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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선구자와 일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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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구자>라는 노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온 민족이 제일 많이 부르던 애창곡이었습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에게는 가장 싫어하던 노래입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혜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드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뜻깊은 룡문교에 달빛 고이 비춘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룡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깊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윤 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인 데 처음에는 <용정의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선구자>로 바꾸었습니다.
지금 일송정, 혜란강, 용드레 우물, 용주사 모두 관광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에 대한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용정에 가면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을 하던 일송정(一松亭)이 있습니다.
용정에서 3 키로미터 정도 서쪽에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서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입니다.
비암산 기슭에 있는 나무입니다. 돌기둥에 청기와를 얹은 것같다고 하여 1938년 일송정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으로 피란을 나온 우리 민족은 늘 이 소나무 밑에 모였습니다.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고, 조국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1928년 우리 애국자들은 이 곳을 비밀 투쟁 장소로 지정하였습니다.
학교 소풍도 꼭 일부러 이곳으로 갔습니다.
점점 이 일송정 소나무는 일본 사람들에게 가시처럼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소나무를 없앨가 궁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1930년 용정에 수해가 들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일송정 귀신탓이다> 라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옆에 사격장을 만들어 놓고 일부러 일송정에 사격을 가하여 총자국으로 난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소나무는 죽기는커녕 점점 푸르러만 갔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이 소나무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점점 더 푸르러만 가자 소나무 밑에 구멍을 파고 후추가루를 넣었습니다.
결국 이 소나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가서 비슷한 소나무를 캐다 다시 심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자리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기어코 우리 민족은 독립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 겨자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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