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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밴드목회 제1과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교회의 목적


제1과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교회의 목적

 

▣밴드목회1강 [제1장 교회론]

 

 

1장 교회론

 

저는 신당제일교회에서 목회합니다.

 

제가 미국 애쉬랜드 대학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하는 가운데서 이 밴드에 대한 목회 힌트를 얻고 그래서 우리 교회에 접목하게 되는데 어떤 텍스트도 없고 어떤 지침서도 없고 우왕좌왕 하면서 대단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교인들이 저를 믿고 따라와 주어서 우왕좌왕하면서도 교회가 21세기를 향해 나가고 교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이 신당제일교회에서 하는 목회 세미나를 해 달라고 해서 부리나케 준비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제까지 해오면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간의 어려웠던 과정들을 정리하여 "교회 체질을 바꾸어라"라는 책을 내었고 목사님을 위한 교인들을 토양화 하고자 "밴드로 들어가라"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분명히 생각해야 될 것은 이번 세미나에 여러분들이 들어와서 공부하게 되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폭발이라든가 일대일 양육이라든가 중간 지도자에 대한 어떤 성경공부 등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이것은

 

1. 교회론을 분명하게 정립하고

 

2. 우리 목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냐? 또 교인들이 어떤 방향으로 성숙시켜서 목회를 해야 할 것이냐? 분명한 목회관 정립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목회 정립입니다.

 

그러한 목회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책이 "밴드로 들어가라"입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셀그룹 스터디와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목회하고 요한 웨슬리 목회와 또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배경을 현대의 밴드 목회 중심으로 이것을 한번 가꾸어 나가려는 것입니다.

 

저도 이번 목회를 하면서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좋은 것이라면 기를 쓰고서 다 해보았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지나가면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올라갔다 떨어지고 올라갔다 떨어지는 하는 그런 모습이 나타나니까 교회에 다시 활력을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또 무언가를 하나 배워서 하고 하나를 배워서 하고 이런 식으로 끝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목사님들이 가서 한 가지를 배워 하나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무슨 목회가 되겠냐 말입니다. 목회는 어떤 목표를 향해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고 성숙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교회도 바쁘고 이것저것 맡아서 하다 보니까 일관성 없는 목회를 하게 되고, 교인들도 우왕좌왕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교회가 움직여진다고 할 때에 어떤 목사님은 카리스마가 있어서 독선적으로 따라와 따라와 잔소리 말고 따라와 하면서 당기는데 그런 교회는 나름대로 교회가 활기 있게 움직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날마다 작은 데서 조금하다가 문제가 생기고 자기들끼리 다투고 시험들어 나가고 또 누가 하나가 시험들어 나가면 연달아 같이 시험들고 그럽니다.

 

저는 이것을 접시목회라고 말합니다. "접시돌리기 목회" TV에 이따금 보면 서커스 사람이 접시를 돌리면 돌리다가 이쪽에 떨어질라 하면 이쪽으로 가고 또 저쪽에 떨어지려고 하면 저쪽에 가서 돌려야 하니까 목사님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이것 돌려놓아야지 이것 돌려놓으면 저것이 시험들려고 하지 또 그것을 돌려놓으면 이 앞에 것이 시험들려 하지 얼마나 분주하게 바쁩니까?

 

이 밴드 목회는 여러분들이 나중에 보면서 알지만 평신도 사역의 극대화입니다. 평신도 사역의 극대화이기 때문에 옥한흠 목사님이 하는 식으로 제자교육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시켜서 이렇게 가르쳐서 이렇게 가르쳐라가 절대 아닙니다.

 

삶을 캐내어 줍니다. 하나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삶을 CARE 해 나가는데 교인들이 교회 하나를 보살피니까 교인들이 교인 하나를 보살피니까 교회가 건강하게 돌아갑니다.

 

어느 교회가 대단히 열심이고 대단히 뜨거운 교회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날마다 고민 속에 살고 문제 속에 살고 말 속에 살고 늘 고민 속에 사니까 강단에서 그냥 야단하고 욕도 하고 막 싸우기도 하고 여러분들이 이 교회체질을 바꾸라는 이 책을 보면 알지만 제가 목회하는데는 신당동 중앙시장 장돌뱅이들입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억센지 몰라요. 무당들이고 한마디로 하면 좀 무식하고 무경우하고 내 능력으로 내가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누구 간섭도 안 받습니다. 노점상에서 그냥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강퍅한 사람들을 데리고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시켜 나간다는 그 자체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한번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나갔다 하면 시장에서 전부다 소문이 날 정도이니까 아무리 목회를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목사에 대한 불만이 있다 해도 저는 목회하면서 얼굴에 뺨을 맞았던 사람이고, 교인인 집사에게 옷을 찢겼고, 그뿐 아니라 속상하다고 교인이 방석에다 똥을 싸서 강대상에다 처박아 놓을 정도로 지독스런 교회가 신당동 중앙시장에 있는 신당제일교회입니다. 지긋지긋합니다.

 

17년 동안 그나마 해오면서도 하여간 말할 수 없는 말 속에 살아온 사람입니다. 목회하면서 헌신적으로 희생적으로 했습니다. 욕심 안 부리고 교인 한 명 한 영혼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있는 것 다 퍼주면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배반합니다. 제일 먼저 뒤에서 욕을 하고 우리를 떠난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실망이 계속되고 상처를 목회자가 가정에서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하지만 우리 집사람은 어느 틈엔가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만사가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쉽게 교인들이 변질되어지고 한사람이 시험들면 감자 열리듯이 고구마가 열리듯이 하나가 시험들면 연달아서 감자감자 열리듯이 죽 연거푸 시험들어 버립니다.

 

목사님 심방했다가 심방했으면 얼마나 못 착했으면 교인들이 안 나오겠느냐고 말이죠. 이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모든 교회의 문제입니다. 부흥회를 1,000여 곳에 다니면서 교회 교회마다 부흥회를 하면 그 때는 좋아요.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좋아하지만 한 달이 지나가면 또 일상생활로 돌아갑니다.

 

저는 부흥회를 무어라 하냐고 하면 마약주사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부흥회를 하고 다니면서 그 때는 좋아요. 목사님들에게 유익하게 되고 그러나 얼마 지나면 그 사람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가 버리니까 또 부흥회를 해야 하니까 저는 부흥회를 다니면서 그런 것들로 인하여 고민을 했습니다.

 

부흥회 강사가 가서 근본적으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변화되는 것도 아니고 부흥회를 이런 식으로 해야 되는 것인가 고민하는 가운데 우리 교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바로 밴드 목회였습니다.

 

이 밴드 목회를 하면 진짜 교회가 달라지고 성도들의 삶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집니다. 시간이 되면 우리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나와서 간증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릴 것입니다. 목사가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모님들이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전에는 목사만큼만은 일해라. 교인들보고 우리 사모님만큼만 해라. 그러면 교인들이 뭐냐고 하면 어떻게 그렇게 쫓아 가냐. 지금은 솔직히 제 자신이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발뒤꿈치를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얼마나 교인들이 변화되었는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교회에서 하면서 나 혼자만 간직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흥회를 다녀 보면 사모님들마다 심장병 없는 사모님이 없고 그리고 위장병에 걸려서 고생하지 않는 사모님이 없고 얼굴에 기미가 가득 끼어 있고 항상 얼굴에 밝은 표정이 없는 사모님들을 보며 늘 가슴 졸이며 살아가는 그런 사모님들 천지입니다.

 

제가 종로지방(지금은 은퇴를 함)에 가서 부흥회를 했을 때 그 교회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사모님은 어디에 가셨습니까? 심장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워 계시는데 예배 참석은 못하고 누워서 스피커를 통해서 설교를 듣는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해서 사모님이 그렇게 되셨습니까 얼마나 교인들에게 충격 충격 충격을 계속 받았는지 그것이 누적이 되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회가 끝나는 그날에 한번 그 수기를 한번 써 보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인들에게 시달렸던지... 왜 그런 일이 있느냐 하면 목사님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옛모습을 완전히 벗겨 주지 못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뚜렷한 목회관이 정립이 안 되니까 교회를 어떻게 끌고 가야 되고 어떻게 방향성을 이끌어 갈 줄 모르고 그냥 바쁘게만 움직인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15년 이상을 그렇게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목회가 어떤 식으로 목회를 해왔는가 하는 것을 새들백 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서 힌트를 얻어서 적어 놓았습니다.

 

 

제 1 장 교회론/ 제 1 과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교회의 목적 27

 

제 1 과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교회의 목적

 

 

먼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습니다. 그들 중에서는 자신들의 맞는 스타일을 찾아 교회를 유랑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교회의 유형이 다양하다는 이야기이고 많은 교인들도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교회 교회마다 다르다는 거죠. 특성이 있고 다르다는 거죠.

 

목회자에 의해서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 문제는 그 원동력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성서가 주장하고 있는 교회의 목적으로 온전하게 드러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다는데 심각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교회 목적은 현대 목회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요 목표점인데 지금 목회의 방향성을 분명히 못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저기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쁘게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1. 새들백 교회가 말하는 기존교회를 움직였던 힘들

 

 

새들백 교회에서 말하는 기존교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기에 잠깐 기록한 것입니다.

 

1) 전통에 따라 움직인 교회

 

역사가 있고 세월이 지나간 교회에는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목사님이 먼가 변화를 주고 새로 해보려고 하면 늘 하는 말이 무엇이냐고 하면 이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하지 않았는데 뭘 굳이 이렇게 바꾸려고 하십니까 하면서 그저 안일주의에 빠지는 거죠.

 

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하려고 합니까?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종전 이렇게 해왔다고 합니다. 무척이나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상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과거를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항상 과거에도 이랬는데요. 항상 이 교회는 전설따라 삼천리 교회입니다. 날마다 과거적인 이야기만 하고 새로운 지향적인 것에 새로운 것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런 목표는 과거를 영원히 되풀이 하는 것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언제나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과거에 얽매인 정체현상을 안정상태로 봅니다. 굳이 발전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이대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바꾸려고 하지 마십시오.

