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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를 행동하자

  • 김부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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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4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로마서 2장 13절

설교제목 : 진리를 행동하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 2:13)】

 

 <세 부류의 사람들>

  신앙생활과 관련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뉘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율법’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율법에 대해서 도대체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소 귀에 경을 읽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분들에게 하느님의 율법은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소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율법과 무관하게 잘 살아갑니다. 이런 부류가 언제나 절대다수이지요.

  그 다음 부류는 하느님의 율법을 듣는 자들입니다. 아니 듣기만 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책망했습니다만, 사실 하느님의 율법을 듣는 경지도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책망만 할 수는 없지요. 어느 면에서는 하느님의 율법에 대해서 들어주기라도 하니 고마운 것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에 대해서 귀가 열린 자들 … 그들은 이제 본격적인 신앙생활에 들어선 이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지적했듯이, 그런 단계로는 부족합니다. 마지막 단계가 필요한데, 그것은 곧 하느님의 율법을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율법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실천의 능력>

  하느님의 율법을 실천하는 삶이라야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삶이 되어야만, 영성적 도약이 일어납니다. 이는 곧 높디높은 절벽의 끝에서 낭떠러지를 향하여 첫 발을 내딛는 것과 같습니다. 즉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영성적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며, 하느님 말숨의 성육신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진리다”라는 판단과 확신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실행하려는 행동(Action)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절대다수의 신앙인들은 그 행동(Action)을 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아마도 세 가지 차원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첫째는 용기가 부족해서 그럴 것입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듣기만 하는 차원과 그 진리를 행동하는 차원 사이에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절벽이 놓여 있습니다. 그 엄청난 절벽 앞에서 많은 이들이 용기를 잃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집트를 탈출했다가 다시 이집트로 회귀해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를 행동할 때, 반드시 그가 온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것들을 거의 다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행동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그가 누렸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리고, 경제적 풍요를 잃어버리고, 크고 작은 권력들을 다 쏟아버리게 되고, 빈 손이 됩니다. 왜냐하면 빈털터리가 되어야만 절벽 위에서 날아오를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진리를 행동하는데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진리를 행동한다고 했을 때, 반드시 고난의 세월이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행동하는 자에게 고난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고난이라 함은,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 심리적, 가족적, 신앙적, 영성적 … 모든 차원의 고난입니다. 진리를 행동하려는 자 앞에는 항상 고난의 가시밭길이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리에로의 행동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혹은 반전>

  그러나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은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이는 애벌레가 나비로 진화(進化)할 때의 차원과 비슷할 것입니다. 애벌레가 지상에서의 수명이 다해져서 생명의 끝지점에 이르게 되고, 다음 단계인 나비로 진화하게 되었을 때, 그 애벌레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진화에의 고통’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 일시적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자는 나비로 부활할 것이지만, 이 일시적인 ‘고난과 역경’이 두려워서 후퇴하는 자에게는 ‘나비로의 진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행동하느냐, 행동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그 차이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진리를 행동하자”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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