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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이젠 뉴스 대신 하나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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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민 전도사 (前 MBC앵커)

4년전 MBC 방송국에서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워싱턴 특파원과 앵커를 역임하고 iMBC를 맡아오던 조정민 사장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가겠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동료와 후배들에게 이 한마디를 던지고 미국 보스턴의 고든 콘웰 신학대학교로 떠났다. 4년간 그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보스턴 온누리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다.

'조 사장'에서 '조 전도사'가 된 그는 신학을 마치고 지난달 한국에 돌아왔다. 57세의 그는 지금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공동체를 담당하는 전도사로, 또 기독위성방송인 CGN TV 부사장으로 새로운 사역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서 만난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조 전도사의 목회관

조정민 전도사는 자신이 지난 시절 동안 열정을 가지고 뉴스를 전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대부분 비판적 소식, 거칠게 이야기하면 '나쁜 소식'(Bad News)이었다고 토로했다. 주님을 만난 뒤 그는 여생을 이 사회속의 '좋은 소식'(Good News)을 전하는 데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언론이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어두운 소식을 양산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학도로서 그의 꿈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양을 하면서 목회야말로 참 정치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사회를 회복하고 살리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면 진정한 정치는 진정한 목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조 전도사의 지론이다. 그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면서 자신이 학생시절부터 꿈꾸던 진정한 변혁과 개혁은 복음을 통한 신앙적 혁명과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조 전도사는 기자나 정치인들 가운데는 믿음을 갖는 삶 자체를 편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믿음은 결코 반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초이성적인 실체라면서 언론과 정치계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훨씬 깊고 넓은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언론인 중에 내면적으로 메말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서 언론인들이 영적으로 소생될 때, 자신이 회복됨은 물론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도사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는 MBC 입사 동기다. 둘 다 스타 기자, 스타 앵커의 길을 걸었다.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날 두 사람은 이 땅의 변혁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자고 결심했다. 지금 둘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한 사람은 대권 경쟁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던졌다. 각각 '왕궁의 길'과 '빈 들의 길'로 나눠섰지만 언론계 입사 당시 가졌던 변혁을 위한 열망은 동일할 것이다. 길이 다른 것이다.

조 전도사는 왜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청와대 출입기자, 특파원, 앵커 등을 역임한 그는 거칠 것 없는 인생을 달려왔다.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취재원들과 폭탄주를 돌리며 시대를 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그가 1997년 어느 날 갑자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근처의 골프장에서 새벽에 골프 연습을 나갔는데 그날 따라 골프장 문이 잠겨 있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모태신앙인 아내 홍지혜 사모가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한다는 교회에 들어가보았다.

예배당은 열정적으로 찬양하며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거, 사이비 집단이구나. 일주일만 취재해서 카메라 출동에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재를 목적으로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갔다. 설교도 듣고, 교인들의 기도 내용도 들어보았다. 나흘째 되던 날, 새벽예배에서 참석자들이 찬송가 483장을 불렀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네 모든 짐 내려놓고/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죄 사함을 너 받으라…" 그 순간 조 전도사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다음날 교회 목사를 집으로 초청했다. 그 목사는 조 전도사에게 무릎을 꿇으라면서 기도를 해줬다. 함께 기도하면서 조 전도사는 생각했다. '내 고집과 내 주장대로 살아오다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인생의 완전 항복선언을 하는구나.'

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것은 우연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십수년 동안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귀환'을 위해 기도해왔다는 사실을…. 아내는 매일 술 마신 뒤 의식불명 상태로 귀가한 남편의 양말을 벗기며 울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제발 이 발이 술집에 가지 않고 예배당으로 향하게 해 주세요."

이후 조 전도사는 매일 술을 마시던 시간에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새벽기도도 나갔다. 98년부터는 3년간 매주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와 함께 성경공부를 했다. iMBC 사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적자를 보던 iMBC를 맡으면서 그는 흑자가 나면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했다.

회사는 2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사장직을 맡으면서 야간에 신학을 공부하려고 국내 신학교를 알아보았다. 그때 하 목사가 권면했다. "하나님께는 '파트 타임'으로 헌신하는 것이 아닐세. 헌신은 '풀 타임'으로 하는 것이지. 전적으로 드릴 때 하나님이 쓰신다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내려놓음의 대가는 컸다. 늦은 나이에 영어로 하는 공부는 어려웠고 이민교회에서의 목회는 상처투성이였다. 건강도 악화돼 두 차례나 안면마비가 찾아왔다. 심장발작도 일어났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자신에게 하나님은 탄탄대로를 보장해주시지 않았다. 상처와 좌절, 분노와 절망 속에서 그는 목회를 배웠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사역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목회는 주님이 하시는구나. 주님의 요구대로 내 삶을 드리는 것이 목회구나.' 점점 평안이 찾아왔다. 일곱 가정으로 시작한 보스턴 온누리교회는 지금 650여명이 출석한다. 조 전도사는 자신보다 어린 담임 목사를 도와 교회를 일궜다. 그는 이민교회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서 새벽마다 울며 기도했던 것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홍 사모는 가끔 조 전도사에게 묻는다. "당신, 지금 정말 기쁘세요?" 과거에는 '내가 과연 기쁜가?'라는 의문부호를 붙였지만 요즘은 자신 있게 대답한단다. "그래요, 나는 정말 기뻐요. 내 주변과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힘들더라도 그 어려움을 감당하고도 남는 기쁨이 있어요. 예수님이 바로 내 기쁨의 원천이에요."

정동영 전 의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조 전도사와 만나 "자네야말로 가장 부러운 길을 가고 있는 듯하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 전도사는 정 전 의장에게 "당신이 좋은 정치가가 되기를 기도하겠네. 그러나 좋은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라고 화답했다.

조 전도사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이제 다음 세대를 섬겨야 할 나이라면서 평생 동안 다음 세대들이 소명을 가지고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조 전도사는 오는 10월에 목사 안수를 받을 계획이다.

글 이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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