 

집회를 다니다 보면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마다 참 이것이 문제입니다. 무엇 하나 하려고 하면 얼마나 까다로운지 규칙 규정 전통 항상 먼저 것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길거리에 호두를 사러 갔더니 장사가 할아버지에게는 안 팔아요 하더랍니다. 할아버지한테 질렸다고 했습니다. 이 양반아, 왜 나한테는 안 판다고 하는가? 할아버지는 못 사요. 할아버지한테는 안 팔 테니까 이 호두를 사고 싶으면 꼭 손자를 보내세요. 이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하여 이놈아, 내가 사겠다는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한 됫박에 얼마냐고 야단을 치니까 호두장사가 그랬대요. 한 됫박에 오천원입니다.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면서 이 도둑놈아, 이거 옛날에 30원이었다! 그랬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어떤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항상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현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모든 것이 변화되어 있는 것에도 전통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들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것을 공부하면서 아시겠지만 이런 교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그냥 확 바꾸면 좋겠는데 확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목사가 쫓겨납니다. 이런 교회를 어떻게 체질을 바꾸어서 건강한 교회로 바꿀 수 있느냐 이것이 밴드 목회입니다.

 

 

2) 인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이건 항상 지도자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인데 교회에 목사가 오래 있으면 목사가 움직이고, 목사를 자주 바꾼 교회는 그 교회 장로가 핵심이 되어서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특별히 개척교회 하시는 분들이 오셨으니까 제가 교회를 개척하다 느낀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하다 보니까 개척할 때 형성했던 멤버들 가운데 지도자가 목사의 권위보다 더 큽니다. 그 사람들이 그 지도자가 더 좌지우지하며 움직입니다.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의 말은 안 먹힙니다. 왜? 그 사람의 권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교인수와 정비례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교인수가 많으면 목회자의 권위가 올라가고 교인수가 줄면 어쩔 수 없이 평신도 가운데 지도자라는 사람이 권위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목사님들이 계속 부딪히다 보면 교회는 깨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인정해 줄 것은 인정해 주고 목사님은 자꾸 열심히 해 가지고 새로운 세력의 파워를 키워 나가지 않으면 이 목회는 날마다 싸우다가 끝나 버리고 맙니다.

 

그 안에서는 성장하지 못해요. 목회에 성장하는 것을 보면 항상 40단위에 고전을 합니다. 우리 인간의 최고의 고난을 상징하는 수가 40이 아닙니까? 예수님도 세상에서 40일 금식기도하셨는데 저도 목회를 해보니까 30-40명 넘어가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왜 넘기가 힘이 드느냐 하면 평신도 지도자라 하는 사람들이 자꾸 주장하기 때문에 자꾸 좌지우지하고 끌고 가기 때문에 참 넘기가 어렵습니다.

 

30-40명 넘어가면 교회가 점점 크다가 70-80명 때가 되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개척했던 멤버 대 새로 들어온 멤버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신파 대 구파간 파벌이 생기면 갈등이 시작됩니다. 저 자신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처음 개척 멤버로 움직였습니다. 사람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자질이 있든 없든 간에 사람이 모자라니까 그러다가 한 사람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사람이 많이 들어옴으로 일이 분산됨으로 자기 중심으로 일하던 사람이 자기 기득권을 빼앗깁니다.

 

자기 기득권을 빼앗기면서 "나는 무어냐 나를 완전 소외시키네. 조금 있는 사람이 오니까 나를 완전히 따돌리네." 자기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목사를 들이박기 시작하여 그 때부터 자기파를 만들고 개척 멤버들로 새로 들어온 파가 싸우기 시작할 70-80명 그 때가 제일 말이 많습니다. 저는 그 때 어떻게 해결했냐 하면 숫자가 적어도 예배 부수를 늘여 버렸습니다. 예배부수를 1, 2부로 나누어 버렸습니다. 1부 사람은 1부에 오고 2부 사람은 2부에 오게 하므로 만날 시간이 없잖아요. 만날 시간이 없으니까 불평을 해도 자기끼리 불평을 하게 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정기 임원회나 제직회를 해야 하는 경우는 저녁에 합니다. 저녁에 할 때는 그날 밤에 설교를 아주 길게 합니다. 왜 교인들로 하여금 시간에 쫓기게 합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 말들이 많으니까. 시간에 쫓기게 하면서(그 때는 통행금지가 있었다) 길게 해서 직원회를 하니까 바쁘다고 이야기 안합디다. 교회가 어려움 없이 그대로 넘어갑니다.

 

그러다가 쭉 넘어가 문제가 110-120명 그 때는 교회가 95%가 갈라집니다. 갈라지든지 떨어져 나가든지 왜냐하면 인물에 의해 움직이던 교회이기 때문에 사람 중심으로 움직였던 교회들이 이런 교회들이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니까 문제 속에서, 말 속에서 계속 허덕이게 됩니다. 그리고서 200여명이 넘어서게 되면 그 때부터는 정체현상이 나타납니다.

 

정체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목사님이 이제는 됐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평신도들을 극대화시키는 운동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이 200여명을 제어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그 동안 교회를 어느 정도 키울 때는 모든 것이 목사님과 사모님의 손이 다 미쳤거든요. 200여명이 넘어가면 모든 것이 다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일만 쫓아다니기 바쁘다 보니까 교회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평신도 지도자를 붙잡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장사하는 사람들이고 바쁘다 보니까 평신도를 어떻게 극대화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를 많이 썼습니다. 꼭 보험사원들 같이 할당제를 주었습니다. 몇% 부흥시키면 월급을 얼마를 올라갑니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아침에 딱 나오면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자기들도 가방 들고 나가면서 꼭 보험사 직원들 같다고 합니다.

 

무슨 증거가 나타나느냐 하면 그전에는 새로 들어오는 새신자 새가족이 오면 서로 안 맡으려고 했습니다. 왜 이 사람을 성숙시켜 진정한 교인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자기도 힘들거든요. 안 나오면 목사님이 추궁하니까 안 맡습니다. 실적제로 하니까 월급을 더 받으려고 교회 오는 사람 서로 피 터지게 자기가 등록시키더라구요. 싸움이 터지도록 시켰습니다. 별수없이 그래서 전도사님도 앞에 돈전(錢)자가 붙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인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떻든 교회성장에 이익이 되는 거라면 안 해본 것 없습니다. 기를 쓰고 다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주거지역도 아니어서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정말 전도하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거지역이 없어서 지금도 화요일이 되면 우리 교인들이 다 나가서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막 끌어와야 교인이 늡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는데 전도가 될 일이 없습니다. 이런 교회가 지금도 오셨다면 사람에 의해서 우지중지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어야만 교회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물에 의해서 움직이는 여러분들의 교회 목회 토양을 한번 쭉 보면서 저하고 공감된 부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3) 재정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이 재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는 무엇을 하나 하려고 하면 꼭 교회에서 "얼마 드는데요"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항상 돈부터 계산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저는 돈 가지고 한 것 없습니다. 그 때는 돈이 얼마나 드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할 때 그냥 했어요.

 

자, 이것이 필요합니다. 돈이 얼마 듭니다. 할 수 있는 사람 하십시오. 그러면서 일을 추진했을 때 다 되었거든요. 지금에 와서는 교회가 커지고 예산이 옛날보다도 훨씬 많아졌는데도 앉으면 얼마인데 얼마인데 하고 돈만 계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필요할 때 공급해 줍니다. 우리는 너무 돈을 너무 앞세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 의지하고 한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있는 목회자님들은 믿음을 활용하지 못합니다. 할 수 있는 것만 찾아서 하죠. 최선을 다했다는 거죠. 그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없어도 할 수 있는 믿음이니까 이것이 꼭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갈 때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무엇을 할 때 비용이 얼마나 들까?"를 먼저 생각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재정문제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무엇을 하든지 재정문제 때문에 주저하게 됩니다. 이 교회는 물론 재정을 잘 사용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의 필수적인 것이라고 부인할 수 없으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입니다. 교회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런 설교를 한 것이 기억납니다. 부끄러운 흑자와 영광스런 적자를 한 적이 기억납니다. 교회가 얼마 남았다. 이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일한 것이 없으면 돈 남아 가지고 돌아다닙니다. 난 그 돈 많아 가지고 할 일 없다는 교회를 보면 한심해요. 돈이 남아 돌아가니까 교회 못된 짓만 하지요. 영광스러운 적자가 있어야 됩니다. 일을 많이 해서 적자를 보는 교회,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목사님들 아멘합시다. 이런 교회들을 보면 항상 재정을 앞세우는 교회를 보면 가만히 보세요. 돈이 얼마 드는 교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재정보다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없고 하나님의 사역도 없고 교회 성장도 없고 오직 우리 교회는 재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재정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교회가 여러분 우리 목사님들도 돈의 노예가 되어 가기 쉽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기도하고 어떤 일을 준비하게 되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설교는 그렇게 외치면서 우리가 그런 일을 못한다면 안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4)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여러분 이런 것이 많이 있지 않아요. 교회 학교, 성가대, 선교회, 학생회, 종종 교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프로그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교회행사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교회는 종종 사람을 올바르게 양육하는 것으로부터 프로그램에 합당한 직책을 맡기는 것으로 그 주된 목표가 교묘히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의 기능이 여기에 맞느냐 안 맞느냐 기능 중심으로 사람을 써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인품과 성품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기능으로 바꿔 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저질러 놓고 프로그램에 신통치 못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못한 탓으로 돌려버리고 그 프로그램이 정말 이것이 열매 맺기에 하나님의 뜻에 맞기에 합당하느냐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직 프로그램 하나 했다는 것에만 족하게 여깁니다.

 

얼마나 여러 목사님 프로그램이 많습니까? 저도 교회학교하고 일년 행사표를 써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이건 교육에 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놀자판입니다. 놀자판. 무엇을 위해 있는지 몰라요. 이 교회학교 교육이라는 게 무슨 목표를 향하고 어떤 방향으로 무슨 목표를 향하고 나가고 있는지 전혀 방향성이 없어요. 아주 타이틀은 크게 적어 놨는데 밑에는 맨날 달란트 잔치 시장.

