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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 생활의 비결

  •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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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생활의 비결
하박국 : 3장 8 절- 19 절

 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의 기도를 읽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감사 생활 의 비결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짐승과는 달리 감사한 것을 알고 마음으로 느끼는 존재입니다. 특별히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 말씀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물론 감사의 정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기독교에서만큼 감사를 말하고 강조하는데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언제 나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표식은 감사 생활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봉사 생활도 그 동기가 감사하는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역시 동기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라야 참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찬송하는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항상 하나님 앞에 찬송하는 동기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할 때 그 마음 에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찬송은 목에서 나오는 노래는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그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사실 그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 헌금을 합니다. 여기에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일반 다른 종교에서는 적선을 하는데 그것은 헌금과는 완전히 의미가 다릅니다. 기독교에서는 헌금 드리는 것이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중세 교회가 한창 타락했을 때 헌금통에 헌금이 떨어져 딸랑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이미 세상 을 떠난 사람의 영혼이 지옥에 보내자니 선하고 천당에 보내자니 좀 부족해서 이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 연옥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연옥에 있던 심령이 그 부모나 자식이 세상에서 드리는 헌금 때문에 속죄를 받아 천당에 간다고 해서 한동안 속죄표를 파는 등 비 성경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헌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하도 커서 감격한 나머지 감사의 표시로 우리의 정성을 모아 드리는 예물입니다. 감사의 정이 없이 드리는 헌금에는 아무 런 의미가 없습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표식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뜻 한 대로 잘 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은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아니합니다. 로마서 1장 2 1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졌다 고 했 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가 잘 잡히면 그것이 그물 덕분인줄 알고 그물에게 절하며 제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그 심령이 어두운 세상에서 믿음 없이 사는 사람들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도 압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사람 노릇 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감사 생활은 마음 자세의 문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흔히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런 말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런데 여기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감사하는 조건은 환경문제입니다.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내가 무엇을 얻게 되고 소원이 이뤄지고 행복을 느낄 때 만족하게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업이 성공하거나 입시에 합격하거나 중병에서 놓이거나 배우자를 만나거나 수확이 풍성하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때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얼마나 훌륭합니까. 자기가 잘 나고 훌륭해서 모든 계획을 바로 세우고 과단성 있게 추진시켜 나갔기 때문에 이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아는 사람보다야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이 감사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가 하는 것은 다시 말씀드릴 것조차도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에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 박사는 성경 말씀 중에 특히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에 그런즉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자기로서 한 마디 꼭 덧붙일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의 미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요소를 배제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 당연한 일이지마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감사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03편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면 결국은 감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여리고로 가시는 길인데 문둥병이 든 불쌍한 열 사람을 다 낫게 하여 주었습니다. 이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다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 세상에 여러 가지 병이 있지만 문 둥병처럼 고약한 병이 어디 있습니까? 손가락이 문드러지고 코가 잘리고 귀가 없어지고 발가락이 잘려 나가다가 비참하게 세상을 끝내는 병입니다. 병중에는 가장 무서운 병이요 저주스러운 병입니다.


그런데 이 병이 나았으니 기적이요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밖에는 없었습니다. 다른 아홉 사람도 꼭 같이 나음을 입었지마는 이 큰 은혜를 받고 놀라워하면서도 감사하러 오지는 않았습니다. 왜요? 감사하는 것을 잊어버려 그랬습니다. 옛날부터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 는 말이 있는데 매우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흔히 내 마음이 아팠던 일은 잊어버리지 아니합니다. 돌비에 새긴 것처럼 지워 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고마웠던 일은 얼마 가지 아니하고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인간의 성정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 아니 구체적을 말해서 모든 것이 잘 되었을 때 이에 대한 감사의 정을 품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감사 생활의 첫 단계입니다.


