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시각장애인 위해 젊음 바친 남성 헬렌켈러

첨부 1


- 김선태 목사(실로암안과병원장), 제49회 막사이사이상 수상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2년 전부터 철저한 검증과 강도 높은 인터뷰를 거쳐 2007년 수상자로 결정한 김선태 목사. 그는 대한민국 실로암안과병원장이다.
그이는 10살되던 해 한국전쟁 에서 고아가 되고 불발탄을 만지다 실명하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과일을 따먹다가 벌어진 비극이었다. 이 후 그가 겪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은 차마 말로 다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의 모진 인생살이는 어린 시절 친척들의 학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모를 잃은 어린 그이는 친척들로부터 모진 매를 맞아 머리와 몸에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아직도 여기 저기 흔적들이 남아 있을 정도라고. 웬만큼 자라서는 2년 반 동안 깡통을 들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거지 생활도 하였다. 거지 김선태는 다리에 동상이 걸리고 식중독에 걸려 죽을 고비를 겪었다. 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살아날 수 있었다.

"양 다리를 절단해야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없을 겁니다”
거듭 감사하다는 그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글썽인다. 주위의 도움이 있었기에 새 생명을 얻었다는 그이는 마침내 거지 생활을 끝내고 맹학교에 입학했다. 선한 이웃으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자신의 목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 또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여겼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힘껏 살았다.

맹학교에서 점자 교육을 받은 후에는 맹학교가 아닌 숭실중․고등학교와 숭실대학교에서 비장애인들과 나란히 학교에 다니며 공부했다. 그리고 장로회신학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학사와 목회학 석사,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그의 모교인 숭실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헬렌켈러 이후 시각장애인으로서 처음으로 세 가지 박사학위를 소지하게 되었다. 그래선지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남성 헬렌켈러’라고도 한다.

그는 자신의 젊음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해 맹인교회를 설립하고 맹인들에게 점자 성경과 찬송가를 보급했다. 그렇게 시작한 이웃 사랑이 어느새 시각장애인 젊은이 98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지도자로 양성했다. 맹인 사회를 변화시키는 디딤돌이 된 것이다.

그리고 故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무료안과진료를 시작했다. 무료로 개안수술을 받고 어둠에서 빛을 찾은 사람이 약 2만7천6백 명, 사랑의 무료안과진료를 받은 사람은 35만 여명에 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삼성SDI의 도움으로 46인승 리무진 버스를 기증받아 버스 안에 완전한 안과시설을 갖춘 움직이는 실로암안과병원을 만들었다. 이 차로는 병원이 없는 농어촌과 섬 지역, 나환자 정착촌, 전국의 맹학교, 교도소, 감호소, 변두리 지역의 저소득층을 위해 1년에 약 40주 동안 순회 진료를 한다. 더러 그 자리에서 개안 수술을 하기도 한다.
북한의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도 진료버스 ‘움직이는 실로암안과병원’을 기증했으며, 매년 중국 연변에서도 이동 진료를 실시 중이다. 아프리카 케냐와 방글라데시, 필리핀에서도 사랑의 무료안과진료와 개안수술을 실시했다.

지금도 그는 저녁 10시 잠자리에 들고 새벽 3시에 기상한다. 기도와 공부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그의 신앙철학은 무조건 대가없이 베푸는 것.
김 목사의 사심 없는 헌신과 봉사가 인정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훈장을 비롯해서 호암재단의 호암상 봉사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국제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게 돼 수많은 아시아의 장애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사무실 한 켠에서 반쪽짜리 책상을 놓고 시작한 그의 이웃 사랑은 이제 차고 흘러 넘쳐 배고프고 아픈 이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한편 현재 실로암안과병원은 세기관의 병원이 있다. 그 하나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세워진 병원과 중국연변의 실로암안과병원, 그리고 46인승 리무진 버스에 완전한 안과시설을 갖춘 움직이는 실로암안과병원이다. 이 세 기관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진료와 수술을 받지 못하는 20만 맹인과 농어촌, 섬 지역의 실명위기에 있는 500만 저시력자들을 위해 선교와 함께 무료안과진료를 통해 실명을 예방하고 개안수술로 새 생명의 밝은 빛을 찾아주고 있다.


다음은 막사이사이상 수상에 대한 김선태 목사와의 일문 일답이다.

=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소감은?

▶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립니다. 감사와 기쁨은 저에게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선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대가없는 사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제가 받은 막사이사이상은 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도와주신 여러분과 실명 예방과 개안수술을 위해 도와주신 교회와 관계된 분들의 상입니다. 제가 대표로 받은 것이지 결코 제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 막사이사이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고 국가와 사회의 소외당한 분들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분들에게 수여하는 상인데 목사님께서는 이상을 수상하신 후에 어떤 자세로 남은 삶을 사시겠습니까?

▶ 저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시는데까지 부지런한 새처럼 성실하게 선교를 위해 내 삶을 바치고 모든 분들을 섬기면서 살겠습니다. 섬기는 삶을 살며 가장 낮은 곳의 작은 자를 더욱 섬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재물도 주시고 명예도 주시고 생명도 더 길게 연장시켜주신다고 했습니다. 겸손하게 베풀면서 나의 삶을 살겠습니다.
 
= 목사님 막사이사이상은 상패와 메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금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받은 상금은 어떻게 사용하실 계획이십니까?

