많아 손님이 없을 만도 하건만 손님이 잔뜩 몰려든다. 미용사로 함께 근무하는 딸 혜미가 최근 유행하는 ‘샤키 커트’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나서 주위 일곱 군데 학교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전도 열정으로 나는 출석 교회에서 ‘전도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주위 성도들이 내게 전도 비결을 물으면 다섯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전도하기 전에 칭찬하라. 누구나 한군데 정도는 칭찬할 곳이 있으며 전도의 문은 칭찬에서 출발한다. 둘째,예수님을 믿어 좋은 점을 이야기해줘라. 특히 기쁨이 충만하다는 점을 강조하라. 셋째,하나님이 든든한 후원자임을 선포하라. 넷째,예수님을 강조하다 보면 지금 당장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언제든 어려울 때 교회를 찾게 된다. 다섯째,하나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처럼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는 그 하나님을 믿는다.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간증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며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 드린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