지난 주일 생각한 대로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 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 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어느 무명 성도의 감격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구원함을 받은 체험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자기 영혼을 불러 깨우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감사는 가진 것을 잃거나 소원했던 것이 성취되지 않거나 비방이나 오해를 받게 되면 감사보다 원망이 나오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보다 환경과 조건이 좋아지므로 인해서 드리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감사도 귀합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는 아직도 어 린 수준의 감사 생활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아버지나 어머니가 맛있는 과자를 사서 한아름 안겨 주면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합니다. 조금 훈련받는 아이는 `아버지 고맙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하며 마냥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어떤 큰 애가 와서 과자를 빼앗아 가면 그렇게 좋아하던 어린애는 목을 놓아 웁니다. 어린애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무엇을 사 주어야 좋아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만족해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어야 감사해 합니다. 만일에 자기가 생각한 대로 부모가 응해 주지 않으면 불만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어린애가 자라서 성숙해지면 부모가 무엇을 사 주지 않아도 그 저 부모님을 생각만 해도 고마워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에게 매를 맞으면 아프고 눈물 나고 분하고 억울해서 부모를 미워하게 되고 원망스러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자리에 나아가게 되면 모두가 부모님의 사랑이었던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성숙한 사람의 감사 생활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감사 생활, 성숙한 신앙인의 감사 생활은 어떠한 환경과 어떠한 조건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 때 일입니다. 저는 그때 부산에 가서 감사 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부산에 는 피난민들로 가득할 정도로 많은 피난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모여든 피난민을 기존 시설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어서 산이든 들이든 공간이 있는 곳이면 허가 없이 판잣집을 짓고 지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그 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감사 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장했습니다. 더구나 그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축복이요 특권이었습니다.


저녁 예배 때 저마다 받은 은혜를 간증하며 가족으로 나와서 찬송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어느 분은 나와서 저는 이곳 부산까지 피난을 와서 장사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장사가 잘 되어서 서울에 있을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간증했습니다.


어느 자매님은 저는 이렇게 어려운 피난살이 속에서도 온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구들이 다 건강하게 지내게 되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고 간증했습니다. 어느 어머님은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가을에 우리 아들이 군에서 무사히 복무하고 건강한 몸으로 제대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고 간증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어느 청년이 나와서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부모님은 폭격에 세상을 떠나셨고 하나밖에 없던 형님은 일선에 나가 인민군 공격에 전사했습니다. 제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는 안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간 여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저도 전에는 많이 얻으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청년의 간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해도 하나 님은 묵묵히 계실까? 우리의 의심스러운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이와 같이 자기의 이성으로 해석할 수 없는 문제가 많으면서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참된 감사는 알지 못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현재에는 알지 못하며, 납득되지 않으며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장차 알 수 있는 날이 오며 그것이 유익하게 될 것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감사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할 일입니다. 먼저 해결을 본 후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감사한 후에 해결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알지 못하고 없는 중에 감사하면 이적이 나타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기도하고 노래할 때 거기에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옥에 진동이 일어나고 굳게 닫혔던 옥문이 열 리고 바울과 실라의 장막이 다 풀어졌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간수가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책임을 느껴 자살하려는 것을 말리고 그날 밤 간수의 가족까지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의심은 사라졌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까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격언에 밤은 좋은 생각을 준다 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 라 고 했습니다. 여기 모든 것에는 역경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는 일시 적인 역경까지도 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역경을 선으로 바꾸는 신비로운 역사의 두 가지 요소가 있다면 그 하나는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역경 속에서 감사하는 성도의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둠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그 역경을 변화시키는 이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중에 있으면서도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한 것은 현재 당하는 처지에 만족해서 좋아서 감사하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고통은 고통이요 어려움은 어려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와 사랑을 믿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쓰라린 사정이나 감당키 어려운 여건 속에서라도 하나님이 보다 나은 목표를 위해 도와주실 것을 믿을 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사는 역경 속에서 의 감사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오늘의 처지는 어려워도 내일의 평안을 바라보고 참된 감사는 쓰라린 환경 속에서도 귀한 고통 과 어떤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감사는 환경이나 조건에 좌우되지 아니하는 감사입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감사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하박국 3장 16절 이하를 보세요.


하박국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했습니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환난의 자리, 곤경의 처지, 있어야 할 곳에 있을 것이 없을 때에라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 들려서 괴로워하는 여자에게서 귀신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쫓아서 그 여자가 점을 치지 못하니까 수입을 노리고 있던 주인이 시 당국에 고발해서 많이 맞고 깊은 감옥 에 갇히는 억울한 형편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캄캄한 밤중에 매 맞은 데서는 피가 흐르고 아픈데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른 죄수들이 다 듣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역경 중에서도 감사하며 어둠 속에서도 노래합니다.


이 것은 오직 그리스도인의 특권인 것입니다. 없어도 감사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하는 감사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믿음이란 갈 길을 알지 못하면서 도 안심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믿음과 과학의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갈 길이 분명하여 증거가 확실할 때에만 움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 할 때에는 갈 바를 모르고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John Calvin 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해 못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악한 사람들이 성하도록 내버려두시나? 왜 이 땅에서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 하나?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현재의 환경은 캄캄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우리 모두 이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시간적으로는 항상 감사하고, 내용적으로는 범사에 감사하고, 방법으로는 주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대상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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