 

그래서 어떤 아이들이 그림을 그렸대요. 예수님을 그려보자 예수님을 그리기를 했더니 한 아이가 아주 예수님을 멋있게 그려 놨더랍니다. 그 그림이 무엇이냐 하면 돼지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왜 예수님을 돼지를 그렸느냐고 했더니 아휴 교회 올 때마다 먹을 것을 주는데 예수님이 얼마나 먹을 것을 좋아하면 교회에서 맨날 먹는 것만 주느냐고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돼지인 것 같아서 그렸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렇게 그렸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사 교회에 가면 재미있는 것, 교회에 가면 무얼 먹는 것, 교회에 가면 무엇 주는 것,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5) 건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건물의 형태를 만들지만 후에는 건물이 우리의 형태를 만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너무 건물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하나님의 일은 아무것도 못하네요 이런 교회는 너무 멋진 교회 건물을 갖고 싶은 욕심에 자신들의 감당할 이상의 돈을 씁니다. 당연히 건물을 사고 유지하는 비용이 교회의 예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역에 필요한 재정이 은행빚을 갚는데 다 들어갑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물론 협소한 건물의 교회성장의 장해의 요소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물의 노예가 되어 전도하는 일이 뒤로 물러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대형화, 대형화하다 보니까 너무 건물 짓는 것에서 과다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밴드 목회를 하다 보면 그렇게 예배당이 많이 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속실이 많으면 더 좋겠죠. 지금 우리 한국의 교회들이 IMF가 터지는 바람에 갑자기 분수에 넘치게 지었던 교회들이 지금 뻥뻥 넘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전화가 오면서 교회를 바꾸어 줄 사람이 없나? 돈을 가지고 들어올 사람이 없냐며 이런 교회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물론 교회가 없어서 허는 것은 중요하지만 헐고 때려부수고 또 크게 짓고 날마다 그 일만 하기 바쁩니다. 교회만 크게 지었다 하면 그 교회가 성장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그러한 식으로 가서는 안됩니다.

 

6)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행사에 움직이는 교회의 연간 계획표를 보면 교회의 목적은 무엇이냐 ① 교인들을 바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 교회를 바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인들을 진짜 바쁘게 했습니다. 제가 부흥회를 나가지 않고 교회만 붙어 있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만들어 놓으니까 교인들이 와서 그래요. '제발 부흥회에 나가라' '작정기도, 저녁 특별 기도, 전도대회다, 기도원에 간다' 하니까 교인들이 그래요. 또 부흥회 안 나가시는구먼, 무언가 또 하시는구먼. 쉴 틈을 안 줘요. 쉴 틈을 안 줘. 이런 교회가 굉장히 바쁘기만 하죠.

 

이런 교회는 출석률이 충성됨과 성숙함의 유일한 기준이 되죠. 이 사람이 모든 일에 앞장서려고 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 우리 교회에서 출석률만 좋으면 아 그 사람 예수 잘 믿는 사람. 교회 와서 열심히 앞에 와서 앉아서 찬송하면 예수 잘 믿는 사람,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제일 골치 아프더라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7) 구도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기를 끌어서 그 사람들에 맞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재미있게 해서 교회로 끌어들일까 하는 그러한 구도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이 잘못되면 교회가 교회의 기능을 상실할 하나의 세상적인 오락실과 같은 곳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 교회에 열린 예배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열린 예배가 많이 들어와서 온누리 교회에서도 합니다. 새들백 교회에 갔다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새들백 교회라든가 윌로우 크로틱 교회, 스카이 웨슬리 코멕틱 교회, 페이스 코멕틱 교회 등 여러 교회들이 미국에서 대단하게 운동을 일으키고 있거든요.

 

그런 교회들을 가보면 열린 예배 쪽이 대단히 발전되어 있습니다. 그런 교회에 목사님들이 가서 프로그램 쪽으로만 보고 오거든요.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 안에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진정한 훈련된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헌신된 그룹이 따라 있습니다.

 

주일날에 가보면 주일날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이 함께 어울려서 볼거리가 있는 예배를 드립니다. 진짜 교인들이 모이는 것은 언제 모이는가 하면 '아 이 사람들은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따로 있습니다. 주일날이 아닌 수요일 저녁에 따로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사역자들의 모임이 따로 있습니다. 사역자는 토요일에 모입니다. 토요일에 모여서 주일날 예배를 위해서 다 기도하고 헌신의 훈련을 받고 리허설까지 합니다. 예배를 위한 리허설까지 합니다.

 

그런 헌신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못보고 알맹이에 있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철저하게 만들어 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서 이 사람들이 교회 요소, 요소에 가서 활기를 불어넣어서 진정한 교회를 만들어 낼 것이냐는 것을 목사님들이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시간 걸리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당장 가서 후려 먹는 것, 소뼉다귀를 먹듯이 딱 가서 한번에 싹 먹어 치우면 없애 버리는, 이런 스타일의 목회를 하다 보니까 교인들도 전부다 일회용입니다. 일회용. 하도 요즘은 일회용이 되다 보니까 교회가 꾸준히 부흥되는 교회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교회가 일어섭니다. 교인이 막 들어오면 여기서 처음에 와서 은혜받은 사람들이 열심히 해보려고 열심 있는 그룹들이 막 생겨납니다. 이 그룹들이 열심히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헌신도와 열기가 떨어집니다. 떨어지면서 그 사람들은 무엇만 살아나느냐 입만 살아 있습니다. 입만, 자기들은 헌신은 안해요 그러나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면 열심 있는 사람들이 또 생겨나니까 이 사람들을 가지고 또 일을 합니다. 이 사람들이 처져 있어도 이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움직여지니까 계속적으로 교회는 활기 있게 움직여지는 것 같고 교회가 부흥되어집니다. 정체된 사람도 있지만 계속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문제는 들어오지 않는 교회가 문제입니다.

 

처음에 들어와 열심히 있다가 이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가다가 지쳐 버리니까 떨어집니다. 떨어지게 되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야 열심 있게 되는데 새로운 사람이 안 들어오니까 교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교회가 정체되어 버립니다. 날마다 문제 속에 살게 됩니다. 그 문제 속에 계속,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 이 말이 저 말이고 저 말이 이 말이니 날마다 문제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까 날마다 그러한 목회를 하며 사람 비유를 맞추어 가며 사람들의 눈치를 봐 가면서 목회를 하려니까 허덕이게 됩니다.

 

이러한 목회를 하고서야 우리 목사님들이 어떻게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나, 이 교회라 하는 곳은 절대 사람에 현대 문화에 맞추어져서는 안됩니다. 항상 우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교회를 만들어 나가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여기 7가지의 새들백 교회를 쓴 월랜이라는 사람의 주장을 저는 상당히 공감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 썼습니다.

 

 

2. 새들백 교회는?

 

새들백 교회는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고 선언을 합니다.

 

1)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라 하였다.

 

'우리 교회는 목적이 움직이는 교회이다' 그렇게 새들백 교회의 창시자인 월랜이라는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2) 새들백 교회는 교회의 목적을 무엇이라 정의하였나?

 

(1) 내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 - 예배

 

(2) 내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 사역

 

(3) 가서 제자를 삼으라 - 전도

 

(4) 세례를 주라 - 교제

 

(5)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제자훈련

 

 

이 다섯 가지가 교회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3) 새들백 교회의 담임목사인 릭 워렌은 기존의 교회들은,

 

이책에서는 다섯 가지에 의해 교회가 이끌리지 않고 담임목사가 가진 은사나 가장 강조하는 목적에 의해 평행되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목사가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흐름이 그리고 흘러갑니다. 그분이 한 것을 보면 '영혼 구원의 교회', 이 교회는 목사님이 설교할 때마다 무슨 이야기가 떠나지 않느냐 하면 전도, 전도입니다.

 

① 영혼 구원형 교회(전도 이외의 것은 무엇이든지 부차적으로 여김)

 

제가 아는 목사님도 지난번에 농촌교회 세미나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하고 같이 자는데 자다 말고 얼마나 소리를 지르든지 제가 놀라서 몇 번이나 깨는지 몰라요. 자다 말고 갑자기 '교회 성장, 세계 선교,' 깜짝 놀라 '목사님 무엇하는 거요' 하니까 코를 골고 있어요 잠꼬대를 하고 있어, 그 교회에 전화를 딱 걸면 '교회성장, 세계선교'가 인사입니다.

 

아주 배어 있습니다. 자다가 또 '교회성장, 세계선교'하는 바람에 저는 깊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난 그분을 대단하게 보았습니다. 진짜 얼마나 열정이 대단하면 잠꼬대를 다 하겠어요 우리 목사님들 괜히 잠자다가 '미스김' 하면 곤란하잖아요 그런데 이 양반은 '교회성장, 세계선교'.. 대단한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주무시다가 잠꼬대를 잘하셔야 은혜스럽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코골면서 숨을 내 쉴 때마다 '주여 아버지' '주여', 참 은혜스럽습니다. 제가 너무 은혜스러워서 우리집에 와서 한번 해보았어요. '주여, 주여' 그렇게 해보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아휴 시끄러워요. 잠좀 자게' '내가 잠들었을 때 하는 것 한번 봐요'하면서 한참을 하고 그 다음날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자면서 '주여'하든가? '코만 골아요' 그러니까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주여 아버지, 주여 아버지' 하다 보면 꿈속에서도 합디다. 습관이란 것이 참 무섭습니다. 이런 것은 코만 드렁드렁 골지 말고 숨을 내쉴 때 '주여 아버지, 주여 아버지'를 하세요. 얼마나 은혜스럽습니까?

 

이 교회 목사님도 앉기만 하면 날마다 그냥 목사의 우선 역할은 교회는 '전도', 목표도 '전도' 여러분의 사명은 '전도의 사명'입니다. 항상 전도를 위해 교회 프로그램도 짜고 총동원 주일도 하고 선물도 하고 그러죠. 제가 아는 목사님은 총동원을 통해 교인들을 동원하려고 무엇을 했느냐 하면 '상품, 상품'을 냈는데 1등이 '티코'야 티코.. 그랬더니 1만 명 모이기를 하였는데 2만 명이 왔습니다.

