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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곶감 석 접 들고 상경… 신앙으로 자수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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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이재식 남서울대 이사장

내가 복음을 처음 접한 것은 20대 중반, 대학 졸업을 앞둔 때였다. 내 인생의 가장 모질고 쓰라린 역경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나는 산간오지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직 더 배우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곶감 석 접을 노잣돈 삼아 남원발 완행열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막막했다. 하지만 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평범한 진리 하나에 의지해 무작정 열심히 살았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짐꾼, 찹쌀떡 장사를 했다. 낮에는 온갖 품팔이, 밤에는 대학생으로 정말 부지런히 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과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미아리 천막촌에 방 한 칸 얻어 살고 있던 겨울 어느 날. 나는 새벽에 신문 배달을 마친 후 헌 밥상을 수선하는 품일을 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인데도 온 몸에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여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주여’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오던 할머니 몇 분이 내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주여, 저 청년을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소리였다. 그때 ‘주여’라는 단어가 섬광을 번쩍이며 내 뇌리를 뚫고 들어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주여! 당신이 정말로 계신다면 이 지독한 처지에서 나좀 건져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터져나왔다. 그 당시에는 나도 삶이 너무 힘들어 ‘신이 있다면 나 같이 열심히 사는 젊은이를 가만 두지 않으실 텐데…’ 하는 생각에 교회 종탑만 보아도 눈시울이 젖곤 했다.

하지만 나를 교회로 인도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들의 기도 소리와 동시에 내 입에서 ‘주여’라는 말이 터져나온 지 불과 며칠 뒤 나는 근처 미아동감리교회 장로님 한분의 인도를 받게 됐다. 그렇게 내 신앙생활은 시작됐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는 했지만 세례교인이 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삶은 여전히 힘겨웠고, 복음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즈음 나는 나와 함께 신문팔이, 구두닦이로 생계를 꾸려가던 청소년들이 한글조차 읽을 줄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한글을 가르쳐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 정릉천변에 허름한 천막을 치고 시작한 청소년 야학당 ‘희망원’은 내가 이후 걸어온 평생교육사업의 출발점이었다.

생활고에, 대학공부에, 야학까지 이중삼중으로 힘겨웠던 그 시절, 하나님은 다시 내게 복음의 메신저를 보내셨다. 그 무렵 고등학교 은사님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가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인도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결혼 후 미아동 감리교회를 다니며 아내의 권유로 세례받은 후부터 내 믿음은 점점 불붙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복과 능력을 자주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우선 야학 희망원은 고교 교사 출신인 아내의 헌신적 내조로 오늘날 검정고시의 명문이 된 수도학원으로 발전했다.

또 청계천 자락에 정규교육을 받지못해 배움에 목말랐던 주부와 만학도 2000여명의 배움터로 세워진 진형중고등학교(진형은 ‘진리의 등대’라는 뜻)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대학평가 종합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된 남서울대학교까지 이 모든 사건들이 이 부족한 종을 복주신 하나님의 은혜며, 신앙고백의 열매들임이 분명하다.

나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가장 좋아한다. 그 안에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 같다. 내 힘으로 가난을 이기고, 배움의 꿈을 이루고, 자수성가할 수 있으리라 무작정 덤벼들었던 때, 나는 너무도 힘든 세상 앞에서 몹시 초라해지고 말았다. 그때 홀연히 나타나신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모든 역경을 이기는 신앙인, 파워 크리스천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내 신앙은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님을 만난 이후 더욱 뜨거워졌다. 그리고 광림교회 장로로, 교육위원장으로 봉사하는 등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복을 수도 없이 체험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오늘의 내 모습 안에 내 능력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다. 온통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신 것들로 가득하다. 그동안 문해교육 및 검정고시를 위한 수도학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주부· 숙녀·성인들을 위한 진형중고등학교, 실무형 인재육성을 위한 남서울대학교, 전문직업인 양성을 위한 남서울평생교육원을 설립할 때, 새로운 모험에 대한 두려움과 창조적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도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믿음의 승리자가 되었다.

이제 머잖아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남서울대학교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살아 있는 기독대학’으로 세워주시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기적을 체험하는 기쁨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 누구인가

1935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다. 남원중학교와 남원용성고등학교, 한양대 공과대학을 졸업했고, 고려대 교육대학원 최고위과정을 거쳐 우즈베키스탄 국립 타슈켄트공과대학에서 명예공학박사를 받았다. 문해교육과 평생교육 사업에 투신해 수도학원, 남서울대학교, 진형중고등학교, 성암문해교육원, 남서울평생교육원 등을 설립해 이사장과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저서로 ‘걸어온 길 가야 할 길’ ‘열린 교육을 꿈꾸며’ ‘오삼교육론’ 등이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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