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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난로불에 장작을 넣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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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불에 장작을 넣으며…      
 
-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나의 서재에는 장작난로가 있다.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나마 목가적 목회를 하고 싶어서 설치하였다. 난로에 장작을 넣고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유년 시절의 향수에 젖는다. 피부에 닿는 따뜻한 온기도 너무 좋다. 그것은 도시의 가스보일러와 온풍기가 줄 수 없는 신비로운 영혼의 따뜻함이다. 나는 그 따뜻한 불길 속에서 자칫 세파에 시들고 차가워질 수 있는 영혼을 녹이고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하루의 모든 업무를 끝내고 침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면 홀로 남아 서서히 꺼져가는 장작을 안타까워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참나무 몇 조각이라도 난로 속에 더 넣어놓고 들어간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어차피 다 타버리고 꺼져버릴 것을 왜 장작을 낭비하느냐고 말한다. 물론 내가 지난밤에 던져 놓은 장작은 아침이 되면 재로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장작을 낭비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속불꽃을 뒤집어보면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은 불씨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겉불꽃은 사그라지고 말았지만 어제 내가 던져 놓은 장작들이 불꽃으로 타오르다가 아침까지 불씨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마른 장작을 올려놓으면 다시 붉게 살아서 타오르게 하는 그 불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신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렇다. 불씨는 최후의 순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장작난로 깊은 곳에서 빨갛게 남아 있는 불씨를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것은 내가 살려놓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검은 장작이 꺼져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잠들기 전, 참나무 장작을 던져 넣는 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 영혼 한가운데 은혜의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 잠시 꺼졌더라도 다시 장작을 던져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옮겨놓은 불순종의 불길이 세상을 태우고 있다. 정직한 제사장의 순결한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해야 한다. 

나는 오늘밤에도 어김없이 난로 안에 참나무 장작을 던져 놓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섬길 것이다. 불씨가 살아 있는 한 불길은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불씨마저 꺼져버린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한국교회 안에 다시 한 번 은혜의 불씨, 성령 충만의 불씨가 살아나야 한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꺼져가는 장작을 방관한 채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은혜의 장작을 던져야 한다. 아니, 자기 자신이 장작이 되어 그 불길 속에서 타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 은혜와 성령의 불씨를 살리고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장작은 말이 없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장작이 되라는 침묵의 메시지가 아닌가.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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