 

티코를 하니까 그 티코를 받은 사람이 교회에 나오느냐 하니까 부담스럽다고 받아만 가고 교회는 안 나온답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안됩니다. 티코로 될 것 같으면 우리 예수님은 보리떡으로 다 되게요? 티코가 뭐냐면 '틱하고 치면 고하고 간다'고 해서 티코라고 합니다. 한번 여기서 보면 교회가 구원을 강조하는 교회는 전도만 외치게 되고,

 

② 하나님 체험(영적 체험)형 교회(많은 교회가 이런 유형)

 

은사만 뜨겁게 뜨겁게 강조하면서 예배에 모이라 이런 교회는 대개 필링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어떤 경험이나 느낌을 가지고 목사님들이 감정을 잘 잡죠. 이런 교회를 가보면 은사집회를 하면서 목사님이 두 손을 들로 눈물을 펑펑 흘리게 하고 그 다음에 열정적으로 기도해서 흥분을 시키죠. 그것도 물론 필요하죠. 성령님은 지정의가 있으니까 정적인 것도 있으니까 그것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일방적으로 그런 것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골고루 섞여야 되는데 일방적으로 그것만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 그런 분이 있어요. 제가 만나기만 하면 제발 그러지 말고 너희 교인들도 성경공부도 시키고 너희 교인들도 교육도 시키라고 했더니 '아 그런 소리하지도 말라, 우리 교회는 방언만 하면 된다 방언만'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니까 그것 뭐..

 

③ 가족 재회형 교회

 

이것은 200명 미만의 교회인데 이런 교회는 항상 '교회는 교제가 중요하다' 그래서 많이 모이려고 하지 말라 많이 모이면 안 좋습니다. 그래서 가족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을 형성해 가지고 아마 이런 경우를 많이 봤어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교회 전도합시다'하면 교회 장로님들이 '목사님 무엇 하려고 전도합니까? 이렇게 편안하고 재미있는데' 하면서 자기들끼리 사치기 사뽀뽀 사치기 사뽀뽀 도리도리 깍꿍하는 게 가족 재원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전통을 이어받아 아버지가 나오고 아들이 나오고 쭉 이어받아서 나옵니다.

 

④ 교실형 교회(교회 이름에 종종 '성경'이란 말을 많이 넣음)

 

이런 교회는 항상 성경책, 노트, 볼펜을 가지고 가는 교회입니다. 항상 뭔가를 가르치면서 공부해야 됩니다. 공부해야 됩니다. 완전히 학교를 만드는 지식적인 교회, 요즘 옥한흠 목사님도 솔직히 '제자교육'을 시켜서 나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삶에 변화가 안되고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밴드 목회는 지식 전달의 목회가 아닙니다. 절대로 여러분 다시 말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으로 알고 오셨다면 차라리 강의를 안 듣는 것이 낫습니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아니고 전반적인 목회틀을 잡아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나가는 나아가는 목회입니다.

 

⑤ 사회 참여형 교회

 

교회 사회운동이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사회참여, 사회정의를 외치고 그 전에 노동자를 위해서 도시산업선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교회가 사회 참여하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목사님들이 어떤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교회가 이렇게 이렇게 바뀌어지더라는 것입니다.

 

⑥ 새들백 교회

 

새들백 교회는 한곳에 편중되어 있지 않고 다섯 가지 목적을 균형 있게 골고루 목적에 이끌어 가는 교회입니다.

 

⑦ 목적 지향적인 새들백 교회에 대한 재고

 

저는 이것에 비해서 목적이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교회 기능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새들백 교회를 약간 기능적인 것으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새들백 교회에서 말한 다섯 가지 목적은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기능입니다.

 

 

3. 밴드 목회 교회의 목적

 

그럼 교회의 목적이 무엇이냐 밴드 목회 교회의 목적인데 저는 두 가지로 정립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6:38-40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여기서 두 가지로 나누겠습니다.

 

① 나를 보내신 자의 뜻은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뜻은 무엇이냐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교인 하나가 내게 왔을 때 영원을 똑바로 양육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도 그리스도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주님의 백성을 양육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②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뭐죠? 이것이 구원, 선교적인 정의, 한 영혼을 살려내는 것, 구원. 선교적인 사명이 교회입니다.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밴드 교회는 지향해 갑니다. 하나는 철저한 양육, 어디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양육이 됩니다. 그래서 밴드 목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화'입니다. '성화' 철저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것이 아니고 교회 와서 열심이 있으면 예배당 열심히 다니고 그 사람 열심히 다니니 집사해, 권사해, 장로해... 그 열심도 어느 정도죠. 지나고 나면 흐지부지하고, 그래서 그것이 아니고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성숙된 삶을 주어지는 양육, 그것이 아주 강하게 부각되는 것이 밴드 목회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열심히 해보았습니다. '교회 체제를 바꾸어라'는 책 72페이지에 수직적 신앙이 나오죠. 수직적 신앙은 우리 교인들 가운데 몇 분을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① 예배란 예배에 다 참석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정말 지극 정성인 것 같습니다. 십일조, 감사도 잊지 않습니다. 우리 교인은 이 정도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감사헌금이 없어서 파출부로 나가는 사람이 지금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헌금이 없으면 나가서 파출부를 해서 드립니다. 이분은 일년 365일 한번도 새벽마다 감사를 안 해본 적이 없고 예배시간에 올 때마다 감사를 드립니다. 예를 들면 수요일에는 새벽에 감사를 드리고 저녁에도 드립니다. 한번도 빠짐이 없습니다. 이렇게 전부 지극 정성입니다.

 

② 기도에 열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무어라도 열심 있고 칭찬받는 이런 사람도 있고 B라는 분의 기도는 교회에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어찌나 기도를 열심인지 그 사람 기도하면 옆에 가지도 못해 얼마나 진동하고 펄펄 뛰고 난리 버거지를 하는지 온 세상을 누벼, 누벼.....

 

③ 교회일에 열성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다음 C씨는 교회는 열심히 다녀요.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 교회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열심히 달려와요. 그런데 이 사람들 한마디로 참 좋은데 공동체 사람만 붙여 놓으면 꼭 그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하는데 융화가 안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참 잘 맞는데 이웃과의 관계는 0점. 이것이 진짜 예수 잘 믿는 거냐 하면 아니죠.

 

수직적인 신앙을 가지고는 지금까지는 목사님들이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수직적인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를 같이 요구합니다.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러지도 못하면서 목사님들도 교인들이 조금 열심 있는 것 같다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 그러다 보니까 목사님들이 얼마나 힘들어요. 내가 수평적인 것을 다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어요. 몇십 년을 교인들을 데리고 있어도 젖먹이요, 젖먹이 20살 먹은 자식이 와서 엄마 젖줘요 하면 얼마나 징그럽겠어요. 하기야 편하기야 하지요. 자기가 열고 자기가 빨아먹으니 자기가 닫아놓고 가니까 편하기야 하겠죠. 교인들이 그래요 고아원 원장이야 목사님들이 얼마나 젖줘, 젖줘하고 있고 이런 식으로 교인들을 길러서는 안됩니다.

 

④ 고슴도치 교인이 있습니다.

 

고슴도치는 자기 새끼는 품고 있는데 자꾸 찌르니까 도망갑니다. 다른 것은 못 와요. 교인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자기 몇 명은 모이는데 거긴 누구도 못 들어가요 하도 찌르니까. 그것을 나는 고슴도치 교인이라 합니다. 여러분의 교회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⑤ 백조 교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진짜 천사야, 호수에 떠 있는 백조,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답습니까 야! 멋있다 그러잖아요. 목사도, 교인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백조와 같은 교인이 있어요. 백조와 같이 평화롭고 목사님께 잘하고, 참 잘합니다. 그런데 이 백조 밑을 보면 발은 끊임없이 발버둥,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교인들 앞에서는 그렇게 천사 같고 잘하는데 뒤에서는 목사욕을 하고 교인들을 흉보고 발가지고 허우적대는 사람이 백조교인. 목사님 들을까봐 수세식 화장실에 가서 물을 쏴 내려놓고 '나쁜 놈'한다고 해요. 그런데 교인들은 그 사람을 보면서 참 예수 잘 믿는다고 그래요.

 

⑥ 엄마게 아기게 교인이 있습니다.

 

이게 여러분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엄마게가 아기게가 삐뚤게 걸으니까 아기게에게 '야 이놈아 똑바로 걸어가 너 병신이냐 똑바로 걸어가 애가 암만 걸어도 삐뚤게 걷네', 그러니까 아기게가 '엄마 한번 걸어봐 똑바로 걷는 게 뭐야' 엄마게도 삐뚤게 걸으면서 이렇게 걷는 게 똑바로 걷는 거야.

 

우리 속회예배를 드리면서 지도자라는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그 교인들을 가르칠 때 제대로 그 사람들이 생명이 붙어서 살아날 수 있는 신앙생활을 가르친다고 믿습니까? 목사님들, 배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가르치려고 앉아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보고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 했느냐 하면 "일만 스승은 있으되 아비가 많지 않다" 교회 안에 저희 교회는 밴드 목회를 하면 이렇게 된다 교회를 이원화 시켜 버렸는데 하나의 지금까지 틀이 있는 속회, 구역을 가르침의 장소가 아니라 보살핌의 장소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철저하게 보살피는, 사랑을 나누는 여기서는 절대 가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기서는 못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만해, 가르치는 일은 어디에서 하느냐 교회에 학교를 세우고 목사님이나 전문가가 성경을 똑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집에서 잘 보살피지만 가르치는 것은 학교에 보내서 가르쳐야 해, 그렇게 이원화된 구조를 가르치면서 교회를 해 나가니까 아무리 못 배우고 실력 없는 엄마라도 자식은 잘 기릅니다.

 

교회가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그 사람은 사랑만 있으면 교인을 얼마든지 잘 보살핍니다. 그런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교회를 바꾸어 나가는 게 '밴드 목회'라는 것만 염두에 두시고 이번 목회 세미나에 참여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교인들이 보면 변화되지 않는 종교인들이 너무 많고 그래서 제가 목회를 하고 교인들이 1,500명 출석하고 있을 때 교인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설교하면서 '나는 목회를 실패한 목사입니다' 교회가 술렁술렁 되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교인들은 누구보다 열심 있고 정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목사님이 목회에 실패했고 목회를 잘못했다고 하니까 어떤 교인들이 있느냐 하면 대단한 교인들이죠. '목사님 만약에 지금까지 목사님이 목회에 실패했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것이 무어냐 목사님이 목회에 실패했다면 우리가 그 동안 하나님에 헌신하고 최선을 다해서 한 것이 무어냐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이것이 잘못되었다면 난 억울해서 못살겠습니다.' 막무가내여 막무가내 제가 우리 교인들에게 그랬어요.

