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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컴퓨터, 체스,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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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체스, 마음  
 
- 리처드 마우(풀러신학교 총장)
 

지난 11일자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한 기사에 컴퓨터와 체스 대결을 벌인 개리 카스파로브(20년 동안 체스계에 왕으로 군림했다)의 경험담이 나왔다. 1985년 그는 동시에 32대의 컴퓨터와 시합을 벌여 다 이겼다. 그 후엔 컴퓨터를 이기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그건 컴퓨터의 ‘사고’ 능력이 인간보다 더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요즘 컴퓨터가 말을 좀 더 빨리 둔다는 것 외에는 변한 건 없다. 컴퓨터가 수(手)를 선택하는 과정은 초창기 체스 경기 프로그램 그대로다. 즉 ‘수백만 수의 가능성 가운데서 한 수를 찾는 것’이다.

컴퓨터의 이런 수 선택 방식은 인간 전문가의 방식과 다르다. 인간은 초연하게 관찰하고 추론해 직관적으로 행동한다. 사람의 체스 경기는 차를 운전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린 차로를 바꾸고자 할 때 여러 대안을 두루 생각한 후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숙달된 운전자는 특정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적절한가를 감으로 포착한다.

1960년대 중반 필자는 시카고 대학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공부하며 ‘심리철학’(정신작용을 연구하는 철학)을 다룬 바 있다. 당시 우리 학생들의 뜨거운 주제 가운데 하나는 ‘지성과 기계’ 문제였다. 컴퓨터의 기능이 사고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향상될 수 있는가. 그러한 컴퓨터가 어떤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추론 방식과 아주 흡사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어떤 학생들은 사고하는 기계의 개념을 전혀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인간관(인간의 생명현상을 물리적·화학적으로만 설명)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일부 학생은 인간 지성과 인공 지능을 가진 것들의 질적 차이(다리를 놓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 간격)를 강조하면서 인간의 독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 특질이 합리성이라는 점에는 양측이 동의했다. 이때 인간과 같은 합리적 지성이 컴퓨터 안에 복제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런 의제에 나는 늘 불편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를 관람하면서 내 마음이 그렇게 불편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영화에서 목성 비행 승무원들은 할(H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할이 고도의 지능을 지니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할의 사악한 성격이었다. 할은 승무원들에게 반기를 들고 승무원들을 파멸시키기로 작심한다.

그건 과학적 허구지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컴퓨터는 마침내 우리 인간과 유사해질 것이다.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신뢰심을 유발하고 그 신뢰심을 배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컴퓨터 할을 인간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할의 이성적 이해 능력이 아니라 인간이 할을 의존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마음은 우리가 기본적 신뢰심을 가꾸는 장소다. 마음은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곳이다. 우리는 마음과 존재 전체를 바쳐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언약 준수자가 되지 않으면 언약 파기자가 될 수밖에 없다.

<번역 : 김춘섭 예수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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