▶ 상금은 $50,000입니다 한화로는 약 4,500만원이 넘습니다. 저는 전 금액을 실로암 아이센터 건축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이 금액은 두 개의 진료실을 만들 수 있는 기금인데 그 진료실 앞에 막사이사이상 기념이라고 동판에 새겨 부착하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상한 후에 받은 상금은 모두다 개안수술을 위해서 또는 장학금으로 바쳤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템플턴상을 수상하시면서 상금 $1,000,000을 받으셔서 2분 동안 손에 가지셨다가 군 선교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저는 한 목사님의 삶의 발자취가 너무 아름다워서 부족할지라도 한 목사님처럼 사심 없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나의 삶을 바치고 싶습니다.
 
= 목사님은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렵고 넉넉하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비장애인 학교에서 모든 과정을 해내실수 있었습니까?

▶ 첫째로 값없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도움의 은혜입니다. 둘째로 새벽마다 눈물 흘려 하나님께 매달려 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저에게 훌륭한 분들을 많이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신 곽안전 선교사님과 옥호열 선교사님 이분들은 다 미국에서 오신 분들이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주시고 용기를 주신 故한경직 목사님과 김형남 박사님, 그리고 주위 친구들의 사랑과 도움의 힘이 컸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가 반려를 잘해주어서 오늘의 제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 목사님 그러면 가족은 어떻게 되시나요?

▶ 1950년부터 1968년까지는 네 식구였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식구였습니다. 지금은 아내를 비롯해서 두 딸과 사위, 손녀딸도 있습니다. 피얼슨 박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께서 성실한 젊은이들을 아들딸같이 생각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그분들의 성스러운 모습을 본받아서 진실하고 신앙생활 잘하는 젊은이들을 아들딸처럼 사랑하면서 돕고 꿈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참 많습니다. 그 아들딸들이 가는 곳마다에서 저를 도와줍니다. 그래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 혹시 목사님께서 못 이루신 꿈이 있으셔서 아쉬운 면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몇 가지 있는데, 첫째로 첼로나 바이올린을 꼭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워 그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둘째로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못해본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셋째로는 여유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양로원에 다니면서 필요한 것도 마련해 주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 목사님께서 우리 한국과 아시아 맹인들의 선교와 실명예방과 개안수술을 위해 큰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계획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 저는 ‘실로암 아이센터’를 건립하려고 합니다. 현재의 병원 건물이 협소하여 많은 환우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없고 불편을 주어서 항상 송구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환우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정신치료와 영혼의 치료, 눈의 치료를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안양에 사시는 집사님께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을 정리하고 유산의 일부인 9천만원을 헌금하면서 아버지를 기념할 수 있도록 실로암안과병원을 위해 써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그 집사님의 헌신적인 희생에 용기를 얻어서 현 실로암안과병원 자리에 한국과 아시아의 맹인들에게 선교와 더불어 실명도 예방하고 개안수술을 하여 빛을 찾아주는 실로암 아이센터를 세울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실로암 아이센터가 건립되면 환자가 병원에 들어오면 마음의 치료와 육신의 치료를 함께 받을 수 있는 전인치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상담을 통한 재활 훈련을 실시할 것 입니다. 그리고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후진국에 있는 맹인들을 위한 개안수술과 실명예방에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 실로암 아이센터는 어떤 규모로 지어집니까? 재원마련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실로암 아이(EYE)센터는 지하 3층~4층, 지상 9층, 총 2,400평으로 이루어진 병원입니다.
실로암 아이(EYE)센터가 건립되려면 약 120억 원의 예산이 소요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작게는 벽돌 1장인 1,000원을 비롯해서 벽돌 100장, 1,000장, 10,000장을 기증해 주십사 벽돌기증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벽돌 뿐 아니라 수술실, 입원실, 진료실이나, 병원 한 층을 기증하여 사랑을 나눠 주실 것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병원 1평당 약 4백5십만 원 정도가 소요되며, 진료실이나 수술실 1실에 약 2천5백만 원, 한 층은 평균 100평으로 약 4억5천만 원 정도가 소요 될 것으로 예산하고 있습니다.

실로암 아이(EYE)센터가 완공된 후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실로암 아이센터 중앙에 부착되어 오고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헌신의 귀감이 되고 후손들에게도 자랑스러운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뜻있는 분들이 가정에 경사스러운 일, 결혼기념일, 돌 기념, 자녀 입학 졸업기념, 환갑, 진갑 기념, 생일기념 등을 맞아서 적절하게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동안도 많은 분들이 경사스러운 일들을 기념해서 개안수술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일찻집, 바자회, 자선음악회를 통해 이루어진 열매를 바쳐 주심으로 개안수술에 크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단안)에게 개안수술로 새 생명의 밝은 빛을 찾아 주는 데는 30만원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이는 수술시 시력을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삽입하는 인공 수정체와 재료비 및 마취비등이 포함되는 비용입니다. 실로암안과병원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진료와 수술을 받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상담을 통하여 무료진료와 수술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뜻있는 분들의 대가없는 사랑과 정성스러운 도움으로 실로암아이센터가 건립되면 한국교회와 사회 더 나아가서 아시아의 의료선교 센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분들이 한국교회와 사회 더 나아가서 아시아 맹인들의 선교와 복지를 위해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