 

'3년만 기회를 달라' 왜 그러냐 하면 이런 지침서도 없고 어떤 뼈대로 나갈 책들이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 교회를 이끌고 나갈 만한 책들이 있어야지 어디를 쫓아가도 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리 가면 교인들이 흔들리고 저리 가면 흔들리니 우왕좌왕 하다 보니까 어떻게 하느냐, 그래도 그냥 우리 교인들이 좋은 점은 뭐래도 모여 교인들이 3년만 나에게 기회를 달라 만약에 3년 동안 제 목회를 해서 교회가 달라지지 않고 여러분들이 보기에 아 이것이 교회다 라고 인식이 들지 않으면 제가 깨끗이 신당교회를 사임하겠습니다.

 

서류를 해놓고 목회를 할 때 3년만 믿어 달라. 여러분들 싫어도 3년, 좋아도 3년입니다. 3년만 견디어 달라. 교인들이 따라옵니다. 그러면서 3년은 제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3년이 가기 전에 교회는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교인들이 대단한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게 교회구나' 어제 저녁에도 밤 9시가 넘게 예배가 끝났는데 그 남자들이 모여 어디를 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권사님, 어디를 가시는 거예요. 직장 가실 분이 일찍 가서 자야지' '아닙니다. 목사님, 심방을 가야 할 때가 있어서' 그리고 교인 몇 사람이 남아서 자기 교인이 아프다고 하니까 심방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친구가 지금 아파서(암환자)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친구의 친구이니까 우리의 친구도 된다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친구를 만나서 격려하고 위로해서 교회로 끌어들였습니다. 지금 암환자 부부가 우리 교회에 나와요.

 

전혀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로 가니까 저는 초대교회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는데 헌금을 드리다가도 재산의 절반을 드리다가 급살맞아 죽었는데 이에 소문이 났습니다. 엄청난 소문이 났습니다. 교회 앞마당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동네에 소문이 나면 교회에 오겠습니까? 누가 오겠어요, 어구 재산 절반 드리고 다 안 드리다가 급살맞아 죽었대. 나 안가, 십일조도 못 바치는데 난 가면 진짜 죽어 난 안 갈거야. 그런데 이 교회는 미어 터지게 모였단 말입니다.

 

초대교회가 왜 성도들의 삶을 보고 삶을 보고 그러니 교인들이 지금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 속만 터지고 안타까워하면서 가슴은 터지면서 왜 우리에 대해서 자책을 하지 못하고 있느냐 말이죠. 어떻게 저 사람들을 변화시켜 주어야 되고 저분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로 바꾸어 주어야 되겠냐 그것을 고민을 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이 변화될 때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 그 사람 못 쓸 사람이야 버리자' 복음이 제대로 나를 통해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건데.....

 

"그러므로 교회의 목적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를 전해 구원시키고 눈먼 자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목적을 이르기에 예배, 봉사, 교육, 친교의 필요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목적을 이르기 위한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냐, 현대 교인이 우리가 볼 때 정말 저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까? 저는 우리들이 하게 됩니까? 저는 요즘 그런 말을 즐겨 쓰는데요.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기독교 종교인이다' 그 말을 즐겨 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사자굴에 들어가면서도 목숨을 걸고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를 지켰는데 요즘 교인들에게서 어떤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왜 현대 교회들은 문제 속에서만 뭉쳐 살고 있고 교인들의 헌신과 생명을 보고 살려고 하는 것이 없느냐, 이분들은 한번도 예수를 만난 경험이 없습니다.

 

알고 있는 거죠. 교회를 다니다 보니까 목사님들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 네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렀다.' 아주 지식적으로 알려 주다 보니까 이분들이 ' 나 예수 믿어요, 예수 믿어요' '그래 당신 오늘 구원받아 천국갈 수 있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을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

 

그 사람이 무슨 예수 믿는 사람이야,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신앙은 야고보서 2:19에 보면 귀신들의 믿음과 똑 같은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드느니라" 믿죠, 그러나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거죠,

 

저의 집사람과 교제할 때 잘 아는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같이 살아보니까 만났을 때와 다른 것을 느끼겠더라 내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 속에서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안다, 알았습니다. 그 아는 것을 우리가 체험적임을 이야기 하잖아요.

 

그 아는 것을 '야다'라고 이야기하죠 구약에서 '야다'라는 것은 '성적 결합'이라고 하죠. 성적인 결합을 하다 그런 뜻입니다. 체험한다는 거죠. 내가 주님을 만나서 경험을 해보고 그랬을 때 예수님을 만나서 깊은 영적 교제를 해보고 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어졌을 때 거기서 나오는 것이 뭐죠 "예수님의 인격"이 나오는 거지 그때 주님을 아는 것이거든,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인자가 이와 같이 행함같이 너희도 행하라'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삶을 너도 그래도 살아라 이것이 인격적 만남입니다.

 

지금 교인들은 목사님들이 하도 주입식 교육을 시켜 가지고 '예수 믿어 구원' '아멘 구원받았습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 갑니까, 어떻게 갑니까' '믿음으로 갑니다' 이 믿는다는 말은 '연결됩니다. 밀착된다'는 뜻이거든요 꼭 붙잡습니다.

 

주님 앞에 정말 내가 밀착되어 깊은 관계가 맺어지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인격이 안 나타나 예수님의 사랑이 안 나타나는데 그런 교인들을 데리고 교회의 장로, 권사다 교회의 일을 해 나가니까 엄청나게 힘들고 피곤하죠. 이런 교인들을 바꾸어야 되는 게 밴드 목회입니다. 힘들죠, 힘들지만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아까 제가 잠깐 귀뜸을 해준 접시 돌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왼쪽 그림은 제 자신이 헐떡거리며 목회를 해 온 것이고 오른쪽은 밴드 목회를 해 오면서 평신도가 교회에 사역자들이 되어서 움직여 주었을 때 접시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내외는 이것을 하면서 '춤추는 목회'를 합니다. 여유가 있고 그리고 너무 행복한 목회가 된다는 것을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밑에서 세 번째 보면 "서커스에 접시 돌리는 사람처럼 수십 개의 접시를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정신없이 동분서주했고 그러다가 보니 목회자는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밴드 목회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크로즈 밴드'멤버들이 담임목사의 적극적인 동역자들이 되어 주었습니다. 따라서 밴드 목회는 '평신도 목회의 극대화'입니다.

 

평신도 목회의 극대화를 이루는 것이 이 밴드 목회입니다. 이 밴드 목회는 어떤 자세로 하느냐 하면 거기에 보면 두 가지의 자세가 나와 있습니다. 크로즈 밴드 멤버들이 오픈 밴드와 크로즈 밴드에 사역에 있어서 두 가지 자세가 반드시 요구되는데 하나는 '유모' 같은 자세이고 하나는 '아비'같은 자세입니다.

 

이것이 바울 목회 자세인데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같이 하였으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인도하고 격려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이야기하면서 유모, 젖먹이 엄마가 젖먹이를 보살피듯이 신앙이 성숙되지 못하고 이제 출생한 자는 그렇게 젖을 먹였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아비가 어느 정도 크면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훈계하듯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어린 아기입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먹고 토했습니다. 또 아이가 오줌을 싸고 똥을 쌌다. 이런 아이를 갖고 아버지가 칠판에 써서 오줌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야 되고 똥 싸려면 화장실에 가서 누어야 되는 거야. 이렇게 칠판에 써가지면서 가르친다면 그 아이가 정상적으로 배울까요?

 

지금까지의 우리의 목회 방법을 보면 이제 교회에 출생도 하지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출생하지도 않는 자, 다시 말하면 생명도 없는 자, 잉태도 안 되었는데 나는 자식처럼 그것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살아라 하니 나오지도 않은 자식이 어떻게 잘할 수 있겠습니까.

 

제일 먼저 이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어서 생명을 갖게 하고 그 생명을 가진 자를 이제 태어나면 어떻게 해야 돼요, 젖먹이를 보살피듯이 토하기도 하고 뭐하기도 하는 사랑으로 보살피는 유모 같은 위치.....

 

제가 마지막날이 되면 이제 토양 작업에 제일 중요한 "새신자 정착 100%"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하겠는데 그 사람을 지금까지 새신자 오면 어떻게 합니까, 와서 배우라는 거야 배우는 거죠, 예수님은 누구신가 누가 누구신가 이렇게 하니까 아예 질려서 도망가 버려요 그 아이를 보살피지 않고 가르치면 어떻게 되는 거 아시죠? 죽어요 죽어. 그 아이가 죽지 살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목욕도 시켜주고 옷도 갈아 입혀 주고 똥싸면 갈아주고 토하면 닦아주어야 되고 먹으면 트림하도록 보살펴 주어야 되고 이러한 모습으로 되어져야 됩니다. 바울은 그러한 모습, 하나의 가정과 같은 모습으로 바꾸어지면서...

 

여기서 오픈 밴드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 제가 이야기를 하겠는데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함께 어울리는 자리, 열린 영역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속회, 혹은 구역입니다. 거기에 가면 믿는 자도 있고 믿음 없는 자도 있고 처음 온 자도 있고 또 오래 믿은 자가 있는 여러 사람이 함께 섞여 있는 여러 가지가 함께 있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자리가 오픈이라고 해서 열려진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 출산기 어린아이의 사이에 있는 그것이 열린 영역이고 크로즈 영역이란 닫힌 영역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와서 예수를 철저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따로 만들어 주는 거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끼리 따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믿던 못 믿던 함께 어울리게 만들어 주었지만 이 밴드 목회는 그것이 아니고 둘로 나누어집니다.

 

잘 믿는 자들이 따로 모여 있고 그 다음에 잘 믿는 자와 헌신자와 함께 있습니다. 왜 생명 있는 자가 생명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부부간에 만나서 난자와 정자가 붙어서 생명이 연결되는 것 아닙니까,

 

새로운 사람은 아직 생명이 없습니다. 이미 생명을 얻은 이가 생명을 집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져야만 온전한 교회가 되어집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질 못했어, 이미 생명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 뱃속에 넣어서 보살피고 입덧도 해 가면서 애쓰잖아요 그러다 열 달이 되어 개봉하잖아요. 아이가 나오면 그때부터 얼마나 수고하면서 그 자식을 길러요. 그러면서 교인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한 교회의 동양을 그런 체질을 바꾸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그런 것을 바꾸어 주는 것, 성서적 배경이나 이것을 공부하다 보면 성경을 상당히 꿰뚫게 될 것이고 아아 설교꺼리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크로즈 밴드는 영적으로 닫힌 영역은 영적으로 장성한 자들의 것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열린 영역은 젖먹이 단계이고, 닫힌 영역은 장성한 단계입니다. 우리는 밴드라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놓았다는 것을 여기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면 나중에 설명해야 될 것 같고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어린 아기는 하나님의 교훈적인 말씀을 못 먹죠 젖을 먹어야죠 그냥 보살피는 것 외에 없죠, 지금까지는 어떻게 했어요 목사님들이 다했죠. 새로운 교인이 오면 불면 날아갈 새라 그러니 그 새가족이 정착하겠어요 새신자들이 교회 나온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는 오지만 어머니같이 보살펴 주다가 보살펴 주지 못하므로 교회 정착하겠느냐 안되지, 안돌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밴드 목회를 하면서 새가족 정착율이 90%가 넘습니다. 그것도 정착이 안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이런 사람들도 들어오더라 도둑놈, 이용하려고 오는 사람들, 그런데 주소를 적어 놓고 전화번호를 적어 놓아도 엉뚱한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 놓고 나타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이 불과 10%정도밖에 안됩니다.

 

일단 등록이 되는 사람은 저희 교회는 전혀 안 떠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까지 '캐어'가 된다는 거죠. 보살핌이 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장성하면 어느 정도 되면 어디로 보내느냐 하면 아까 말한 대로 학교가 있잖아요 성경공부, 딱 1단계만 공부하면 완전히 녹아져요 완전히 교회가 이렇게 건강한 교회로 바꾸어져야 됩니다.

 

교회 종류가 있습니다.

 

'트뢸취(Ernst Troeltsch)'가 한 이야기인데 '교회형 교회와 소종파 교회'가 있는데 교회형과 소종파가 무엇이냐 하면 '교회형 교회는 지금과 같은 교회들입니다. 누구든지 다 와서 말씀도 자연스럽게 증거하고 편안하게 해서 전도적인 입장에서 선교적 열린 영역'입니다. 누구든지 다 와서 예배드려라.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이 교회가 부흥된 교회이고 그래서 성장한 교회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간 대부분의 교회를 '처치타임'이라고 트뢸취는 말했고 '소종파는 섹트타임'이라고 요즘 말하는 셀그룹에서 말하는 목회인데 셀이라는 그룹에서 목회하는 것은 어떤 형식이냐 하면 진짜 회개하고 돌아와서 예수를 믿겠다고 탁 들어와서 변화된 사람들 이 사람들만 교인입니다. 나머지는 우리 가족이 아닙니다. 그래서 딱 닫아 놓습니다.

 

닫힌 영역만 우리 교인입니다. 이렇게 인정합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많은 무리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병도 고쳐 주었습니다. 그 무리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면서도 예수님은 누구를 끝까지 12제자만 철저하게 삶으로 훈련 시켰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서도 예수님은 탄식한 것이 있습니다. "추수할 것이 많되 일꾼이 적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와도 이 사람들을 보살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수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많이 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전하고 기적 행하고 표적 행할 때 수많은 사람이 몰려 왔으면 예수님이 '할렐루야 부흥됐다'그랬으면 될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이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끌어들일 자가 많이 있지만 뭐가 없다는 것인가' 그들을 '캐어'할 만한 일꾼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만 이 많은 사람을 진정으로 '캐어'할 만한 일꾼이 교회 안에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12제자 가운데 11제자만 마지막 순간에 남고 떠나가셨지만 그때에 예수님이 떠나가신 뒤 다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11제자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를 만들어 내놓은 것입니다. 교회가 지금 우리 목사님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많이많이 와라, 눈도 처음 눈사람을 만들 때 속에 딱딱합니다. 이것을 손이 시렵다고 대강대강 해 가지고 굴리면 조금 커서 굴리면 딱하고 깨어집니다.

 

이것을 딱딱하게 아주 얼음처럼 해서 아주 손이 시렵든지 그냥 눌러 놓은 다음에 아무리 굴려도 아무리 커도 이 눈사람은 안 깨어집니다. 모든 것이 원자도 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핵이라는 것은 그 주변에 있는 원자가 움직입니다. 핵이라는 자체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 주변에 있는 원자가 움직입니다. 이 핵은 항상 힘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도 핵이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 핵멤버, 코아 멤버가 있어야 합니다. 이 핵멤버가 교회에 없어요 지금은, 핵멤버가 없으니까 교회가 분실됩니다. 자꾸 말이 많고, 깨어지고 합니다. 교회가 어디 힘을 줄 때가 없으니까

 

우리 형님이 전자공학 박사인데 대학교수입니다. 우리 형님에게 제가 밴드 목회를 이야기 하니까 밴드는 전자에서도 있습니다. 핵을 중심으로 원자가 띠를 두르고 있는데 이 띠를 가르켜 '밴드'라 합니다. 이 핵에다가 한번 충격을 탁주면 전자가 바깥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튀어 나갈 때 그것을 합쳐서 구, 합쳐 주는 것은 '엘 피형 트랜지스터' '피앤피 트랜지스터'형리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형님이 저에게 정의를 내려 주었습니다.

 

전자의 형식은 움직이지 않는다 절대로, 이 핵이라는 것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기에다 힘을 탁 주어 버리면 이것들이 탁하면서 힘을 주면서 여기서 전자들이 +, -로 딱 붙어 버립니다. 저는 그것을 어디다 접목을 했느냐 하면 새신자와 기존 교인들에게 접목을 했습니다.

 

이 핵에다 충격을 주니까 진짜 새신자와 기존 교인이 탁 붙는데 죽어도 안 떨어져요 죽어도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딱 새신자를 붙잡아서 보살피는데 이 새신자가 와서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한 형제가 형님으로 모시겠대요. 그 책이 모레쯤 보여 드릴께요.

 

이러한 교회란 따로따로 구별이 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교회형 교회가 지금은 대부분이고 그 다음에 소종파 교회가 있는데 우리 나라에 소종파 교회로 가장 강하게 하고 있는 교회가 목동에 있는 '목산 침례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완전 초대교회입니다. 네꺼 내꺼 없고 유무상통해요. 한번 그 교회에 갔다 왔는데 진짜 철저해요. 이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 우리 가족입니다.

 

그런 식으로 인정해서 하나 '쌔팅'해 버려서 이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이단성이 좀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왜 예수님이 쌔팅을 만들었느냐 철저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냐, 그것은 오픈쪽에 있는 열린 쪽에 있는 무리들을 '캐어'하기 위해서 보살피기 위해서 훈련을 시켰습니다. 너희들끼리 먹고 살아라가 아닙니다. 두 가지 형태를 하나의 조화로 이루어야 그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밴드 목회'는 열린 영역과 닫힌 영역을 동시에 움직여 주는 목회가 밴드 목회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교회형 교회'와 '소종파 교회'인데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트륄취는 자신의 저서 「기독교회와 그룹들의 사회이론」에서 기독교인의 삶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보았는데 그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교회형'과 '소종파'입니다. 교회형은 보수적이고 세상을 포용하고 대중을 지배하는 선교적인 짊을 지고 있고 선교적 차원입니다. 많이 복음을 전해서 많이 모이는 것 . 소종파형은 소금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면서 개체 신도들의 완전을 강조합니다. 소그룹 운동을 해서 철저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

 

교회형은 '사도적 권위'와 '교회론적 전통'을 강조하지만 소종파형은 교회론적 권위보다는 '사랑의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교회형에 있어 교회는 '교회의 멤버'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모이는 이게 어느 교회 교인이냐가 중요하지만 소종파형의 교회는 교회의 제도성보다는 개인적인 핵심 '네가 얼마나 중요하냐'에 포커스를 두고 있습니다.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믿느냐? 이것은 따로 따로 분리될 것이 아니고 교회형과 소종파는 분리대지 말고 함께 나타나야 되는데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실행되지 못하고 교회형이면 교회형, 소종파형이면 소종파형으로 각각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도 자꾸 세미나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이 있고 저도 세미나란 세미나에 안 좇아간 곳이 없고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밴드 목회를 시작한다고 하니까 우리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이 어디 가서 무얼 또 배워 갔고 왔군 삼 개월만 견뎌, 삼 개월만 견디면 또 식어질 것이야, 식어지면 하는 거지 뭐 ' 저는 중간 지도자 대학, 정사무엘, 일대일 할 때 '이것을 안하면 우리 교회 직분을 안주겠습니다. 이것이 정식입니다. 다하십시오' 우리 교인들 대학 졸업한 것도 많습니다. 대학이란 대학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해보아도 그것도 안돼, 저는 '기도학교'도 했습니다. 기도학교란 책도 냈습니다. 기도학교에 대해서....

 

또 전도폭발도 했습니다. 인천에 있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도 교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했습니다. 안 해본 것 없이 다했습니다. 다해 보았어요. 정사무엘,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교육도 해보고 하여간 좋은 것은 목숨걸고 다 해보았습니다. 얼마나 교인들을 볶아 먹었는지 우리 교인들이 내가 또 한다고 하니까 '또 뭘 배워가지고 왔는가' 합니다. 제가 '전도 폭탄'도 그랬어요. 전도폭발 안하면 직분 안줍니다. 그랬거든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가지고서 다 해보다가 이번엔 내가 한술 더 뜨다가 이거 안하면 '교인으로 인정 안한다'그랬다 우리 교인이 아닙니다. 그렇게 강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교인들을 다 모아 놓고 교회가 이런 방향으로 간다 이야기했더니 디스커션을 했습니다. 교인들을 모아 놓고 디스커션을 했는데 그분이 이번에 와서 간증하지 않나 싶어요.

 

왜냐하면 '3개월만 견딥시다. 우리 목사님 알지 않습니까 어디 가서 또 배워 가지고 불붙어서 펄펄 뛰는데 3개월 지나면 팍 식어 버릴 것입니다. 그때까지 따라 가는 척 합시다' 제가 그랬습니다. 교인들에게 이것은 절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목회입니다. 이렇게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체계 있게 나가고 점점 책을 만들어 나가니까 교인들이 '이게 아니네, 이게 아니네' 교인들이 완전히 변화가 되어지고 새롭게 놀랍게 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적응되어 살아가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주 뜻대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밴드 목회의 위력은 대단하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여러분들도 아마 이것을 배워서 하면 틀림없이 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목회이기에 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하면 교인들이 그럴 것입니다.

 

'무얼 듣고 왔나' 걱정하지 마시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교인들의 토양화, 이런 목회의 방향으로 간다고 하는 토양화 작업을 필요로 하는 성경을 여러분들에게 계속 해서 어젯밤에도 그것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샜다. 오늘 제가 한시간 눈을 붙이고 왔습니다.

 

목회에 도움이 되는 것, 책이 한국에는 없습니다. 책이 없기 때문에 밴드 목회 연구원에서는 잠 못 자고 피 터지게 헉헉대면서 목사님들에게 자료를 보급시켜 드리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협조를 잘해 주면 좋은 책이 많이 나올 것이고 또 목사님들이 책을 가지고 가면 두 권씩 가져가더라고요, 왜 2권을 가지고 가나 보았더니 그것을 마스터로 떠서 저자가 바뀌었습니다. 목사님들 그런 양심을 가지고 하면 밴드가 안됩니다.

 

교회와 소종파에 대해서 봅시다. 교회형과 소종파는 분리되지 말고 함께 나타나야 되는데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 두 가지 입장에 한꺼번에 실행되지 못하고 교회형이면 교회형, 소종파면 소종파로 각각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유형 중 한가지 입장 모두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 목회에도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데 수많은 무리를 이끌면서 그 안에 누구를 철저히 양육했죠? 12제자를 철저히 양육했습니다.

 

초대교회도 구원받은 무리가 넘쳐나도록 말씀 전하고 다니는 동시에 교회 안에 들어온 교인들끼리 철저하게 공동체 생활을 시켰습니다. 우리가 보면 지금까지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교인 하나 왔죠, 열심히 믿죠 이 열심히 있는 사람에게 어디 가서 일하겠어요 '저쪽에 가서 당신이 구역을 맡든지 속회를 맡든지 해' 그러면 이 사람이 거기 가서 열심히 해보니까 그 그룹 사람들이 열심 있는 멤버가 아니거든요.

 

어느 순간에 점점 이 사람도 지치고 처지게 됩니다. 지치고 처지게 되니까 그 사람도 신앙이 처져 버립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아니고 어떻게 하느냐 하면 소종파형과 합쳐져 버리니까 교회형 교회는 선교적인 차원에서 갔다가 핵심멤버와는 '코아 멤버'가 어디로 오느냐 그들만 모이는 모임이 따로 있습니다. 그들의 모임이 따로 있어 여기서 철저한 신앙의 훈련과 기도와 영성 훈련을 강하게 시키고 여기서 힘을 얻어서 떠나가는 거죠. 나가서 거기에다 힘을 불어 넣어 줍니다.

 

이들이 거기만 있으면 쳐져 버리니까 여기서 모이죠, 일주일에 두 번, 핵심멤버는 두 번 모입니다. 열린 영역에 한번 모이고 닫힌 영역에 한번 모입니다. 엄격하죠. 대단히 엄격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구조가 딱 뭉쳐지니까 활발한 교회가 되고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속상할 이유가 힘들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 무슨 일,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생기면 목사님, 사모님이 좇아가야 되고 미꾸라지 교인을 딱 찍어서 파내어 닦아 가지고 세수대야에 담아 가지고 (세수대야가 교회) 나면 담아 놓으면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우리 교인들이 꼭 그렇잖아요. 시험들 사람이 있으면 '봐 까불고 있어'하면서 자기 꼬리 잘났다고 꼬리치고 돌아다니는 교인, 정말 그런 교인들 많습니다.

 

나팔꽃 교인은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랄랄랄 합니다. 나팔꽃에 보면 나팔꽃 교인 옆에는 쭉 뻗어서 땡글땡글 밟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팔꽃 교인 옆에는 못삽니다. 지저분합니다. 교인들도 입만 여는 것이 아니라 옆에 사람 다 걸고 앉아 있습니다. 요런 교인들을 바르게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목사님 상담으로는 안 고쳐집니다. 사모님 좇아가서 상담해도 안 고쳐집니다.

 

그런데 그 동안 늘 목사님이 사모님이 힘든 일, 어려운 일 다 들었거든 그러니까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까 교인들이 벌써 열린 영역에 가서 힘든 일, 어려운 일, 좋았던 일들은 거기서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가서 쭉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자기들끼리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들끼리 울고 자기들끼리 풀고 기도하다 보니까 여기를 '브라우닝' 심리학자는 무엇이라 하면 '공중심리 치료'라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치료가 되어 버리네. 목사님하고 상담하고 사모님하고 상담해서 누구에게 말이 막 퍼져 나갔던 것이 이제는 이 목회를 하고부터 저는 교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못 들어요. 왜 거기서 끝나고 거기서 해결되어 버리니까 이 이야기가 우리까지 올 이유가 없습니다.

 

목사님들이 사모님들이 교인들 말듣다가 지쳐 버렸거든 이런 것들을 다 건강하게 바꾸어 놀 수 있는 목회, 해볼 만한 목회입니다. 멋있는 목회입니다. 행복한 목회이기 때문에 사모님이 진짜 엉덩이 흔들면서 목사님과 같이 손잡고 다닐 수 있는 목회입니다. 아 - 멘 하는 교회는 그렇게 될 것이고 아 - 멘 안하는 교회는 그렇게 안될 것이고, 그래요.

 

자 그러면 봅시다. 두 가지 모두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인데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들은 지금의 교회들처럼 교회형과 소종파형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종파 교회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면 이런 의미에서 기존의 셀교회의 소종파에 치우친 교회인데 이들은 철저하게 훈련되고 양육된 교인들을 기르고 이들만으로 셀조직하여 교회를 이끌어 갑니다. 셀을 조직하여, 셀이라는 것은 '세포,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변화된 교인만이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라 고백해도 교회의 회원이 되지 못한 자들은 개교회 교인이 아닌 우주적 신자들로 취급해야 합니다. 셀교인은 여기까지 들어온 사람은 우리 교인입니다. 나머지는 아닙니다. 그러죠. 그분들이 셀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분도 전체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 구원 못 받은 것 아니지 않느냐 왜 그 사람들을 버리느냐 하는 그런 것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고요,

 

그러면 여기서 셀교육은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형태의 선교 활동과 옆에 열린 영역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포괄적 영역에서 포괄적 선교를 통하여 복음에 그러나 이들은 너무 의적인 성장과 대형화, 교회성장이라는 모토에 혈안이 되어 한 명, 한 생명을 돌보며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제자로 만드는 일에는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하여 한국의 그리스도인으로 적당주의 삶을 낳게 되고 한국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케 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형화만 추구하다 보니까 교인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세상 사람보다 못합니다. 이렇게 된 것이 너무 교회형으로 흘러가서 그렇습니다.

 

밴드형 교회는 무엇이냐? 밴드형 교회는 무얼 말하는가 기존형 교회를 단순히 소종파형으로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셀로 바꾸자는 게 아니고 이 작업은 자체적으로 어렵고 성서적이지 않습니다. 밴드 목회는 교회형과 소종파형을 모두를 균형 있게 이끌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대중적이고 선교 지향적인 면을 철저하게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철저한 그리스도인을 공동체를 만들도록 이들이 나가서 모든 열린 영역에 가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도록 하자. 내적으로는 공동체 안에 들어온 사람들간에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철저한 제자화를 실현하며 내적으로는 더욱 전문화되며 열린 교회로 나가 지역 사회의 믿지 않겠다는 사람을 끌어 앉겠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끼리 한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무한히 열린 그래서 항상 축제가 있고 기쁨이 넘치는 곳 그런 교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철저하고 나가서는 이 사람이 저 사람들을 여럿을 포용할 수 있는 그 정도의 교회가 되는 것이 밴드형 교회입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혹시 이 가운데 셀목회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세미나에 다녀오신 분 있나요? 지금 한국 교회에서 셀목회 세미나에 참여해서 이 셀을 들으면 혹합니다. 철저한 그리스도의 훈련이기 때문에 혹하기 때문에 가서 교회를 때려 부숴 가면서 진짜 교인들을 만들겠습니다. 교인들이 나가도 행복하다 이러면서 섹트형 교회로 나가다가 교회를 말아먹은 목사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지금 송파지방에 있는 있다가 가까운 지방으로 간 교인들을 다 떠나 보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너무 소종파형으로 가다가 저도 처음에 셀로 시작했거든요 셀로 시작해서 탁 한번 터뜨려 보니까 교회가 휭하니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우리 집사람이 밥을 일주일간 안해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분별력이 없느냐고 나더러 왜 교회가 이렇게 아수라장이 돼 가는데 무엇이 잘났다고 그러냐고 밥먹지 말고 금식하라고, 뭐가 문제냐 셀목회 하는 분을 모셔다가 세미나를 한번 했는데 나는 너무너무 은혜를 받았는데 교인들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구원론 자체가 흔들려 버리니까 그래서 그분 세미나 한 것을 한자도 빼놓지 않고 타이핑을 그대로 쳐서 쭉 읽어보니까 구원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구원론에, 그래 가지고 내가 우리 교인들에게 로마서 강의를 전체적으로 쭉, 하도 교회가 아수라장 치니까 금요 철야 때 다 나오라 해가지고 로마서를 다 떼어 버렸습니다. 1장서부터 쭉, 이렇게 해서 예수를 믿으므로 구원받는다고 그랬더니 진작부터 그럴 것이지 하대요.

 

이 셀목회에 상황 파악을 잘못하면 교회를 다 말아 먹어요. 어떤 사람은 저보고 그래요 셀목회에서 한 것 아니냐고, 아닙니다. 절대 그러지 말고 밴드라는 것은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 셀이라는 것을 너무 하나의 섹트로 가두어 버리니까 교회를 굉장히 어렵게 만든다는 거죠. 이런 문제를 타파해 놓고 기성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바꿀 수 있는 목회가 밴드 목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열린 영역과 닫힌 영역이 동시에 같이 열려 있고 닫혀 있기에 예수님의 목회 방법대로 한다면 교회가 문제될 것이 없고 소란이 일어날 것이 없습니다. 이제 공부하면서 구조 조정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이 책을 여러분께 드리는 거여요. 이 책을 이것을 가지고 우리 교회를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 것이냐 구조 조정하면 목사님들 기절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부실한 교회인가를, 우리 나라 은행들이 기업들이 구조 조정하잖아요.

 

그게 다 우리 밴드 목회할 때 배운 것입니다. 이 구조 조정을 우리가 먼저 했거든요. 구조 조정을 해보면 교회가 얼마나 거품인가를 알아, 그것 구조 조정하는 것 내일 강의 시간에 배우게 될 것입니다. 밴드형은 그렇게 믿는 자는 철저하게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생명을 불어넣는 열린 영역인 것입니다.

 

 

교회형은 목장으로 소종파는 클로즈 영역으로 닫힌 영역으로 묶어 주는데 교회는 훈련된 영적인 아비와 어미들이 영적으로 어린 자녀들을 돌보며 여기 목장이라는 것 이상히 보지 말고 속회, 구역으로 보면 됩니다. 어린 자녀들을 돌보며 그들이 자라서 어린 자녀들을 돌보는 과정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는 닫힌 영역, 밴드 목장, 오픈영역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제가 했는지 아십니까?

 

194페이지를 보면 거기 왠 여자가 두 아이, 한 아이가 있죠. 세 아이가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에 이난성 집사를 그린 것입니다. 이 사람이 기도해서 10년만에 세 쌍둥이를 낳았거든요. 세쌍둥이를 낳았는데 못 보더라고요. 엄마가 자기 자식이지만 셋을 한꺼번에 못 보더라고요. 그래서 제 자신이 아! 나뭇꾼보고 선녀에게 3명의 아이를 낳기 전에 옷을 주지 말라는 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애기 보느라 옷 입을 시간이 없더라고요.

 

제가 여의도에 집회를 가서 세 쌍둥이 이야기를 했더니 데리고 와야 믿겠대요. 그래서 세 쌍둥이를 데리고 갔어요. 세 쌍둥이를 데리고 와서 간증을 시키는데 제 엄마가 두 애를 딱 붙잡는데 한 애가 저리로 튀어요.

 

애가 도망가는데 계단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자기 엄마가 놓고서 또 붙잡으러 가네요. 그러니까 그 애를 붙잡으니까 두 애가 또 이리로 튀어요. 야 그 때 보면서 한 엄마가 셋도 못보구나. 그런데 우리 목사님들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그 많은 교인들을 혼자서 다할려고 얼마나 많은 고통과 수고와 노고가 많으십니까. 너무 고통스러운거죠.

 

너무 힘든거죠. 이제는 이래 가지고는 안됩니다. 이제는 평신도의 운동을 극대화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평신도 운동은 제자 교육으로는 부족합니다. 뭐냐 제자라는 것, 지식적인 제자라는 게 아니고 삶을 보여주는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라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는 것이 밴드 목회에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한번 읽어봅시다 크로즈 밴드 목회들이 여기 무엇이냐 하면 성숙한 신앙인들이 새가정에 가서 애가 커서 장성하면 청년기가 되면 장가가야 되잖아요. 그와 같이 이 사람들이 나아가서 한 가정을 만드는데 거기에 가서 자식을 낳아야 되잖아요. 자식을 낳아야 되잖아 장가갔으면 자식을 낳아야죠 그와 같이 건강한 교인들이 성장한 교인들이 나가서 무얼 만드느냐 이제 구원의 그룹을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생명을 만들어 내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한 속회나 구역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영적으로 태어나서도 신앙의 성장이 없는 아이들을 성장하고 돌보고 이끄는 자 이런 사람들이 바로 크로즈 밴드 다시 말하면 닫힌 철저한 그리스도인에 주어진 사명이라는 거죠.

 

여러분 거기에 교육이라는 말은 안 들어가죠 무엇이 있습니까 이끌고 돌봄입니다. 교육이 아닙니다. 평신도를 보고 교인들을 교육 시켜 놓으면 '병신도가 병신도를 만들어 놓는다' 그러니까 절대로 교인보고는 가르치라 말고 사랑을 행하는 보살핌을 하라. 입력을 하십시오. 목사님들, 절대로 교인이 교인을 가르치는 것을 금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클로즈의 멤버가 되도록 정상적인 건강한 성도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을 가정으로 말하면 온 가족이 성숙한 장성한 가족이 모여 있는 그런 가정, 그래서 이 큰 사람들이 또 새로운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분가시키고 분가 시켜야 됩니다. 거기 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돌봄입니다.

 

맨 밑에서 3째 줄 중요한 것이니까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제 교회는 목회자만이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를 통해 양육된 자들이 아비, 어미가 되어 다른 교인을 돌보아야 됩니다. 이것이 밴드형 교회입니다. 이것을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47페이지를 잠깐 봐주세요.

교회 체제를 바꾸어라

 

제가 우리 교인들에게 17년간 목회를 실패했다는 배경을 기록해 놓은 것들인데 여기 의거에 교인들이 있어요. 그 안에 들어가서 저는 은사 집회도 하고, 기도훈련도 하고 교회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하고 성경교재를 가지고도 공부도 하고 했어요. 내 의도는 무엇이냐 하면 성숙하고 헌신된 성도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했어요.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성숙되어지고 아주 헌신된 성도를 만들자 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 하면 교인들은 좀처럼 성숙 안되고 무엇은 있었어요. 열심은 있었어요.

 

지금도 열심 빼놓으면 아무것도 없죠. 열심은 있는데 성숙이 안돼요 성숙이 안돼, 동네 가서 제일 큰 목소리 나고 싸우는 사람은 다 우리 교인이야 시장에서, 거지가 교회와서 욕먹고 가는 교회는 우리 교회밖에 없어. 거지들이 와 가지고 이 새끼, 소새끼 이런저런 소리 다 듣고 가. 사지가 멀쩡한 놈이 왔다고 우리 교회는 거지들이 안 와요. 여자들이 욕을 막하니까. 대단한 데야 대단한데..... 교인들이 좀처럼 성숙이 안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148페이지를 보면 예수님은 어떠했나 밑에서 보면 예수님의 목회가 성공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성공이라 하느냐 여기 제자들을 모아서 예수님이 삶을 보여 주어요. 당신에의 삶을 보여주니까 어떤 제자가 나느냐 하면 성숙하고 헌신된 제자가 나오잖아요. 예수님이 결국에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사람이 나오냐 하면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걸고 죽잖아요.

 

여기까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잖아요. 목사님의 목회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교인이 여러분의 교회는 몇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힘들고 어려우면 다 내빼잖아요. 도망가죠. 이 밴드 목회를 하고는 저희 교회는 정말 생명 걸고 돕겠다는 교인이 많이 나와요. 그것이 달라져요. 주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목사님이 주님을 위해 산다면 나도 주를 위해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목사님을 도와서 함께 사는 것이 주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냐 따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된 삶의 모습으로 바꾸어지는데 이 밴드 목회는 지금까지는 목사님들이 무얼 위해 좇아갔느냐 하면 'HOW' 방법론이 무엇이냐 어떤 방법으로 목회를 할 것이냐, 이 밴드 목회는 'HOW' 가 아니고 'WHO' 누구, 어떤 사람을 키워 내느냐 사람을 만드는 목회입니다. 사람을,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사람을 만들어 내는 이 사람들만 있으면 교회는 얼마든지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제까지 어설프게 배웠던 교인들은 그러고 집사와 권사된 사람들은 신앙생활은 이런 것입니다 하고 낮은 커트라인에서 높은 커트라인으로 올려 놓아 버리니까 아예 기겁을 해 버려요. 그런데 새로운 사람에게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기준을 잡아주니까 '아구 쉽네요 예수 이렇게 믿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성경 말씀에 응답을 알았어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교회를 구조 조정해 놓고 보니까 교회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가 교회의 중직이라는 직분자가 제일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일 힘들다는 것은 자기들이 느껴, 평신도들이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세요? 오히려 이제 기본적인 이 사람을 보살펴요.

 

이 사람들이 살아나니까 이 사람들이 변화되니까 자기들이 위축되니까 자기들이 같이 협조합디다. 지금에 있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변화시켜 무엇을 한다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서서히 바꾸어 나가면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확 바꾸면 이인제처럼 떨어져요. 확 바꾸는 게 아니라 토양 작업부터 서서히 해 나가면서 모든 것을....

 

여러분들이 목회관만 딱 정립이 되면 목회의 목적과 방향만 딱 정립되어 있으면 교회는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한번 여러분들 교회에 가서 교인들을 붙잡아 놓고 한번 물어 보세요. 우리의 목회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는 무슨 목회를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 보면 교인들이 대답합니까? 목사님의 목회관을 딱 교인들이 대답을 못하잖아요.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 우리 교회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가는지 교인들이 다 알아요. 부교육자를 교육목사, 선교목사, 주일낮에 설교해요. 다 설교해요 나도 1부하고 저분들도 1부해요. 다해요. 왜 목표는 뚜렷하니까 교인들은 우리 교회가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교인들이 우왕좌왕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해도 결론에 가서는 똑같은 방향으로 갑니다.

 

이양 저 양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일원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는 건강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교인을 헤집어 보려고 해도 우리 교회 목표는 이거요, 우리 교회의 길은 이 길이요, 평신도들이 다 알고 있는데 목사들이 헛소리를 못합니다. 오늘 저녁 시간에 진짜 강의가 들어가면서 아! 이것이구나 성경적인 배경부터 찾아가면서 하겠습니다. 지금 질문해 보아야 나올 것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교재 내용과 성경을 같이 보아 가면서 정립을 하려고 합니다.

▲밴드목회 2-제1장 교회론-제2과 하나님의 바른 관계성을 가진 가정의 창조와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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